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자문서 한 우물...AI로 새 20년 준비"

[라떼는닷컴] 전경헌 사이냅소프트 대표

컴퓨팅입력 :2020/08/21 08:10    수정: 2020/08/21 08:38

90년생들에게는 낯설게 들릴 이야기다. 약 20여년 전 우리나라에 IT와 인터넷 분야를 뜻하는 이른바 '닷컴 산업' 열풍이 불었다. 내로라 하는 우리나라 IT 기업들도 대부분 이때 등장했다. 말 그대로 버블에 해당한 벤처기업들은 다 도산했고, 알짜 기업들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기업·공공·개인 소비자 영역에서 명맥을 잇고 있다. 그렇게 생존한 20년 전 젊은 창업자들은 어느덧 중견기업 대표로 살아가고 있다.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를 뜻하는 신조어)'라고 운을 떼며 그간 겪은 산전수전을 털어놓을 법 하다. 이들의 그간 소회와 인상 깊은 기억들을 릴레이로 들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전경헌 사이냅소프트 대표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서비스들이 주목을 받는 가운데 이를 가능케 해주는 기저 기술 중 전자문서 솔루션들이 각광받고 있다. 여기에 기존 룰 베이스의 ‘가짜 인공지능’이 아닌 빅데이터 학습으로 고도화 된 ‘진짜 인공지능’ 기술까지 뒷받침 되면서 업계 기대가 한층 높아졌다.

국내 대표 전자문서 기업인 사이냅소프트는 앞으로 전자문서 솔루션 기업이 아닌 ‘인공지능 전자문서 전문기업’으로 브랜딩 포지션을 잡았다.

전경헌 사이냅소프트 대표는 카이스트에서 검색을 전공하고, 지난 20년간 전자문서 기술 한 우물만 판 전문가다. 검색과 전자문서를 접목한 사업 아이템으로 2000년 사이냅소프트를 설립해 지금까지 알짜 회사로 키워냈다. 사이냅소프트는 정부 공공기관에 브라우저만으로 문서를 열람할 수 있는 뷰어, 포탈 내 문서 검색 등 우리 생활에 밀접한 여러 가지 전자문서 기술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 소재한 사이냅소프트는 내년 완공될 마곡 신사옥에서 새로운 도약을 시작한다.

지디넷코리아는 전경헌 대표로부터 지난 20년간 전자문서 업계를 걸어온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문서 솔루션 전문 기업의 시작…대학 시절 '검색' 전공

전 대표는 2000년대 벤처버블 속에서 회사를 창립한 기업인 중 한 명이었다. 카이스트 전산학과 선배들이 벤처 창업에 뛰어드는 것을 보면서 창업에 대한 열망을 키웠다. 대학 시절 자신을 야단친 교수와 연이 닿아 대학원에서 검색을 공부하게 됐지만, 그 선택은 창업으로까지 이어졌다.

2011년 당시 전경헌 사이냅소프트 대표 모습.

“학교 다닐 때 배운 검색 지식을 바탕으로 회사를 시작했다. 검색 전공은 내가 주도적으로 선택한 게 아니라 교수가 날 찍었다. 학교 다닐 때 공학센터에서 아르바이트로 소프트웨어 개발을 했었다. 어느 날 일하던 도중 교수님이 오셔서 야단을 쳤다. 학생이 공부는 하지 않고 여기서 뭐하고 있냐고 했다. 나는 실전 경험도 쌓고 돈도 버는 거라고 답했지만 화를 내셨다. 이후 대학원 진학 시 그 교수가 우리 실험실로 오라고 했다. 처음엔 야단을 치셔서 속상했지만 그렇게 검색의 길로 들어섰다. 우리 실험실에서 4차산업혁명 위원장을 지낸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같은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이해진 네이버 의장은 옆 실험실이었다."

당시 그는 전세계 닷컴 업계를 뜨겁게 달군 음악공유 서비스 ‘냅스터’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이에 전자문서도 음악처럼 공유할 수 있겠다는 사업 구상을 세웠다.

"내가 29살에 창업해 이제 20년이 됐다. 내가 창업할 당시 벤처 붐이 불었다. 나는 카이스트 전산학과 88학번으로, 86학번 선배들이 창업을 많이 했고 웹이 뜨면서 성공적으로 벤처하는 선배들이 생겼다. 사회적으로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면 큰 회사를 다니면 안 되고 벤처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내가 잘났다 생각은 한 건 아니지만, 선배들이 앞에서 가는 모습을 보니까 나도 하고 싶었다. 창업 전 한국무역정보통신이란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약간 관공서 분위기였다.

내가 처음 도전한 사업 아이템은 P2P 문서검색 사이트였다. 당시에 음악 공유 사이트 넵스터가 전세계적으로 뜨고 있었다. 우리나라엔 이를 벤치마킹 한 소리바다가 나왔고, 나는 이 아이템을 문서 공유와 검색에 관한 비즈니스에 접목해보고자 했다. 문서를 공유하게 되면 기업들의 문서 활동이 활발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문서가 한 번 작성돼 쌓이면 굉장히 많은 지식이 모이게 된다. 문서를 신경망처럼 연결해 지식을 만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 제품 이름이 사이냅이었다."

■첫 서비스 실패했지만…핵심 기술 상품화 성공

처음 기획한 서비스인 사이냅은 2년 만에 뒤탈을 우려해 접었다. 그런데 원천 검색 기술에 관심을 갖는 기업이 나타났다. 네이버였다. 네이버 이해진 창업자는 전 대표의 2년 선배기도 하다. 네이버에 원천 기술을 제공한 후로 다른 포털, 기업 등에도 팔리면서 사이냅소프트의 검색 기술은 하나의 B2B(기업간 거래) 상품으로 거듭났다.

“사람들이 사이냅에서 문서를 공유하기보단 음악, 동영상 파일 같은 저작권에 위배되는 것들을 많이 공유했다. 저작권 협회에서 (삭제해 달라는) 공문을 많이 받게 됐고 내가 하면 안 되는 비즈니스인가 싶었다. 그래서 운영 2년만에 이 사업을 접었다. 법적으로 문제가 있을 만한 서비스를 하는 게 자랑스럽지 못해 떳떳한 사업을 하고 싶었다. 애초에 사용자 많이 모으는 게 목표였는데 그래도 회원 수는 몇 십만 명 됐다. 그때 회사 이름은 ‘수퍼스마트’였는데 6개월 후에 사이냅으로 바꿨다. 작은 회사가 브랜드와 회사명을 따로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서비스 자체엔 관심이 없지만 핵심 기술에 대한 라이선스를 네이버가 요청해왔다. 당시 우리는 기술만 팔아본 적은 없었다. 왜 필요하냐고 하니 문서 검색을 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단순한 답이 왔다. 우리는 네이버 안에서 문서 검색을 할 수 있도록 모듈을 판매했다. 네이버에 한번 판매하니 이후엔 다음도 한다고 하더라. 그 다음엔 엠파스도 문서 검색 서비스를 하겠다 해서 우리 기술을 제공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팔려나갔다. 포털에서 문서 검색이 되니까 일반 기업에서도 하겠다고 했다. 이메일 서비스 기업도 그 안에서 필터링을 하기 위해 우리의 기술을 가져다 썼다.”

2016년 사이냅소프트 체육대회에 참가한 전경헌 대표 모습.

전 대표가 처음으로 기획한 모듈 상품인 문서 분석 솔루션이 업계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다음 모듈도 쭉쭉 만들어나갔다. 전자문서에 관한 거의 각종 솔루션들을 모듈로 개발해 판매했다.

“문서를 검색하기 위한 문서 분석 솔루션인 ‘문서필터’가 우리의 첫 상품이었다. 이후 텍스트뿐 아니라 서식이나 색, 양식까지도 추출해 화면에 보여줄 수 없을까 고민하다 만든 것이 ‘문서뷰어’였다. 웹에서 문서를 그대로 보여주는 솔루션이다. 2008년에 또다시 네이버로부터 연락이 왔다. 문서뷰어 기술을 조금 고쳐서 수정과 저장이 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도록 요청했다. '오피스'를 만들어달란 거였다. 하는 김에 오피스도 만들자 해서 오피스 모듈도 만들었다. 네이버 오피스에는 지금까지 계속 기술을 제공 중이다. 화면 상 보이는 그대로를 저장할 수 있는 'PD포커스', 이미지 속 텍스트를 인식하는 '광학문자판독(OCR)' 기술까지도 만들었다.”

전자문서 한 우물 기업…모바일시대 리딩 기회 놓쳐 아쉬워

전 대표는 지난 20년 간 사업적 성과에 대해 잘한 일, 후회하는 일을 동전의 양면처럼 평가했다. 전자문서 한 우물만 파며 다양한 전자문서 솔루션들을 모듈화 해 판매한 전략을 잘한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변화하는 디지털 트렌드를 빠르게 잡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라고 답했다.

2017년 사이냅소프트 추계워크샵 단체 사진.

“전자문서 시장 쪽으로만 진출하다 보니까 우리나라 중앙정부 홈페이지의 거의 모든 곳에 우리 문서뷰어를 제공할 수 있었다. 지자체에도 90% 정도 공급한다. 전국 초중고등학교 홈페이지 절반가량에 우리 기술을 제공해 대한민국 국민들이 문서 정보를 쉽게 볼 수 있게 하는데 기여했다.

한 우물만 파는 것은 좋았다. 그러나 모바일 시대가 됐는데 우리가 리딩하는 회사가 되는 타이밍은 놓친 감이 있다. 그 시대를 빨리 앞서가는 카카오 같은 회사들은 굉장히 빨리 큰 회사가 됐다. 패러다임이 바뀔 때 빨리 적응해 시장을 주도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몇몇 서비스들을 개발하려고 하다가 돈만 쓰고 성공시키지 못한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포털보다 더 많은 문서들을 모아 통합 검색해주는 사이트를 운영하고자 했으나 일만 많고 돈도 많이 들어갔다.“

■AI 전자문서 기업으로 새 20년 기대

라떼는닷컴 기획의 단골 질문인 은퇴 후 계획에 대해선 전 대표는 “아직 이르다”며 오히려 “새로운 10년, 20년”을 내다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내가 검색을 전공하며 배우던 당시엔 검색도 인공지능이라고 했다. 자연어 처리를 해야 하니까. 그런데 그때 내가 배운 인공지능과 지금 나오는 딥러닝 인공지능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도 과거 엠파스에서 책을 펴 스캔할 때 검색해주는 OCR 기술을 했었다. 그때는 다른 회사의 기술을 가져다 했었다. 자동차 번호판 인식 OCR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AI로 포장된 알고리즘일 뿐이었다. 과거엔 일명 룰베이스로, 이미 있는 규칙을 컴퓨터에 입력해 만든 인공지능이었다. 지금은 진짜 인공지능이다. 데이터를 주면 컴퓨터가 규칙을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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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OCR은 다른 회사들의 동종 기술에 비해 강점이 있다. 학습 데이터를 구축하는 게 굉장히 큰 일인데 우리는 오피스 등 문서 전문 솔루션을 하는 회사니까 방대한 자료가 우리에게 있다. 학습자료를 생산, 관리하고 학습시키는 데 다른 회사들보다 우위에 있다.

우리는 뿌리에서 쭉 올라온 넝쿨 같은 회사다. 아직 은퇴 후 계획을 말하기는 이르다.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면 토끼 이야기가 나오는데 토끼가 ‘굴이 얼마나 깊은지 가보자’라고 한다. 나도 갈 수 있을 때까지 가봐야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