국민은행 '취업갑질' 논란은 어찌보면 우리 시대 슬픈 자화상이다. 취업문이 바늘구멍만큼 좁아진 데 따른 혼란이기 때문이다. 취업준비생은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고, 채용 기업은 이들의 정서를 잘 감안해야 하지만, 자칫 둔감해질 수 있다.
국민은행이 채용공고를 냈다가 취업준비생들의 반발로 채용절차를 긴급히 수정한 사례는 채용을 준비 중인 다른 기업들도 잘 참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국민은행 채용공고가 논란이 된 까닭은 △서류전형에서 지나친 자료를 요구했다는 것과 △국민은행에는 필요할 것 같지 않은 독일어 성적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두번째 논란은 결과적으로 취업준비생들의 오해로 보인다. 독일에 지점을 두고 있지 않은 국민은행이 굳이 독일어 성적을 입력케 한 것은 독일어에 강한 특정인을 뽑기 위한 것 아니냐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특혜 채용을 위한 준비라는 지적이다.
이 지적이 옳은 것이라면 독일어에 대해 엄청난 차별적 가점을 주도록 조치한 게 입증돼야 하지만 사실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국민은행 측 해명에 따르면 독일어 성적 입력 칸이 있는 것은 단지 관행적인 단순한 양식이었을 뿐인 것처럼 보인다.
국민은행으로선 사실이 그렇더라도 뼈아픈 대목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과거 채용비리 사례가 다시 소환되고 국민은행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 논란은 생각해볼 게 많다. 국민은행은 당초 채용절차의 첫 관문인 서류전형에서 3~5페이지나 되는 디지털 서류 과제와 디지털 역량 테스트를 보기로했다. 취업준비생들이 '취업갑질'이라고 비판하는 대목이 바로 이 것이다. 결국 국민은행은 이를 수용해 두 가지를 채용 세 번째 절차인 1차 면접에서 하기로 했다.
논란의 요지는 어차피 서류전형에서 다수를 걸러낼 것이면서 뽑지도 않을 사람에게까지 지나친 자료와 국민은행 모바일 앱 테스트를 강요했다는 것이다. 국민은행은 이와 관련해 서류전형 과정부터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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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우수한 인재를 뽑기 위해서 그런다는 데 일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취업준비생들의 불만도 귀담아 들어야 할 필요가 충분하다. 단지 서류전형을 통과하기 위해 국민은행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사용해본 뒤 1만자 분량의 과제물을 제출하는 것은 취업전쟁에 내몰린 학생에게 가혹한 요구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무심함에 대한 분노가 취업갑질 비판을 넘어 채용비리 의혹까지 소환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