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쓸이’라는 표현이 가요계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최근 국내 전기차 시장 판매를 다룬 기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표현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테슬라 차량 판매가 다른 국내 전기차들보다 많아, 테슬라가 전기차 보조금을 싹쓸이했다는 문구를 국내 일부 매체 등을 통해 자주 볼 수 있다.
일부 매체 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테슬라 전기차 판매량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들이 많다. 테슬라 차량 판매가 앞으로 더 늘어나면, 국내 업체들의 전기차 판매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보조금 혜택을 국내 업체 전기차에 유리하게 줘야 한다는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의 입장도 나왔다.
눈에 띄는 모델 없었던 국내 승용 전기차 시장
하지만 우리는 이같은 현상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테슬라 차량 판매가 증가하는 원인 중 하나는, 올해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국내 업체의 새로운 승용 전기차 출시 부재다. 좀 더 새롭고 신선한 차량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수요를 국내 업체들이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국내 업체 전기차 중 그나마 눈에 띄는 변화가 이뤄진 모델은 코나 일렉트릭이다. 현대차는 올해 초 코나 일렉트릭 상품성 개선 모델에 기존 8인치 대신 10.25인치 와이드 디스플레이를 탑재시켰다. 인포테인먼트 강화 전략의 일환이다. 그러나 주행거리는 기존과 같은 406km를 유지했고, 테슬라 모델 3 등을 겨냥할 수 있는 특별한 마케팅 전략도 보이지 않았다.
기아차 니로 EV, 쏘울 EV 등도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니로 EV는 한 때 유럽처럼 디자인 변경 모델이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하지만 기아차는 올해 니로 EV 국내 판매 모델에 특별한 변화를 주지 않았고 1회 충전시 주행 가능거리 등도 기존 385km로 유지했다. 쏘울 EV는 올해부터 트림별로 배터리 용량을 차별화(프레스티지 250km, 노블레스 386km)하는 전략을 취했지만 판매 상승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주행거리를 크게 늘린 국내 업체 전기차는 한국GM 쉐보레 볼트 EV였다. 기존 383km 주행거리를 414km로 늘렸다. 또 후방 카메라 디스플레이 화질도 개선했다. 하지만 테슬라 차량을 압도할 만한 주행보조(ADAS) 시스템이 추가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 결국 볼트 EV 판매량도 눈에 띄게 늘어나지 않게 됐다.
국내 업체들의 소극적인 전기차 판매 전략이 올해 이어지면서, 7월 국내 업체 4개사(현대차, 기아차, 르노삼성차, 한국GM) 전기차 판매량도 크게 줄었다. 지디넷코리아가 국내 업체 4개사(현대차, 기아차, 르노삼성, 한국GM)를 대상으로 7월 전기차 판매량을 종합한 결과 총 2천339대가 판매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동월 대비 무려 27.5%나 감소한 것이다. 이 수치는 현대차 포터 일렉트릭, 기아차 봉고 EV 등 전기 트럭 판매량을 합한 결과다.
결국 이같은 원인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은 점점 테슬라로 향해가고 있다. 아직 품질 이슈 등이 남아있지만, 다른 전기차 모델보다 혁신적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브랜드 전략이 통한 결과다.
전기차 고유 플랫폼 중요성, 일찍 파악했다면 어땠을까?
카이즈유 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테슬라의 국내 신차 누적 등록대수는 7천143대다. 이중 모델 3는 6천888대로 전체 누적 판매의 약 96.4%를 차지한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연간 누적 테슬라 판매 대수는 1만대를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모델 3와 경쟁해야 할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은 같은 기간 5천138대에 그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국내 업체들의 전기차들이 올해 힘을 못 쓰고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전기차 고유 플랫폼 개발이 다른 업체보다 약 2년 정도 뒤쳐진 것과 연관이 된다.
GM 미국 본사는 지난 2016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6에서 고유 전기차 플랫폼이 들어간 볼트 EV 양산형을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당시 메리 바라 GM 회장이 기조 연설을 통해 차량을 발표했는데, 적절한 가격으로 장거리 전기차를 구매할 수 있는 포문을 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는 어땠을까? 현대차는 같은 해에 열린 제주전기차엑스포에서 한번 충전으로 최대 191km 주행 가능한 아이오닉 일렉트릭 전기차를 최초로 공개했다. 실질적인 판매 시기는 아이오닉 일렉트릭이 볼트 EV보다 앞섰지만,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기존 내연기관 차량 플랫폼을 개조해 전기차 다운 신선함이 없었다는 평가다. 게다가 주행 가능거리도 다수의 일반 소비자들이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업계에서는 현대기아차가 좀 더 빨리 전기차 고유 플랫폼 개발에 착수했다면, 올해 전기차 판매 시장에서 테슬라를 꺾었을 수도 있다는 평가다. 전기차 고유 플랫폼을 갖춰야 배터리 등의 설치가 용이해지고, 단점으로 여겨졌던 실내 공간 확보에도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기아차는 너무 늦게 이 중요성을 파악했고 뒤늦게 CES 2019에서 E-GMP 전기차 플랫폼 구상도를 공개했다. E-GMP 플랫폼이 적용된 전기차는 내년 출시 예정인 현대차 NE와 기아차 CV 등에 적용된다.
전기차 보조금, 국내 업체에만 유리해지면 역차별 우려
국내 업체의 전기차들이 올해 힘을 쓰지 못하면서,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 등 일부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이 전기차 보조금 개편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처럼 우리나라도 자국 업체의 전기차에 더 혜택을 주는 방향에 대해 검토해볼 필요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이 오히려 다른 국가로부터 역차별을 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올해 상반기 자동차산업동향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기차 수출대수는 코로나19로 인한 자동차 수요 감소에도 불구하고 전년 동기 대비 81.9% 늘어난 5만5천536대다. 특히 유럽과 북미 시장에서는 코나 일렉트릭의 입지가 더 강화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우리나라 정부가 국내 업체 전기차에만 보조금 혜택이 유리하게 적용시키면, 코나 일렉트릭 등의 모델의 해외 판매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일부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은 보조금 문제를 떠나서 소비자들의 전기차 수요 조사에 더 전념해야 한다는 지적을 내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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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일부 매체에서는 정부가 내년부터 고가 전기차 보조금 혜택을 중지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왔다. 여기서 말하는 고가 전기차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입차 업체 전기차들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환경부는 이같은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테슬라 등 수입차 업체 전기차 판매를 규제할 수 있는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하루 빨리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국내 전기차 판매 부진을 남탓으로 여기지 말고, 국내 산업 자체가 문제가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 이 점검 결과가 빨리 나오면, 내년부터 출시될 현대차 NE와 기아차 CV 판매에 힘이 생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