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규제' 깃발 든 트럼프, 뜻대로 될까

행정명령으론 한계…'230조 폐지론자'들도 트럼프 행보 비판

인터넷입력 :2020/05/29 13:36    수정: 2020/05/29 22:50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트럼프 대통령이 ‘플랫폼 중립성’이란 불씨를 건드렸다. 1996년 이후 오랜 기간 뜨거운 감자였던 플랫폼 사업자의 법적 책임을 강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 플랫폼의 법적인 책임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씨넷)

■ 플랫폼 면책 규정한 통신품위법 230조 개정이 핵심

미국 의회는 1996년 인터넷 시대를 반영한 새로운 법을 제정했다. 그게 통신품위법(Communications Decency Act)이다.

통신품위법은 원래 미성년자를 온라인 폭력, 음란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 외설, 폭력 정보를 송신할 경우 최고 지역 2년에 처하도록 했다. 이 규정은 나중에 위헌 판결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 법에서 더 관심을 끈 것은 인터넷 사업자들에 면책 특권을 부여한 230조다. 제3자가 올리는 유해물 또는 명예훼손의 게시물에 대해 인터넷 사업자가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 230조의 골자다.

통신품위법 230조는 오랜 기간 논쟁의 대상이 됐던 플랫폼 사업자의 책임 문제를 사실상 첫 규정한 조항이다.

(사진=미국 전자프론티어재단)

보기에 따라선 통신품위법 230조는 인터넷 기업에 과도한 특혜를 부여한 것 같다. 하지만 혁신 기술에 대한 미국 의원들의 입법 경향을 보면 특별한 것도 아니다. 미국은 초기 혁신 기술에 대해선 느슨한 규제를 적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230조도 마찬가지다. 입법 당시 미국 의원들은 인터넷이란 새로운 혁신 기술을 가로막고 싶지 않았다. 막 시작된 혁신의 싹을 자를 수도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표현의 자유도 고려한 행보였다. 면책 조항이 없을 경우 인터넷기업들이 법적 책임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제3자가 올린 콘텐츠에 대해 강하게 검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넷 기업들에게 자율 감시 조치를 취하도록 하되, 선의의 노력이 실패할 경우엔 곤란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어막으로 마련된 것이 통신품위법 230조다.

■ 상무부 통해 FCC 압박…별도 의회 입법 움직임도

트럼프가 손을 대려는 것은 바로 이 조항이다. 트럼프는 이날 연방통신위원회(FCC)로 하여금 통신품위법 230조에 대한 검토작업을 하도록 했다.

FCC에 직접 지시를 내린 건 아니다. 상무부로 하여금 FCC를 압박하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트럼프는 왜 FCC에 직접 지시를 내리지 않은 걸까? 직제상 FCC는 독립기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직접 지시를 할 순 없다.

대신 정부 부처인 상무부를 통해 간접적으로 압박하는 방법을 택했다.

물론 FCC는 대통령의 명령을 따를 의무는 없다. 자체적으로 판단해서 하면 된다. 하지만 아짓 파이 위원장은 트럼프가 행정명령에 서명한 직후 “이 논쟁은 중요하다. 상무부가 제기하는 입법 관련 청원을 면밀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5명으로 구성된 미국 연방통신위원회. 가운데가 아짓 파이 위원장이다. (사진=FCC)

또 다른 쟁점이 있다. FCC가 통신품위법 230조에 대한 해석 권한이 있느냐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아스테크니카는 “법원은 FCC가 통신품위법에 대한 포괄적인 재량권을 부여해 왔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FCC가 관할권이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불을 붙이기 전에도 통신품위법 230조를 둘러싼 공방은 뜨거웠다. 특히 미국 보수 진영 쪽에서 강한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각종 음란물이나 폭력적인 콘텐츠로 인한 피해가 늘고 있는 데도 플랫폼 사업자들이 230조 보호조항 때문에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게 비판의 골자다.

지난 해엔 아예 관련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미국 하원의 조시 홀리 의원이 발의한 ‘인터넷 검열법에 대한 지원 중단’이란 법안이 대표적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페이스북 같은 기술 기업들이 면책 특권을 받기 위해선 외부 감사를 통해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연방거래위원회(FTC)에 입증해야만 한다.

홀리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대형 IT 기업에만 적용된다. 이 법은 미국 내 월간 이용자 3천만 이상, 전 세계 월간 이용자 3억 명 이상인 서비스를 적용 대상으로 규정했다. 또 전 세계 연간매출도 5억 달러를 웃도는 기업이 대상이다. 사실상 페이스북, 구글 같은 대형 플랫폼 사업자를 겨냥한 법이다.

■ "의회에 맡길 사안 왜 대통이 나서나" 비판도 만만찮아

최근 들어 정치인들을 겨냥한 딥페이크 영상이 기승을 부리면서 플랫폼 사업자에게 좀 더 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메릴랜드대학 법학과의 다니엘 시트론 교수다.

시트론 교수는 지난해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통신품위법 230조 때문에 플랫폼 사업자들이 파괴적인 딥페이크에 적극 대응할 유인을 느끼지 못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행보에 대해선 비판적인 여론이 우세한 편이다. 심지어 통신품위법 230조 폐지를 주장하는 측에서도 트럼프의 이번 조치에는 못 마땅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의회 입법 활동에 맡겨야 할 사안임에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게 적절치 않다는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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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것이 뉴욕 변호사인 캐리 골드버그다. 골드버그는 통신품위법 개선에 관심을 갖고 있는 변호사 및 학자들의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인물이다.

미국 IT전문매체 프로토콜에 따르면 골드버그 변호사는 “현재 (통신품위법 230조에 대한) 다양한 개선 제안이 제기됐는데, 이것들은 모두 의회의 행동을 고려하고 있다”고 면서 “우리는 개선 작업이 올바른 방법으로 시행되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