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진 우려…생보업계, 해외투자·신사업으로 위기 돌파

[이슈진단+] 0% 금리 시대가 몰고온 파장(중)

금융입력 :2020/06/01 15:26    수정: 2020/06/01 16:50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제로 금리' 시대가 대한민국에도 도래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3월 기준금리를 0.50%p(포인트)인하한데 이어 이달 28일에도 0.25%p 추가 인하하면서 국내 기준금리는 연 0.50%가 됐다. 역대 최저치다. 기준금리가 0%에 근접함에 따라 금융권엔 비상 걸렸다. 예금주들도 마찬가지다. 제로 금리 시대가 금융업계와 소비자들한테 미칠 영향에 대해 3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주]

■ 운용자산수익률 하락에 '이차역마진' 우려↑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려간 것은 생명보험업계엔 결코 호재가 아니다. 자산운용과 역마진에 대한 부담이 커져 각종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한 차례 홍역을 치른 생보업계는 금리 인하로 또 다른 위기에 놓일까 우려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낮은 기준금리가 보험사의 운용자산이익률에 타격을 준다는 점이다. 보험사는 소비자에게 받은 보험료를 주로 안전자산인 국공채 등에 투자해 수익을 얻는데 채권 금리가 떨어지면서 수익률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보험업계에선 이번 금리인하로 운용자산이익률이 3% 초반까지 떨어질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보험연구원의 '보험동향' 최근호에 따르면 생보업계의 지난해 운용자산이익률은 전년 대비 0.13%p 떨어진 3.55%였다. 이 수치는 2015%까지 줄곧 4%대를 유지해왔으나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3%대로 내려앉았다.

과거 고금리 확정형 상품을 팔았던 대형 생보사는 이차역마진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 이차역마진은 자산운용으로 벌어들이는 것보다 보험금으로 내보내는 돈이 많다는 의미다. 가령 소비자에게 연 6%의 금리를 약속하며 상품을 팔았는데 운용자산이익률이 3%에 불과하다면 회사는 그 차이만큼 부담을 떠안게 된다. 보험업계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6~8%의 고금리 확정형 상품을 대거 판매했고, 현재 저금리 기조 장기화에 발목을 잡힌 상태다. 지난해의 경우 보험사의 운용자산이익률은 3.55%인데 반해 보험료 적립금 평균금리(부담금리)는 4.18%를 기록해 0.63%p의 역마진이 발생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하반기 보험료 인상이 이뤄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보험업계가 기준금리 인하에 대응하고자 예정이율을 조정할 수 있어서다. 예정이율은 보험사가 보험료를 운용함으로써 보험금을 지급할 때까지 거둘 수 있는 예상 수익률이다. 보험사는 지난 4월 예정이율을 2.25~2.75%로 0.25%p 낮춘 바 있다. 보통 예정이율이 0.25%p 내려가면 보험료는 5~10% 오른다.

A보험사 관계자는 "기준금리 인하로 각 보험사가 예정이율 조정을 검토할 공산이 크다"면서도 "소비자의 부담이 커지고, 상품 경쟁력도 떨어지게 되는 만큼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마이너스 금리' 직면한 외국 손보사, 해외투자서 '해답'

이에 생보업계 일각에서는 해외투자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수익성이 떨어진 기존 환경에서 벗어나 '돈이 되는' 새로운 투자처를 찾음으로써 운용자산수익의 회복을 도모해야 한다는 얘기다. 마침 보험사가 운용할 수 있는 해외자산 비율을 총자산의 30%에서 50%로 상향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넘어 10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초저금리 시대에 직면한 일본과 대만, 유럽 등 해외 보험업계도 해외투자를 늘려 돌파구를 찾았다.

메리츠종금증권 김고은 연구원의 지난해 9월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생보사는 시장 환경이 악화되자 자산운용 전략의 변화를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국채와 해외채권 비중을 늘리고, 자산 듀레이션(투자자금의 평균회수기간) 확대를 위해 장기 국채에 주목해왔다.

특히 일본은 2016년부터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으나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있고 엔고 현상에 외환 환경도 좋지 않아, 생보사의 해외자산 비중은 꾸준히 늘고 있다. 미국 국채보다 미국 회사채, 유로 채권 등을 사들이고, SOC(사회간접자본) 등 대체 투자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이에 다이이치생명의 경우 2011년 15% 수준이던 해외자산 비중은 2019년 1분기 27%로 급등했다.

대만 생보사는 상대적으로 해외투자 전략을 적극 펼쳐왔다. 자국 내 채권 시장이 작아 일찍이 정부에서 운용 가능한 해외자산 비중을 총자산의 60% 이상으로 상향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푸본생명은 2019년 1분기 기준 해외투자 비중이 63.2%에 달한다. 그 중 약 90%가 회사채와 금융채로 구성됐으며, 50% 이상이 미국에 투자돼 있다.

유럽 생보사는 사정이 훨씬 낫다. EU(유럽연합)와 미국 기반의 채권 투자가 용이해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서다. 독일 보험사 알리안츠생명은 다양한 나라의 국채와 회사채에 투자하고 있다. 이들의 해외자산은 국채 31.4%, 회사채 29.8% 등으로 구성돼있다.

반면 국내 생보사의 해외투자 비중은 아직 30%를 밑도는 실정이다. 지난해 11월말 기준 각 회사의 운용자산 대비 외화유가증권 비율은 ▲한화생명 29.3%(일반계정) ▲푸본현대생명 26.2% ▲교보생명 22.7% ▲동양생명 22.4% ▲농협생명 21.4% 등으로 조사됐다. 투자 환경이 우호적이었던 것도 아니지만, 국회에서 보험업법 개정안을 뒤늦게 처리한 탓도 있다.

B보험사 관계자는 "개정안 시행까지 몇 개월 더 기다려야 하나 해외투자 한도가 상향된 것은 고무적"이라며 "물론 환율 등 변수가 상존해 수익성을 장담하긴 어렵지만 보험업계엔 분명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 "상품 개발, 디지털 혁신 노력 이어가야"

동시에 생보업계는 이럴 때일수록 본연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신경을 쏟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어려운 환경 속에도 경쟁력 있는 상품 개발과 디지털 혁신으로 소비자와 마음을 얻어야만 미래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실제 각 생보사는 올 들어 '디지털 혁신'을 핵심 목표로 내걸고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등 신기술 도입에 주력하고 있다. 교보생명이 최근 개발을 마친 보험사기 예방심사 시스템 'K-FDS'와 한화생명이 운영 중인 '클레임 AI 자동심사 시스템'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처럼 생보업계가 디지털 전환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환경에 적응하려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일하는 방식을 바꿔 소비자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기업의 수익성까지 높인다는 데 목적이 있다.

생보사가 앞다퉈 '비대면 헬스케어 서비스'를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대인에게 필수적인 건강관리 노하우를 제공함으로써 기존 소비자의 이탈을 막고 신규가입을 유도하기 위함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국민 건강이 증진되면 생보사는 장기적으로 보험금 청구 금액을 줄이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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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생명의 경우 지난해 9월 건강 진단과 식단관리 등 서비스를 탑재한 애플리케이션 ‘헬로’를 출시했다. 또 교보생명은 종신보험 또는 CI보험에 주계약 7천만원 이상 가입한 사람에게 '교보헬스케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신한생명 역시 건강검진 결과를 바탕으로 생체 나이를 측정하고 나이와 성별에 따른 건강 등수를 알려주는 '모바일 건강검진정보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C보험사 관계자는 "기준금리 인하로 생보업계의 사업 환경이 악화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가시적인 대책이 없는 한 신상품 개발과 디지털 혁신 등 기존의 노력을 차질 없이 이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