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기반 포인트 통합 플랫폼 '밀크'는 소비자 입장에서 반가운 서비스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짜투리 포인트는 그냥 소멸되기 쉬운데, 밀크는 암호화폐 밀크코인을 매개로 이런 포인트를 현금화하거나 필요한 다른 서비스의 포인트로 교환할 수 있게 해준다. 포인트 소유권을 보다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했고, 포인트 활용도도 크게 확장시켰다.
그런데 포인트를 발행한 기업 입장에선 얘기가 좀 다르다. 고객의 재구매를 유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포인트를 발행했는데, 이용자가 이를 현금화하거나 다른 곳에서 사용하는 걸 반길 리 없다.
밀크에 연동되는 포인트가 많아야 이용자가 늘고 서비스도 활성화될 수 있으니, 기업들의 '포인트 빗장'을 푸는 일이 밀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로 보인다.
밀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최근 만난 밀크 운영사 밀크파트너스의 조정민 대표는 "기업이 포인트를 개방하면 신규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밀크에서 이용자는 포인트를 팔 수도 있지만, 필요한 포인트를 할인된 가격에 살 수도 있다. 이때 밀크가 중간에서 포인트를 매입하고 판매하는 중개자 역할을 한다. 이런 구조로 기업이 발행한 포인트는 밀크에서 소유자만 바뀔 뿐 수량은 그대로 존재하게 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포인트가 살아 있기 때문에 재구매 유인 효과가 여전한데다가, 신규 고객이 유입될 가능성도 생긴 셈이다.
조 대표는 "이용자 측면에서 보면 포인트 교환이지만 참여 기업 입장에서 보면 고객이 교환되는 구조"라며 "모든 기업들이 신규 회원 확보를 위해 매달 상당한 마케팅비를 쓰고 있는데 밀크와 연동하면 포인트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새로운 유저와 연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파트너 기업 확보가 서비스 성패 결정...어떻게 풀었나보니
Q. 기업 담당자들을 만나면 반응이 어떤가. 로열티 프로그램으로 발행한 포인트가 다른 업체에 넘어가는 걸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실제 기업들이 포인트 통합이나 교환에 선입견이 있다. 기업 담당자를 만나면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우리 포인트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이 문제가 우리가 사업을 시작할 때 첫 번째 숙제였다. A사 포인트가 B사로 넘어 갈 때 단순히 기업끼리 정산하고 포인트는 소멸시켜 버리면 지적한 문제가 생긴다. 다시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라고 포인트를 준 건데 다른 서비스로 가져가서 쓰거나 현금화해 버리는 것을 당연히 원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구조는 다르다. 이용자가 A 서비스의 1만 포인트를 팔면 이 포인트는 밀크가 사들인다. 그러다가 A 서비스의 포인트가 필요한 사람이 이 포인트를 사갈 수 있다. 새로운 사람이 포인트를 가지고 A 서비스에서 쓰니까, 기업 입장에서는 포인트 소유자만 바뀌는 것이다.
정리하면 밀크는 포인트를 팔고 싶은 사람과 사고 싶은 사람을 중개하는 마켓이다. 우리는 이용자 간 포인트 중개거래 플랫폼이라고 부른다."
Q.포인트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도 포인트에 대한 통제권이 약해질 텐데, 기업 입장에서 포인트를 개방할 동기가 적을 것 같다.
"포인트를 개방하면 진성 신규 이용자가 유입될 수 있다는 점이 기업들에게 큰 메리트다. 모든 기업들이 매달 신규 회원 확보를 위해 마케팅 비용을 상당히 쓰고 있다. 신규 회원 한 명을 늘리는 데 5천원 씩 비용을 집행하는 곳도 있다. 그렇게 확보한 신규 회원이 혜택만 받고 떠나는 '체리피커'일 가능성도 무시 못한다.
밀크는 포인트를 매개체로 참여 기업들의 이용자를 서로 연결시켜 준다. 모두 포인트를 사용해 서비스를 실제 이용할 진성 이용자들이다. 포인트 교환을 큰 그림에서 보면 기업 간 이용자 교환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야놀자와 신세계면세점이 밀크 얼라이언스에 참여해 있다. 앞으로 규모 비슷하면서 경쟁 관계에 있지 않은 업체들로 우선 얼라이언스를 구성하려고 한다."
Q.밀크 얼라이언스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은?
"다양한 업종 다양한 기업을 만나고 있다. 상반기 코로나19로 힘들어진 기업들이 가장 먼저 마케팅을 줄였는데 이런 상황이 밀크에게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밀크는 연합을 이루는 방식이니까 마케팅을 공동으로 진행하면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야놀자가 밀크 얼라이언스에 있기 때문에 기업들 입장에선 더욱 밀크 참여가 매력적일 수 있다. 야놀자 핵심 유저층은 왕성하게 경제 활동도 하고 소비도 하는 20대다. 이들은 작은 혜택과 포인트에 잘 움직인다. 이 사용자 층을 끌어 안고 싶어하는 기업이 굉장히 많다."
■토큰 투자자와 서비스 실사용자 모두 만족하는 서비스 만드려면...
Q.포인트를 밀크코인으로 교환해 주는 비율을 어떻게 결정하나?
"우리가 생각하는 콘셉트는 구둣방이다. 구둣방에서 백화점 상품권을 현금화할 수도 있고 구매할 수도 있는데, 이때 다 약간의 할인이 들어간다. 파는 사람은 액면가보다 약간 싸게 팔고, 사는 사람은 그만큼 약간 싸게 살 수 있다. 마찬가지로 밀크에서 포인트를 팔려면 조금 싸게 팔아야 하고 살때는 약간 싸게 살 수 있다.
할인 범위는 기업에서 설정해 놓는다. 할인 범위는 기업 마다 다른데 60~95% 사이에서 결정할 수 있다. 실제 거래되는 포인트 가격은 수요에 따라 달라진다. 포인트를 사겠다는 사람이 많아지면 가격이 오르고 적으면 떨어진다. 할인율이 수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포인트 사거나 팔 때 밀크코인이 매개가 된다. 지금 내 밀크앱에 1천100원 상당의 야놀자 포인트가 있는데 이걸 밀크 코인으로 바꿔 팔면 3.99 개를 받을 수 있다. 밀크코인이 업비트에 상장돼 있기 때문에 실시간 시세를 적용한 수량이다."
Q.할인된 가격을 포인트를 살 수 있으면,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포인트를 구매하는 사람도 생길 것 같다.
"우리가 가장 바라는 시나리오는 이용자들이 야놀자에서 10만원 짜리 숙박을 결제하기 전에 밀크앱 한 번 켜서 포인트 시세를 확인하는 것이다. 상품권처럼 서비스에서 액면가로 쓰지만 할인가로 구매할 수 있으니까, 이렇게 서비스를 쓰겠다는 사람이 나올 것 같다."
Q.밀크코인 가격에 변동성이 있으면, 이용자들 입장에선 포인트 구매에 사용하기 불편하지 않을까? 즉시 교환하지 않으면 가격이 떨어질 수도 있지 않나.
"맞다. 밀크코인은 가격 변동성이 있다. 우리도 포인트를 밀크로 전환하는 순간 이용자에게 '가격이 변동될 수 있다'는 팝업을 띄우고 있다. 실사용 목적이라면 밀크코인을 즉시 포인트나 현금으로 바꿔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소액 투자'라는 옵션을 고객들에게 더 열어줄 수 있다. 밀크로 바꿨을 때 가격이 오르거나 내리는 변동성을 감수하고 보유한다면 하나의 소액 투자가 될 수 있다.
지금 밀크에는 토큰 투자자(홀더)와 실사용자로 두 종류의 유저가 모두 존재하는데 결국 두 갈래가 하나로 합쳐질 것으로 본다. 홀더도 서비스 이용자가 되고 이용자로 들어왔던 사람도 밀크코인을 자산으로 보고 보유할 수 있을 것 같다."
Q. 스테이블코인으로 발행하는 것은 고려해보지 않았나?
"우리도 가격이 안정적인 스테이블코인을 고민 안해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을 만들려면 예치를 해야하는데, 파트너가 늘어날 때마다 포인트 교환을 위해 예치금을 늘려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스타트업이 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코인으로 발행하면 연동되는 포인트가 늘어날 수록 가치가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밀크코인 발행량은 13억개로 정해져 있는데 포인트는 파트너가 늘어날 수록 계속 규모가 커질 것이다. 포인트 규모가 커질 수록 한정된 수량 내에서 포인트의 가치를 담아야 하는 토큰은 가격이 올라갈 수 있다."
Q.글로벌 서비스도 가능할 것 같은데.
"우리도 글로벌 서비스를 목표로 하고 있다. 글로벌 호텔 체인, 우버나 그랩 같은 글로벌 모빌리티 기업들이 다 자체 포인트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런 기업과 블록체인으로 연결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코로나19가 끝나서 빨리 다양한 글로벌 기업과 제휴를 맺을 수 있길 바란다.
블록체인으로 포인트를 교환하겠다는 업체는 우리 말고도 많다. 백트(뉴욕증권거래소 모회사인 인터콘티넨탈익체인지가 설립한 암호화폐 업체)도 포인트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결국 누가 빨리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실현시켜서 사용자에게 선택 받느냐가 중요하다.
우리는 이미 서비스가 있고 기술과 교환 매커니즘이 검증됐다. 우리가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