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로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목표 물가상승률과 견줘 크게 하락한 가운데,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코로나19가 진정되더라도 당분간 저물가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만, 내년부터 국제 유가 하락 등 공급 측면의 영향이 줄어 물가상승률은 더디지만 점차 높아질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주열 총재는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2020년 상반기 물가설명회'에서 이 같이 발언했다. 한국은행은 2019년부터 연 2회 물가설명회를 열고, 물가 안정 목표 운영 상황을 알리고 있다.
올해 1월 물가상승률은 1%대 중반대를 기록했으며, 2월 이후 빠르게 둔화되면서 4월 중 0.1%, 5월에는 -0.3%로 집계돼 물가 안정 목표치 2%를 크게 벗어난 상태다.
이주열 총재는 "물가상승률이 크게 둔화된 것은 코로나19로 글로벌 경제 전반에 전례없는 충격을 초래하면서 물가에 상당한 하방 압력으로 작용했다"며 "경제 활동 위축에 따른 원유 수요 감소로 인해 국제유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고, 수요 측면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여행·숙박·외식 서비스를 중심으로 물가상승압력이 약화됐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이어 "코로나19 재확산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높아 국내외 경기와 국제 유가 회복세는 완만할 것으로 판단돼 소비자물가상승률은 당분간 0% 내외의 낮은 수준을 나타낼 것"이라면서도 "내년 이후 국제유가 하락 영향 사라지는 가운데 경기 점차 개선되면서 소비자물가상승률이 금년보다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목표 수준으로 수렴하는 속도는 상당히 더딜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지만 코로나19 확산이 진정되더라도 저물가 기조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은 경기침체를 초래하는데 그치지 않고 경제 주체의 행태와 경제 구조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측된다"며 "물가 흐름에 구조적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위기 상황에서 대규모 해고라든지 매출 급감을 경험할 경우 극단적 위험 회피 성향을 갖는 이른바 '슈퍼 세이버'가 증가할 수 있다"며 "경제 주체의 재무건전성은 개선될 수 있으나, 경제 전체적으로는 성장의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소비와 투자 회복이 더뎌지고, 이는 다시 물가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첨언했다.
이주열 총재는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도 주요국의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을 밑돌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물가안정목표제를 유지하면서도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높이기 위해 양적 완화·마이너스 금리·수익률 곡선 관리·포워드 가이던스 같은 다양한 정책수단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관련기사
- IMF,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2.1%…세계는 -4.9%2020.06.25
- 이주열 "올해 경제성장률 -0.2%보다 더 내려갈 수도"2020.06.25
- 한은, 기준금리 연 0.5%로 0.25p↓…사상 최저2020.06.25
- 이주열 "코로나19,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충격 커"2020.06.25
그는 "향후 한국은행은 현행 물가안정목표제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을 개발해 활용하겠다"면서 "물가안정목표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통화정책 체계도 국제 논의를 참조해 가면서 모색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제통화기금(IMF)이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로 내려잡은 것에 대해 이 총재는 "한국에 미치는 영향을 약간 과다하게 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며 "한 달 전 전망과 한달의 경과를 보면 한 달 전의 전망치를 수정해야 할 만큼 큰 여건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5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올해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0.2%로 2.3%p 낮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