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자율주행 자동차 생태계 구축에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한 축을 담당하는 보험업계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당장 하반기부터 부분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달리게 되면서 책임보험이 필요해졌으나 관련 상품을 내놓는 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 자율주행차 보험을 판매 중인 회사는 삼성화재와 현대해상 두 곳에 불과하나 그마저도 개인이 아니라 자율주행차를 개발·테스트하는 기업과 연구기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실정이다.
이는 국내에 자율주행차 시장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데다, 사고 책임을 명확히 가를 법적 근거 또한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업계는 입을 모은다.
■ 국토교통부, '자율주행 기록장치' 의무화
국토교통부가 지난 10일 입법예고한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은 자율주행차 사고 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자 주행 정보 기록장치 설치를 의무화한 게 핵심이다.
개정안에선 자율주행정보 기록장치에 자율주행시스템의 작동과 해제, 운전전환 등에 관한 사항을 기록하고 6개월간 보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운전자의 실책인지, 자율주행시스템의 문제인지를 따져보기 위함이다. 기록장치와 정보 제공 요청에 응하지 않으면 횟수에 따라 50만~1천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또 개정안은 자율차 관련 분야 전문가 20명으로 사고조사위원회 위원을 구성하도록 하고, 세부적인 위원 자격과 위촉방법, 결격사유 등에 대해서도 규정하고 있다.
이는 레벨3 자율주행차 상용화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다. 국토부는 연초 부분자율주행차 안전기준을 공개하며 7월부터 '자동차로 유지' 기능을 탑재한 레벨3 자율주행차를 판매할 수 있도록 한 바 있다. 자율주행차는 운전자 개입 정도에 따라 레벨0에서 레벨5까지 6단계로 나뉘는데, 레벨3은 제한된 구간에서 운전자와 자율주행시스템(ADS) 사이에 수시로 제어권 전환이 이뤄지는 조건부자동화 단계를 뜻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레벨3 자율주행차 시장에 대응하고자 선제적으로 법 개정을 추진한 것"이라며 "손해보험 제도 구축을 위한 기반을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자율주행 중 사고 나면 100% 제조사 책임?
그럼에도 보험업계가 조심스러운 이유는 기록장치 장착을 의무화하고 사고조사위원회에 판단을 맡긴다지만, 그 원인을 가려내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에서다.
업계가 지적하는 부분은 레벨3 자율주행차의 경우 운전자와 시스템이 모두 운전에 관여하는 방식이라 사고 시 어느 쪽이 잘못했는지를 명확히 짚어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자율주행 중이라도 운전자가 주변 환경을 살펴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서다. 냉정히 말해 제조사도 운전자가 전방 주시를 소홀히 했다고 주장하며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2018년 미국에서 우버 자율주행차 사망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비슷한 논쟁이 불거졌으나, 당시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운전자 부주의를 사고의 최종 원인으로 꼽았다. 운전자가 주행 중 휴대전화를 보느라 도로와 운전시스템을 감지하지 못한 게 충돌의 직접적인 이유라는 진단이다.
게다가 현재 법에서 정한 자율주행차의 손해배상 프로세스는 일단 자동차보험으로 보상한 뒤 나중에 제조사와 정산하는 일종의 사후처리 방식으로 볼 수 있다. 3월 처리된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개정안엔 일차적으로 사고 배상책임을 운전자에게 두고, 차량 결함이 판명되면 보험사가 제조사를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따라서 차량의 문제가 확인된다 해도 보험사로서는 제조사와 추가로 협상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통상 제조사의 책임을 물으려면 제조물책임법을 적용해야 하는데, 자율주행차와 관련해선 여전히 자동차 손해배상 보장법의 범주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라며 "자율주행차가 아직 완전히 구현되지 않은 상태라 운전자의 책임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 "사고 관련 법 조항 보다 명확해져야"
따라서 보험업계는 자율주행차 보험 상품이 늘어나려면 사고 책임에 대한 법 조항이 보다 명확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제조사의 실책은 물론 사고 시의 도덕적 판단 등에 따라서도 배상 결과가 얼마든지 조정될 수 있으나 아직 그 부분에 대한 방향성이 불분명하다는 게 이들의 진단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사고 시 운전자는 탑승자와 보행자 중 누구를 우선해야 하느냐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는데, 자율주행차와 관련해서도 이에 대한 선택과 책임 문제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자율주행차 보험제도의 큰 틀을 만들어 놓은 만큼, 조금 더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진다면 각 보험사도 신속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 중국 둥펑, 'L4급 5G 자율주행차' 양산 돌입2020.06.16
- 나무가, 美 자율주행차에 인캐빈 카메라 공급2020.06.16
- '부분 자율주행차' 나오지만 보험상품 준비 태부족2020.06.16
- 현대해상, '자율주행차 위험담보 자동차보험' 출시2020.06.16
이밖에 자율주행차 시장의 성장도 업계가 꼽는 전제 조건이다. 지금까지 관련 상품이 일부 업체를 중심으로 판매된 탓에 사고 배상 사례가 많지 않고, 보험료 산정 등에 쓸 데이터도 부족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보험 가입자가 소수에 불과해 유의미한 통계를 내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각 보험사가 관련 상품을 내놓으려면 자율주행차 시장이 지금보다 더 커져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