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진의 Newtro] LGU+에 화웨이 쓰지 말라고?

데스크 칼럼입력 :2020/07/26 20:06

미국의 고위 관리가 국내 통신사를 지목하며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라고 요구하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로버트 스트레이어 미국 국무부 사이버·국제정보통신 담당 부차관보가 화상 브리핑에서 미국의 5G 안보 정책을 설명하면서 “LG유플러스 같은 회사는 믿을 수 없는 공급자로부터 벗어나 신뢰할 수 있는 공급자로 옮길 것을 촉구한다”고 말한 이후 입니다.

이 같은 보도를 접하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기업의 경영활동에 간섭해도 큰일 날 얘기를 미국의 고위 관리가 남의 나라 기업에 감 놔라 배 놔라 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동맹국이라고 하지만 선을 한 참 넘어섰습니다.

더욱이 스트레이어 차관보는 LG유플러스가 화웨이 장비를 포기하더라도 어떤 재정적 인센티브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걷어내라고 하면서도 그에 따른 비용은 온전히 LG유플러스가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또 LG유플러스가 통신 장비를 바꾸더라도 전체 비용의 10% 이하 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였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LG유플러스를 비롯한 SK텔레콤, KT 등 이동통신 3사가 서비스 중인 5G 서비스는 NSA(None Stand Alone) 방식입니다. 초기 이동통신 서비스들은 전국 커버리지도 갖춰지지 못하고 건물 내, 지하 등에서 통신이 되질 않기 때문에 통상 이전 방식과 병행해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3G, 4G 때도 유사한 방식으로 진화를 했습니다.

때문에 현재 제공되는 5G도 LTE와 연동방식으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커버리지가 부족해 많은 이용자들이 5G를 ‘LTE 우선모드’로 쓰는 것도 이 같은 이유입니다. 따라서 화웨이의 5G 장비를 걷어내기 위해서는 LTE도 함께 걷어내야 합니다. 10%가 아니라 수조원의 비용이 소요된다는 건 이 때문입니다.

앞서 영국에서 화웨이 장비 배제를 결정한 이후 브리티시텔레콤(BT)과 보다폰이 화웨이 장비를 교체하는데 최소 5년, 최대 7년이 소요될 것이라며, 자칫 5G 장비 교체가 2G, 3G, 4G 서비스의 블랙아웃이 발생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당시 영국의 디지털·문화·미디어·체육부 장관은 하원에 출석해 화웨이 장비 제거에 약 20억 파운드(약 3조290억원)이 필요하다고 밝혔고, 안드레아 도나 보다폰 네트워크 총괄은 수십억 파운드가 필요하다고 우려했습니다.

아무리 우리나라가 미국과 가장 가까운 군사동맹국이라고 하더라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 기업이 입을 피해는 상관없다는 식의 언급은 우려할 만합니다. 우리나라가 정치·경제적으로 미국이 중요한 국가지만 중국과도 경제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 같은 고충은 우리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에서도 고스란히 엿볼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 지난 23일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민간 부문에서 장비 도입은 정책적으로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한 사안”이라며 “정부는 안전한 5G 구축을 위해 민간과 협력해 적극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같은 날 장석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은 “정부에선 5G 보안이 제일 중요하고 잘 관리해야 한다”면서도 “구체적 기존 선정 등은 이통사가 여려 가지를 고려해서 결정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스트레이어 차관보의 발언은 논리적으로,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화웨이 장비의 보안 문제가 있다면 어떤 문제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뒤에 주장을 했어야 옳습니다. 미국이 결정한 일이 반드시 선(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화웨이가 통신 장비에 보안 문제가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스페인 정보국 산하의 CCN(Centro Criptologico National)로부터 EAL4 인증을 받고, 영국에서 공동 연구소를 설립해 소스코드를 공개한 것처럼 최소한의 입증이라도 해야 맞습니다.

오랫동안 화웨이의 보안 문제에 대해 국내·외 전문가들을 취재해 봤지만 거의 대부분의 이들은 보안 문제가 아닌 정치 문제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현재 합동참모본부 정책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김승주 전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은 페이스북에 “(화웨이의 보안 문제는)기술적으로 명확한 증거들이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황증거만 갖고 미국과 중국사이의 파워 게임에 끼어 있는 형국이니 사실 답이 없다”면서 네 가지 사안을 제안했습니다.

먼저, 미국이 백도어와 관련한 기술적 증거를 확보했는지 여부를 알아봐야 하고, 화웨이 장비의 설계도 및 소스코드 등을 확인하거나, 소스코드나 설계도 없이 바이너리 코드나 하드웨어 칩 자체로부터 백도어를 잡아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이 모든 일을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중 화웨이의 소스코드 공개는 지난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멍 샤오윈 한국화웨이 지사장이 적극 협력하겠다며 이미 약속한 상태입니다.

현재 LG유플러스를 비롯한 이동통신 3사는 정부의 디지털 뉴딜 정책에 맞춰 기반 인프라 역할을 하고 있는 5G의 전국망 조기 구축을 위해 적극 협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조금이라도 투자를 미루는 게 남는 장사인 통신사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렇듯 정부는 이통사들이 정부 정책을 따르더라도 최소한 기업 경영 활동은 기업 스스로가 자사 경영 방침에 맞춰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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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정부가 유료방송시장에 합산규제를 도입하려 했을 때나 이동통신 보편요금제 추진에도 위헌 가능성이 언급되는 현실에서, 장비 선정에까지 간섭하는 것은 위헌적 요소가 크기 때문입니다.

앞서 김승주 전 위원의 지적처럼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의 국익을 얻을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을 찾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