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불기소' 권고 62일째...檢, 기소 전제 명분 쌓나?

'불법 승계' 답 정해 놓고 문답식 수사한다는 비판 나와

디지털경제입력 :2020/08/27 14:43    수정: 2020/08/27 16:56

대검 수사심의위원회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회계 부정사건 수사와 관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불기소와 수사중단을 권고한 지 62일째다.

지난 6월 26일 수사심의위가 이 사건에 대해 수사도 중단하고 기소도 하지 마라고 권고했는데, 당시 수사팀은 "수사 결과와 수사심의위원 의견을 종합해 최종 처분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통상 수사심의위의 결정이 내려진 후 일주일이나 열흘 안에 검찰의 기소 여부가 결정된다는 예상과 달리 두 달이 넘도록 사건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다. 앞서 열린 수사심의위 심의안 10건 중 9건은 이미 다 처리가 됐다.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의 최종 결론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기소냐 불기소냐, 아니면 기소유예냐 등을 놓고 재계는 물론 정치계 안팎으로 갖가지 혼란과 의혹이 난무하고 있다.

때문에 신속한 수사를 통해 피의자 인권을 보호하고 실체적 진실에 접근해야 한다는 수사 원칙에도 배치된다는 지적이 많다.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국민적 신뢰를 얻기는 이미 물 건너 갔다는 비판도 쏟아진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뉴시스)

■ 검찰, 사건 결론 왜 못 내나?...'이미 정당성 잃어'

검찰이 1년 8개월 동안 수사하고도 이재용 부회장의 불법 경영승계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결정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여기에 검찰개혁 제도로 만들어진 수사심의위원회가 찬성 10명, 반대 3명이라는 압도적 숫자로 사건 수사를 중단하고 기소도 하지 말라고 권고한 데 대한 부담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수사팀 입장에서는 기소를 해도, 그렇다고 하지 않아도 수사의 정당성을 얻기가 난망한 상황이다.

검찰은 삼성그룹 불법 합병 및 회계 부정 사건에 자본시장법 위반 및 시세 조정 혐의를 적용했는데, 법조계는 이 부회장이 경영승계를 목적으로 합병을 직접 지시하거나 시세조정에 관여한 증거를 검찰이 찾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또한 경영권 불법승계 혐의와 관련 현재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인데, 사실상 같은 혐의를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쪼개서 또 다시 기소하는 것은 형사소송법상 일사부재리의 원칙에도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지난 6월 열린 수사심의위에서 위원들이 '그래서 이재용 부회장이 지은 죄가 무엇인가요?'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질문에 검찰 측이 즉각 답변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는 관계자들의 증언은 애초 검찰이 삼성의 '불법 경영승계'라는 답을 정해 놓고 무리한 수사를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권고 이후 검찰의 행보도 이러한 우려를 더한다.

서울중앙지검 경제수사팀은 불기소 권고 이후 법률적 쟁점에 대해 보완 조사 형식으로 학계와 업계 전문가들에게 면담과 의견자문 조사를 요청했는데, 조사 과정에서 삼성의 기소를 전제로 참고인들에게 의도된 답변을 유도했다는 문제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로부터 조사에 응해달라는 요청서를 받았던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이 교수는 "삼바 사태에 대해 기소심의위원회가 압도적으로 수사 중단을 결정했는데 분식회계가 아니라는 글을 썼거나 발표한 교수들을 검찰이 부르고 있다"며 "내게도 의견 요청이 왔지만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어 "들리는 바로는 의견을 듣는 것이 아니라, '왜 삼성을 위해 이런 의견을 냈냐'는 식의 질문으로 하루 종일 잡아둔다고 한다"며 "나는 No Thank You다. 그냥 인터넷 뒤지면 다 나오는 얘기를 내가 왜 검사 앞에서 다시 반복해야 하나"라고 덧붙였다.

검찰 조사에 참여했던 A 교수는 모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내 말을 바꿔야 하니 이리저리 찔러 보면서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물어본 것 같다"며 "(이 부회장을) 기소할 수 없으니까 전문가들을 불러서 의견을 듣는 것인데 증거가 없으니 이렇게까지 고육지책을 쓰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검찰이 확실한 물증을 통한 독립적 수사를 하는 게 아니라, 이미 '불법 승계'라는 답을 정해 놓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문답식 수사를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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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관계자는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 이 부회장에 대한 뇌물 공여 재판도 4년 동안 진행되고 있는데, 두 번째 기소까지 '할까, 말까' 저울질 하면서 시간을 끄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기업이나 경제인 수사는 국가 경제에 미치는 사안을 고려해 신속하게 진행하게 마련인데 재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심판자 역할을 하려는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 여부는 오늘(27일) 검찰 중간간부 인사가 확정되면 이를 기점으로 다음 주 초까지는 나올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