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3사 다 만난 정의선, E-GMP 성공 앞장 선다

[이슈진단+] 미래 전기차 플랫폼 예열 준비 마친 현대차그룹

카테크입력 :2020/07/07 14:50    수정: 2020/07/07 21:18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국내 전기차 배터리 주요 3사(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현장을 모두 다녀왔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적용할 E-GMP 플랫폼 성공과 수소전기차에만 집착한다는 대중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정 수석부회장의 전략으로 풀이된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지난 5월 12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지난달 21일 구광모 LG 회장과 회동에 이어 7일 최태원 SK 회장과 만나 미래 전기차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이들은 서울 본사가 아닌 전기차 배터리가 생산되고 있는 현장에서 직접 만났다. 새로운 기술을 직접 보고 습득하기 좋아하는 정 수석부회장의 의도를 맞추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수석부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회동 당시, 특별한 보도자료를 내지 않았다. 정 수석부회장이 삼성전자가 개발한 최신 전고체전지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회동이라는 것이 현대차그룹과 삼성전자의 공통된 설명이었다.

하지만 정 수석부회장이 구광모 LG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을 잇달아 만나면서, 현대차그룹의 미래 전기차 시장 전략에 대한 구상안이 확실하게 잡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2020년 신년사를 통해 전기차 전용 모델 출시 계획을 전했다. (사진=현대차그룹)

■E-GMP 플랫폼 성공위해서는 배터리 협력 다변화가 필수

정 수석부회장에겐 E-GMP 전기차 플랫폼 성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대차그룹은 다른 해외 완성차 브랜드와 달리 순수 전기차 플랫폼을 만들어낼 수 있는 노하우와 시간이 많이 뒤쳐졌기 때문에,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과의 긴밀한 협력방안 모색이 불가피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E-GMP는 ‘Electric – Global Modular Platform’의 준말인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다. 해당 플랫폼의 도면은 지난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9에서 최초로 공개됐다. 동력계 부품, 배터리 등의 배치와 교체 등을 용이하게 보다 효율적인 전기차 생산을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다.

게다가 전기차 플랫폼을 도입하면 뒷좌석 실내 거주 공간이 넓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쉐보레 볼트 EV 등 다른 완성차 업체 전기차들은 자체 플랫폼으로 넓은 뒷좌석 거주공간을 확보했다.

현대차가 CES 2019 현지에서 공개한 E-GMP 전기차 전용 플랫폼 (사진=정구민 국민대 교수 제공)

현대기아차가 그동안 내놓은 전기차들은 기존 내연기관차 플랫폼을 재활용했다는 비판이 일부에서 나왔지만, 당시 리튬이온배터리 기술의 발전 덕에 1회 충전시 주행거리가 평균 400km 가능하게 됐다. 또 아이오닉 일렉트릭 전기차의 경우, 다른 전기차 대비 높은 전비(전기차 연비)를 기록하는 등 현대기아차의 전기차 전략에 대한 가능성을 높였다.

하지만 미래 전기차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전기차 전용 플랫폼 도입 확대가 가장 중요하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총 44종의 친환경차를 만드는데 이중 절반 이상인 23종을 전기차를 만든다. 23종의 전기차 중 거의 대다수 모델이 E-GMP 기반의 전기차를 만든다는 것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7일 충남 서산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공장에서 SK이노베이션 배터리가 탑재된 '니로EV' 앞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각 사)

현대차그룹은 이번 배터리 3사 회동을 통해 향후 출시할 전기차의 배터리 탑재 계획을 공식화했다.

우선 내년에 나올 현대차 NE, 기아차 CV, 제네시스 전기차 등에는 SK이노베이션 배터리가 탑재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7일 보도자료를 통해 “SK이노베이션을 2021년 양산 예정인 E-GMP 플랫폼 전기차 1차 배터리 공급사로 선정한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E-GMP’ 기반의 현대·기아차 전기차에 탑재될 SK이노베이션 제품은 성능이 대폭 향상된 차세대 고성능 리튬-이온 배터리다. 전기차 전용 모델의 특장점들과 결합돼 고객에게 다양한 가치를 제공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현대차그룹은 SK이노베이션에 이어 LG화학을 2022년 양산될 E-GMP 플랫폼 전기차의 2차 배터리 공급사로 선정했다. 아직까지 2022년에 생산될 전기차가 어떤 종류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아이오닉 일렉트릭과 코나 일렉트릭 등에 LG화학 배터리를 탑재시켰기 때문에, 그동안의 협력관계가 꾸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은 현대차그룹의 1차 배터리 협력사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지만, 다양한 전기차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기술 확보에 주력할 전망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사진 왼쪽)과 구광모 (주)LG 대표가 22일 충북 청주시 LG화학 오창공장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LG)

관건은 삼성SDI와의 협력이다.

한 때 일부 언론과 자동차 전문가들은 현대차그룹과 삼성SDI 간의 협력이 가시화됐다며 제네시스 전기차에 삼성SDI 배터리가 들어간다는 예측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다. 이미 현대차그룹은 오래전부터 제네시스 전기차에 SK이노베이션 배터리를 탑재시키는 것으로 결정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5월 정의선 수석부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회동 당시 어떠한 보도자료를 내놓지 않았다. 정 수석부회장이 당시 삼성SDI 천안사업장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고, 당시 회동 모습이 담겨진 사진도 배포되지 않았다. 아직 양사간 협력방안이 더 필요할 수 있다는 방증이다.

현대차그룹이 5년내 23종의 전기차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배터리 협력사 다변화가 필수다. 이 때문에 기존 협력관계를 유지했던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 뿐만 아니라 삼성SDI를 2023년 이후 공급사로 데려올 가능성이 높다. 아직까지 삼성SDI가 국내 완성차 업체 대상으로 배터리를 공급한 적이 없기 떄문에, 현대차그룹과 협력을 강화한다면 국내 전기차 시장 입지 확보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SDI가 EV 트렌드 코리아서 공개한 120Ah 배터리 셀. 이 셀은 BMW i3에 들어간다. (사진=지디넷코리아)


■현대차그룹 “전기차와 수소차 함께 간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배터리 3사 현장 방문은 전기차 대신 수소전기차 개발에만 전념한다는 대중의 오해를 풀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수소전기차 개발 대응에 전념한 나머지 순수 전기차 플랫폼을 적용시키기 위한 준비 과정이 늦었다는 비판도 많았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와 수소전기차 둘 다 함께 가야 한다는 기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김세훈 현대차 연료전지사업부장 전무는 최근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수소모빌리티 쇼 포럼에서 이같은 입장을 재차 전한바 있다.

김 전무는 이 자리에서 수소에너지로 전기차를 충전시키기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동 가능한 수소연료전지를 활용하면 전기를 끌어올리기 어려운 사막, 고산지대, 섬 등의 전기차 충전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서울 강동 수소충전소 (사진=현대차)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현대차그룹의 기본 계획을 이행하기 위해 최태원 SK 회장과 수소충전소 인프라 확대 방안도 논의했다. SK는 LG와 삼성과 달리 주유소와 LPG 충전소 운영 노하우가 있기 때문. 이미 전기차 충전소와 수소충전소가 동시에 구축된 서울 강동구처럼, 전국적으로 전기차 충전소와 수소충전소가 고르게 분포되는 것이 정 수석부회장이 가진 비전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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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전기차 전문 매체인 EV세일즈에 따르면 현대기아차는 올 1분기 총 2만4천116대의 순수 전기차를 판매해 테슬라(8만8천400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3만9천355대), 폭스바겐그룹(3만3천846대)에 이어 전기차 판매 분야에서 4위에 올랐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내년 초 출시 예정인 순수 전기차 NE의 연간 생산 목표량을 약 7만대 이상으로 설정했다. SK이노베이션은 NE를 통해 배터리 입지를 강화해나갈 기회를 얻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