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디지털화폐 실험 과감하게 진행한다

블록체인 분산원장 방식에 개인 간 송금·결제도 지원

컴퓨팅입력 :2020/09/02 15:51    수정: 2020/09/03 10:42

한국은행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개인 간 송금과 온오프라인 결제에 사용하는 방안을 연구한다.

발행·환수는 한은이 맡고 유통은 민간기관이 담당하는 '이중 구조'를 기본 바탕에 두고, 전자지갑을 통해 현금·예금을 CBDC로 교환하는 법, 개인 간 전송하고 대금결제에 사용하는 법 등 CBDC 시스템 운영에 필요한 구체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시험해 볼 예정이다.

또 CBDC를 발행하는 기반 기술로 '블록체인 분산원장'을 채택해, 적합성도 함께 검토할 계획이다.

이번 연구는 '모든 경제 주체가 이용대상이라는 점'과 '기존 계좌방식(단일원장)에서 벗어나 신기술인 분산원장을 적용해 구현한다는 점'에서 가장 과감한 CBDC 도입 시나리오를 대비한 테스트라고 볼 수 있다.

페이스북 리브라 등 민간 발행 디지털화폐가 빠르게 확산할 가능성이 존재하고, 미국·중국·유럽 등 주요 국가들이 CBDC 연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추세가 이번 연구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이 분산원장 기반 소액결제 CBDC 연구를 진행한다. (사진=뉴시스)

CBDC 전자지갑 표준화 방안, 분산원장 노드 운영 구상도 포함

2일 한은에 따르면 이번 CBDC 연구는 개인이 송금·결제에 사용할 수 있는 분산원장 기반 CBDC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이번 연구는 한은이 진행하는 첫 리테일용(소액결제용) CBDC 연구이며 분산원장 방식을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31일 공개된 'CBDC 파일럿 시스템 컨설팅 사업' 제안 요청서에는 한은이 이번 연구를 통해 테스트해 보려는 CBDC 구조가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한은은 CBDC 도입 필요성이 높아질 수 있는 미래 지급결제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3월부터 CBDC 파일럿 시스템 구축을 포함한 CBDC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번 컨설팅 사업을 통해 CBDC 구축에 필요한 업무프로세스와 시스템 구조(아키텍처)를 설계하고, 그 결과물을 기반으로 CBDC 파일롯 시스템을 구현할 예정이다.

한국은행 CBDC 파일럿 3단계

제안 요청서에 따르면 CBDC 파일롯 시스템은 한은이 CBDC를 발행·환수하고, 민간이 유통하는 협업 구조를 택했다. 

한은은 CBDC를 본원통화(M0)로 관리하고 실제 유통과 관련한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는다. 유통, 이용자 정보관리, 고객확인 의무(KYC) 등 실제 서비스와 관련된 업무는 민간 기관이 맡는다. 이는 실물 법정화폐 구조와 동일하다.

민간이 CBDC 전자지갑을 개발할 수 있게 필요한 항목도 표준화할 예정이다. 전자지갑 기능의 예시로는 CBDC 잔고 조회, 송금, 대금거래, 국제간 송금, 거래 인증 등을 제시했다. CBDC 자지갑을 통해 개인의 예금·현금을 CBDC로 교환해주는 체계도 마련할 계획이다.

더불어, CBDC를 이용한 보안침해 사고나 자금세탁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업무 프로세스도 설계하기로 했다.

CBDC 파일롯 시스템 구현을 위한 기술 인프라로는 블록체인 분산원장을 채택했다. "CBDC 보유 현황과 거래 내역 등을 기록하는 CBDC 원장은 분산원장 방식으로 관리"한다는 계획이다.

제안서에는 분산원장 노드에 대한 구상도 담겼다. 한은이 'CBDC 시스템 참가제도'를 운영하고, 민간도 노드 운영에 참여할 수 있게 개방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이에 이번 컨설팅 사업을 통해 분산원장 노드로 참가할 수 있는 기준과 절차 등도 마련할 예정이다.

한은의 과감한 CBDC 실험....왜?

CBDC는 사용주체와 구현기술에 따라 4종류로 구분된다. 금융 기관끼리 대금 정산에 사용하면 '거액결제용', 모든 경제주체가 사용하면 '소액결제용'으로 나눌 수 있다. 또 구현기술로 단일원장을 쓰느냐 분산원장을 쓰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이번에 한은이 연구하는 CBDC는 '소액결제용'이면서 '분산원장'을 적용한 형태다. 가장 급진적인 형태의 CBDC 도입 시나리오를 가정한 연구라고 볼 수 있다.

소액결제용 CBDC는 모든 경제 주체가 이용 대상인 만큼 통화 정책이나 금융시장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수 있다. 여기에 분산원장을 도입하면 화폐 발행·운영 체계도 중앙은행뿐 아니라 민간 기관이 참여하는 방식이 되면서 기존과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이렇듯 한은이 과감한 CBDC 연구에 나선 이유는 디지털화폐를 중심으로 세계 지급결제 환경이 크게 변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이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페이스북이 자체 디지털화폐 '리브라' 발행 계획을 발표한 이후 각국 중앙은행들은 소액결제용 CBDC 가능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민간에서 더 빠르고 간편하면서 저렴한 방식으로 국가 간 송금까지 가능한 화폐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하자, 중앙은행들이 기존 화폐 시스템의 '경쟁력'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다양한 이유로 CBDC 연구를 시작한 국가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중국과 스웨덴은 현금 사용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민간 전자지급 서비스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CBDC를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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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중국은 주요 국가 중에 가장 적극적으로 CBDC 발행을 검토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미 일부 지역에서 디지털위안을 시범 운영할 만큼 연구가 진척된 상태다.

미국에서도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은행 계좌 기반으로 배분하는 과정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못하면서, CBDC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