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삼성생명이 궁지에 내몰렸다. 삼성 금융계열사의 삼성전자 지분 보유를 제한하는 이른바 '삼성생명법'이 다시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수년간 공회전을 거듭한 사안이지만 올해는 정부와 여당이 법안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한 상태라, 삼성생명으로서는 서둘러 대응책을 모색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회가 보험업법 개정 논의를 본격화하자 삼성생명은 정치권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박용진·이용우 의원 등이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사의 계열사 채권과 주식 보유한도 산정할 때 그 기준을 취득원가가 아닌 공정가액(시가)으로 하자는 내용이 골자다.
이는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모든 회계처리를 시가로 평가하도록 했으나 보험사만 이를 원가로 계산해 형평성 시비가 일고 있다는 진단에서다. 현행 보험업법에선 보험사가 계열사 채권과 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한도를 총자산의 3%로 제한하는데, 이를 취득원가로 계산한다는 게 그간의 논쟁거리였다.
삼성생명은 불편해하는 눈치다. 지금은 삼성전자 주식을 들고 있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지만, 법안이 처리되면 상당량을 처분해야 하는 탓이다.
1분기말 기준 삼성생명은 지분 8.51%(약 5억815만주)를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 1980년 이전에 취득해 원가는 5천400억원에 불과하나, 시가로는 26조8천800억원에 이른다. 같은 기간 이 회사의 총자산인 약 309조원의 8.5%에 해당하는 규모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보험업법 개정 시 삼성생명이 약 20조원 규모의 삼성전자 지분을 팔아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개정안에 '삼성생명법'이란 별칭이 붙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사실 이 법안은 20대 국회 때도 발의됐으나 야당의 반대로 폐기됐다. 그러나 이번엔 176석을 확보한 여당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데다 금융위원회까지 힘을 실어주면서 법안 처리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다.
지난 7월28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박용진 의원은 "보험업법엔 총자산 3% 이상의 계열사 지분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돼 있지만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8% 이상 갖고 있다"며 법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어 "삼성생명의 총자산 중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14%인데, 다른 생명보험사의 총자산 대비 주식 비중은 0.7%로 미미한 수준"이라며 "나중에 삼성전자에 위기가 오면 삼성생명이 우리 경제의 슈퍼 전파자가 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 역시 "그동안 강제할 만한 수단이 없어 삼성생명 측에 자발적 개선 노력이 바람직하다고 환기시켰다"면서도 “산정 기준을 시가로 바꿔 제 때 위험성을 파악하도록 하는 방향성에 대해선 동의한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다만 삼성생명 측은 대안을 마련하기까진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아직 법안이 처리되지 않았고, 간단한 문제도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지분 매각 시 삼성생명에서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그룹 지배구조에 변화가 불가피한 만큼 신중을 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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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삼성생명으로서는 삼성전자를 대체할 만한 투자 대상을 찾는 것도 고민거리다. 지난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로부터 7천196억원의 배당금수익을 거둔 바 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국회에서 논의가 진행 중인 만큼 지금으로서는 추이를 지켜보는 상황"이라며 "향후 처리될 법안에 맞춰 현실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