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ARM 인수는 재앙"...英서 반대 기류 확산

인수 협상 오리무중 속 英 IT 인사 "기술주도권 빼앗길 것" 우려 높아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20/09/10 16:24    수정: 2020/09/10 16:45

영국측 인사들이 잇달아 엔비디아의 ARM 인수를 반대하고 나섰다. (사진=Arm)
영국측 인사들이 잇달아 엔비디아의 ARM 인수를 반대하고 나섰다. (사진=Arm)

소프트뱅크와 엔비디아가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 회사인 ARM 인수 협상을 진행중인 가운데 영국 측 인사들이 지속적으로 ARM 매각 반대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 엔비디아의 ARM 인수가 영국의 기술주도권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ARM 자체를 파괴한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반도체 핵심 지적재산권을 가지고 있는 ARM 인수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편 엔비디아는 인수 여부에 대해 여전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전략적 모호함'을 유지하고 있다.

■ "인수 성사시 엔비디아가 ARM 파괴할 것"

1990년 영국 에이콘 컴퓨터에서 ARM을 분사시켜 창립한 핵심 창립자 중 한 명인 헤르만 하우저는 지난 8월 초 영국 BBC와 인터뷰를 통해 "엔비디아의 ARM 인수는 재앙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던 그가 이번에는 발언 수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그는 지난 2일 영국 정치 전문 주간지 '뉴스테이츠맨'과 인터뷰에서 "이번 인수건이 성사되면 영국의 기술 주도권에 치명타를 입힐 뿐만 아니라 ARM 자체도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헤르만 하우저는 ”엔비디아가 ARM을 파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진=ACP)

헤르만 하우저는 "엔비디아는 40억 달러 이상의 대가를 들여서 ARM을 망가뜨릴 수 있다면 인수에 기꺼이 나설 회사"라고 평가하고 "엔비디아의 ARM 인수는 스마트폰의 95% 이상, IoT 칩의 90% 이상, PC와 데이터센터 시장까지 장악해 인텔을 우위에서 끌어내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엔비디아가 ARM 인수를 통해 경쟁사의 ARM IP 활용을 막을 것이며 경쟁사들은 별도 아키텍처를 구성하기 위해 연합해야 할 것"이라고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 "보리스 존슨 총리, ARM 인수 막아야"

로이터통신은 지난 8일 런던발 칼럼을 통해 "보리스 존슨 총리가 엔비디아의 ARM 인수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압박에 나섰다.

로이터통신은 "ARM은 대규모 투자를 통해 핵심 기술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할 수 있는 몇 안되는 회사였다. 소프트뱅크는 ARM 인수 이후에도 여전히 본사를 케임브리지에 뒀지만 엔비디아는 오히려 이들 엔지니어를 미국 본사로 흡수시켜 본사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이터통신은 칼럼을 통해 ”보리스 존슨 총리가 ARM 매각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영국 보수당)

또 "ARM은 모바일용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시장에서 90%의 점유율을 확보했는데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하면 이런 중요한 지적재산권을 미국에 넘겨주어 미중무역분쟁의 한 가운데에 던져 넣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로이터통신은 보리스 존슨 총리가 엔비디아의 ARM 인수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과 중국이 자국 기술 보호에 나서고 있고 독일 역시 자국 기업 매각에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 여전히 베일 속에 가려진 협상 상황

ARM 인수를 둘러싼 소프트뱅크와 엔비디아의 협상과 관련해서 현재는 어떤 이야기도 흘러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영국 일간지 '이브닝 스탠더드'가 지난 8월 중순 내부 관계자를 인용해 "엔비디아의 ARM 인수 협상이 올 여름 전에 마무리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9월 중순에 접어드는 현 시점까지 실현되지 않았다.

이달 초 지포스 RTX 30 시리즈 공개 행사에 등장한 젠슨황 엔비디아 CEO. (사진=엔비디아)

엔비디아 역시 ARM 인수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함'을 유지하고 있다.

젠슨황 엔비디아 CEO는 2분기 실적 관련 컨퍼런스 콜에서는 'ARM은 좋은 협력사'라며 말을 아꼈다.

■ 소프트뱅크, 美 나스닥 선물 거래에 40억 달러 '도박'

ARM 모회사인 소프트뱅크가 올 초 코로나19로 인해 비전 펀드로 입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ARM을 일부 매각, 혹은 전체 매각하려 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소프트뱅크가 ARM 매각 시도에 이어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 40억 달러 규모 옵션거래에 나선 사실이 이달 초 뒤늦게 드러나기도 했다.

로이터통신,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약 40억 달러(약 4조 7천500억원)에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넷플릭스, 테슬라 등 미국 IT 기업 주식이 포함된 콜옵션 거래를 수행해 왔다.

관련기사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 (2011년, 사진=지디넷코리아)

콜옵션 선물은 주가 종목을 특정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를 사고 파는 거래다. 주가가 크게 오를 수록 큰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다. 실제로 나스닥지수는 7월 말에서 8월 말까지 한 달동안 9% 이상 올랐고 소프트뱅크는 이 콜옵션을 일부 판매해 상당한 이득을 챙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이달 초 알려지자 나스닥 지수는 5% 이상 떨어지는 한편 일본 소프트뱅크 주가도 7% 이상 하락했다. 소프트뱅크는 이같은 거래에 대해 별도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