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돌에 상장한 솔트룩스…"1억명이 쓰는 AI 생태계 조성하겠다"

[라떼는닷컴] 이경일 솔트룩스 대표

컴퓨팅입력 :2020/07/31 10:56    수정: 2020/08/01 07:38

90년생들에게는 낯설게 들릴 이야기다. 약 20여년 전 우리나라에 IT와 인터넷 분야를 뜻하는 이른바 '닷컴 산업' 열풍이 불었다. 내로라 하는 우리나라 IT 기업들도 대부분 이때 등장했다. 말 그대로 버블에 해당한 벤처기업들은 다 도산했고, 알짜 기업들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기업·공공·개인 소비자 영역에서 명맥을 잇고 있다. 그렇게 생존한 20년 전 젊은 창업자들은 어느덧 중견기업 대표로 살아가고 있다.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를 뜻하는 신조어)'라고 운을 떼며 그간 겪은 산전수전을 털어놓을 법 하다. 이들의 그간 소회와 인상 깊은 기억들을 릴레이로 들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2000년 창업해 1세대 벤처 기업으로 불리는 인공지능(AI) 기업 ‘솔트룩스’가 지난 23일 코스닥 시장에 상장을 완료했다.

창립 초기 검색엔진과 PDA용 통번역기 솔루션 사업을 시작으로 줄곧 20년간 자연어 처리 분야에 몰두했다. 이제는 PaaS(클라우드 상에서 빌려 쓰는 플랫폼)형 인공지능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상장 후 회사의 새 먹거리로 삼았다.

솔트룩스의 핵심 원천 기술은 ▲심층적인 대답이 가능한 대화형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기반 초대규모 데이터 분석 기술이다. 솔트룩스의 대화형 인공지능 기술은 콜센터, AI 스피커, 전문 챗봇, RPA 연계 등에 사용된다. 대규모 데이터 분석 기술은 시장 분석, 징후 감지, 스마트 공장, SNS 분석 등 다양한 산업에 활용된다.

이경일 솔트룩스 대표

지디넷코리아는 솔트룩스가 기업공개(IPO)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지난 8일 이경일 솔트룩스 대표를 만나 상장과 창립 20돌의 겹경사를 맞은 소회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지난 20년을 되돌아보건대 사람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사람 일로 치일 때 대표로서 자신의 리더십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도 해봤다. 그럴 때마다 칠전팔기로 용기를 내보고자 다짐할 도리밖에 없었다. 사업가로서의 목표는 확고해졌다. AI 기업들이 모인 생태계를 조성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다짐대로 그는 상장 완료를 이틀 앞두고 AI 스타트업 10곳에 투자 기회를 약속하는 협약식을 진행했다. AI 생태계 조성이란 자신의 목표에 한 발짝 나아간 셈이다.

■30세까지 창업 두 번…"시장 배우고, 리더십 고민"

이경일 대표의 창업 이야기의 시작은 대학 시절로 돌아간다. 1971년생인 이경일 대표는 30살 때 솔트룩스의 전신인 시스메타를 창업했다. 그보다 앞서 또 한 차례 창업한 경험이 있다. 인하대 전자전기공학과 3학년 재학시절 프로그래밍 언어를 기계어로 바꿔주는 컴파일러를 스스로 개발해 미국에 수출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컴파일러 개발 회사를 차렸다. 동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을 때까지도 이 회사를 운영했다. 1997년 LG전자 중앙연구소 입사 후 지분을 정리하고, 2000년 두 번째 창업으로 자연어 처리에 대한 기술을 제공하는 시스메타다.

이경일 솔트룩스 대표의 대학 시절 모습.

“시스메타를 창업한 것은 첫 번째 창업 회사의 지분을 정리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첫 회사는 벤처붐이 일면서 나중에 회사 가치가 장외 거래에서 250억원까지도 갔었다. 당시 나의 지분이 가장 많았다. 내가 지분을 처분했을 때는 1천500만원정도였다. 시스메타 창업 전 카네기멜론대학 박사과정 입학 합격통지서를 받았는데 다시 창업을 하기로 선택했다.”

이 대표는 솔트룩스 첫 5년이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맨땅에 헤딩이었기 때문이다. 뛰어든 사업들에 대한 고민이나, 다른 회사와의 합병 과정에서 골머리를 앓았다. 첫 2년은 지금 솔트룩스가 전문으로 내세우는 자연어처리 외에도 PDA용 통번역기 소프트웨어 개발 및 유통에 대한 사업도 진행했다.

“내가 가장 맘이 저렸을 때는 2년 동안 돈을 벌지 않고 기술 개발만 했을 때다. 첫 회사 지분을 판 돈, 직장생활 하며 모은 돈 2억원을 그동안 다 쏟아 부었다. 그 돈이 떨어지고 장인장모님이 직원들 월급 주라고 지원해주시기도 했다. 창업자의 마음과 일하는 직원들의 마음이 같지 않았으니, 그때 리더십이란 무엇일까 고민이 많았다. 한 방향을 보도록 하고 어려움 극복하면서 동기를 부여해가는 게 어려웠다.

2년 간 연구 끝에 2가지 제품을 내놨다. 자연어 처리 엔진과 PDA용 통번역기. PDA 통번역기는 백몇십 개를 팔았는데 충분한 돈이 되지 못했다. 그때로서는 조악한 편이었다. 우리가 HP 등 몇 개 제조사의 PDA를 구매해 거기에 후조작으로 소프트웨어를 얹어 팔았다. 지금 같아선 업체 설득해서 처음부터 타 소프트웨어을 설치하겠지만, 그때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큰 돈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돈이었다. 우리는 직접 소비자에게 효용을 주는 사업을 해보고 싶었나보다. 그때 PDA가 15만원정도였고, 우리 소프트웨어 10만원 해서 총 25만원에 되팔았다. 100대면 3천만원정도 아닌가. 생각해보면 PDA란 걸 구매할 수 있는 소비자는 극소수였다. 작은 시장이지만 우리 소프트웨어를 구매한다는 가능성을 봤고, 타깃 마케팅과 시장성의 문제 등을 배웠다. 

그 다음 즉각적으로 사업을 바꾼 게 검색시장이었다. 창업 2년 반만이었다. 당시 우리는 검색엔진 후발주자였다. 이미 앞선 회사 서너 개가 있어서 그곳들은 매출 30억~40억원 하고, 직원도 50명 이상이었다. 우리는 5명 정도라 15등 정도 했었을 거다. 큰 시장 속 미약한 입지에서 점점 파이를 챙겨가면서 컸고 우리가 앞선 검색엔진 회사들보다도 먼저 상장하는 회사가 됐다.“

■"사람은 늘 어려워"…인재관 '1V3A'로 바로 세워

시스메타는 2003년 모비코란 회사와 합병했고 사명을 솔트룩스로 변경했다. 그렇지만 이 대표는 당시 합병 대상 회사에 대해 면밀히 조사하지 않고 합병을 추진한 점은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상대 회사가 인공지능 연구를 위한 데이터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했고, 업력도 10년이나 되니 많은 걸 배우면서 성장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합병하고 보니 데이터가 없었다. 겉으론 보이지 않았지만 부채도 상당 부분 있었다. 그래서 합병한 다음 해에 적자가 됐다. 재무제표도 보고 사무실 실사도 하고 인터뷰도 했어야 했는데, 마음이 맞으니까 믿자는 생각이었다. 그 전 회사 사장님이 좋은 분이셨기 때문에 키워가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만 사업적 관점에서 보면 쉽지 않았다. 

또 한 번은 재무 인력을 잘못 선임해 전체 회사 물을 흐린 적이 있어 후회가 된다. 또 사람 일로 스트레스를 떠안고 회복하는 게 어려웠다. 이때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응원해준 것은 합병 회사 사장님이었다. 그분이 진정한 리더십이란 자기가 맞다고 믿는 일에 용기를 갖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알려주셨다. 이 말을 아직도 마음 깊이 새긴 채 살고 있다. 아주 간곡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경일 솔트룩스 대표 옛 사진.

30대 초반의 젊은 창업자는 사람 대하기가 늘 어려웠고, 이젠 50대에 접어든 그는 지금도 사람이 가장 어렵다고 토로했다. 인간관계에 대한 고충이 겹겹이 쌓이면서 회사 인재관도 확실히 설정했다. ‘1볼트3암페어(1V3A)’. 1V는 가치(Value), 3A는 지속가능함을 위한 태도(Attitude), 능력(Ability), 성취(Achievement)를 뜻한다. 

■"재밌게 해보자"는 요즘 스타트업 분위기, 나 때는 말야 

20년 전 벤처 세대와 달리 현재 스타트업 세대의 경우 창업 문턱이 낮아진 것 같다고 이 대표는 평가했다. 2000년대엔 벤처 회사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선 투자란 개념보다는 연대보증으로 돈을 끌어와야 했다. 지금은 스타트업과 투자 생태계가 대폭 확장됐다. 한국벤처투자협회에 따르면 작년 기준 스타트업 1천600여곳에 흘러든 투자금은 4조2천억원 이상이다.

2007년 KM&EDM 행사에 참여한 솔트룩스 이경일 대표와 직원들.

"우리 때는 사업을 한다고 하면 약간 목숨을 걸어야한다는 절박함도 있었다. 사업하다 망하면 패가망신이었다. 보증을 써서 돈을 빌렸는데 회사가 잘 안되면 가족까지 피해를 봤다. 1세대 벤처라고 말하는 1997~2005년 회사들을 보면 직원들에게 급여와 퇴직금을 주지 못하면 대표한테 다 빚으로 올라갔다. 사명감뿐 아니라 명확한 목표를 달성하며 견뎌내야 했다. 그런데 요즘 스타트업 종사자들은 '재밌게 해보자', '안 되면 기업 취업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좀 더 쉽게 생각하는 것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잘못했다고는 생각 안 한다. 달라진 환경 속에서 서로 다른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스타트업 시장에 풀린 자금만 수조원이다. 우리 때는 수천억 수준이었는데 100배 이상 늘어난 거 같다. 20년 전엔 투자를 받았어도 상장하는 곳이 소수다보니, 순수한 투자보다는 3년 조건부 투자를 받았었다. 기한이 지나면 전환 사채로 바뀌는 것이다. 이자율이 7~12%까지도 올랐다."

솔트룩스가 코스닥 상장과 동시에 스타트업 10곳과 업무 협약을 맺었다.

앞으로는 솔트룩스의 AI·빅데이터 기술을 중심으로 여러 스타트업들과 연합한 생태계를 이루는 게 목표다. 올해 3월 처음으로 자체 인공지능 스타트업 공모전을 실시해 최종 결선에서 10개 팀을 선정했다. 이들에게 최대 100억원의 투자 유치 기회를 부여하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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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AI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접목할 수 있는 시장이 넓다고 판단한다. 서비스 기업 입장에선 알고리즘이나 이런 것도 필요하지만 데이터를 축적하기까지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어갔다. 스타트업은 시장에서 짧은 시간 내에 승부를 봐야 하는 ‘타임투마켓’인데, 솔트룩스의 기술을 이용하면 그 시간을 줄일 수 있다. 현재 우리가 투자한 회사는 8곳이고, 올해 10곳 이상에 투자할 계획이다. 향후 5년 동안 40~50개까지 늘어날 것 같다.

미국에서는 벤처캐피탈이나 액셀러레이터가 어떤 좋은 기업에 투자하기로 하면 금전적인 것뿐 아니라 그 회사를 다른 회사에 소개시켜주며 생태계를 만들어가는데 굉장히 노력한다. 미국 법인을 운영하며 느낀 점이다. 앞으로 우리 회사가 그런 역할을 하게 되는 게 내 꿈이다. 우리 회사를 2025년까지 세상 사람 1억명과 함께하는 AI 기업으로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