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최근 한국판 뉴딜을 야심차게 발표했다. IT산업이 국가적 핵심의 위상을 차지했다는 점에서 IT업계의 기대를 살 만하다. 업계는 전체 방향성에 공감하면서도, 실행 방법에는 아쉽다는 반응이다. 각각의 뉴딜 사업에 자금을 직접 투여하는 방식이 많은데, 이는 경쟁력있는 국내 IT기업을 키워내는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는 것이다.
지난달 발표된 한국판 뉴딜 정책의 요지는 정부가 수요를 창출해 관련 IT기업에게 직접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다. 데이터, 인공지능(AI), 디지털 SOC, 비대면 산업 등 여러 분야에서 조단위의 예산을 투입하는 공공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민간의 수요자에게 관련 솔루션 제공기업을 연결시켜주면서 비용도 지원한다.
수요를 정부가 직접 창출해 공급을 이끌어내고, 관련 산업을 활성화시켜 일자리와 산업 규모를 함께 키우겠다는 발상이다.
IT업계는 정부의 방향성에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다만 정부의 공공자금이 엉뚱한 곳에서 낭비되고, 허약한 IT 생태계를 만들어낼 소지가 크다는 의견이 나온다.
2000년대 중기 IT화 사업의 씁쓸한 뒷맛 되풀이 말아야
과거 2000년대 정부 주도로 기업의 정보화 사업에 자금을 지원했던 전례가 많았다. 2000년대 초반 '중소기업 IT화 사업'이 대표적이다. 당시 정부는 1천300억여원의 예산을 투입해, ERP나 SCM 등의 IT시스템을 구축하는 중소기업을 지원했다.
이 사업은 국내 중소기업의 IT 정보화 보급이란 성과를 거뒀지만, 씁쓸한 결과도 있었다. 사업 과정에서 일류로 성장한 국내 IT기업은 거의 없었다. 수많은 ERP, SCM 관련 솔루션업체가 난립해 국가 자금을 나눠 가졌고, 2006년 사업 종료 후 대부분의 업체가 사라졌다.
SW산업이 유아기였던 2000년대 초반과 달리 한국 SW도 많이 성장했다.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전문업체가 여럿 생겼고 상장사도 많아졌다. 하지만, 각 SW기업들은 저마다 장벽에 막혀 더디게 성장하는 중이다. 정부의 공공 SW 수요 창출 정책이 대대적으로 나온 만큼 국내 SW업계 성장의 새 모멘텀으로 작용할 것이란 기대감이 없지 않다.
전처를 밟지 않으려면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게 업계 의견이다. 일부 소프트웨어의 경우 글로벌 기업이 독과점하는 경우가 많은데,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의 솔루션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공SW 국산화 비율, 경쟁 환경 조성 시급
국내 공기업 다수는 운영체제(OS), 데이터베이스(DB), ERP 등을 외국 소프트웨어에 의존하고 있다. DB의 경우 조금씩 국내 솔루션 도입처가 증가하는 추세지만, OS와 ERP는 여전히 외국산 일변도다. 행정안전부의 '2019년 공공부문 정보자원 현황통계'에서 공공기관 사용 SW 중 국산 비중은 절반 아래고, 핵심인 데이터베이스와 웹, 웹애플리케이션서버(WAS)의 국산 비중은 각각 12%, 36%에 불과하다. ERP의 경우 정부부처 그룹웨어인 온나라시스템 영향 탓도 있지만, 매출 1천억원 이상 공기업 35곳 중 국산 비율은 2%에 불과하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SW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국내 업체의 제품 경쟁력이 많이 향상됐음에도 아예 검토 단계에서 국내 솔루션이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며 "국산 SW가 발전 하려면 실제 프로젝트를 통해 경험을 쌓으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야 하는데 경쟁 자체에도 진입하지 못하면서 성장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프트웨어진흥법 상 대기업의 공공 사업 참여제한 조항도 또 다른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공공 SW사업은 구매와 용역을 구분해 발주하는데, 중대형 시스템의 상용 SW 활용사업의 경우 패키지 공급사는 구축 용역에 참가하기 힘든 구조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은 공공 SW사업에 다양한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하게 되는데, 일정 규모 이상의 패키지 공급사가 참여를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며 "참여제한 조항을 현실에 맞게 바꿔 자기 생산 제품을 보유한 기업의 경우 규제에서 자유롭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지원사업 중 연구개발 분야가 상용 SW업체에서 활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또 다른 산업계 전문가는 "국내 솔루션 기업이 새로운 기술 트렌드를 받아들이고, 이를 적용한 상품을 개발해 공공기관의 업무 효율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을 지원해야 한다"며 "이렇게 만들어낸 산출물을 다시 공공에서 적극 구매하고, 수익을 차후에 나눠갖는 구조를 만들면 국내 업체가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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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KOITA)에서 실시하는 ‘우수연구개발(R&D) 혁신제품 지정제도’를 확대, 강화하는 게 대안으로 제시된다. 우수연구개발 혁신제품 지정제도는 과기정통부의 R&D 과제를 민간 기업에서 수주하고, 이 과제로 개발된 제품 중 우수한 혁신성과를 낸 것에 공공조달을 지원한다. 지정 제품은 3년 간 공공조달에서 수의계약을 통해 공급될 수 있다. 올해 9개 기업이 인증을 받았는데, 그 규모를 더 확대 개편해 중소기업으로 한정된 자격범위를 중견기업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 SW 전문가는 “SW분야는 개발에 많는 투자가 이뤄져야 하고, 전문성이 높을수록 그 성과를 외부에서 인정받기가 힘들다”며 “정부 디지털 혁신 사업에서 혁신성을 갖춘 다양한 국내 상용 소프트웨어가 빠르게 채택될 수 있도록 판로 지원 방안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