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운전자보험 시장을 예의주시하자 손해보험업계가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스쿨존 교통사고 처벌을 강화한 '민식이법' 시행과 맞물려 관련 상품의 수요가 커진 가운데, 불완전판매를 우려한 금감원이 일종의 '경고장'을 날린 것으로 읽혀서다.
하지만 운전자보험 상품 마케팅을 자제하려 해도 마땅한 방법이 없고, 소비자의 문의는 꾸준히 늘고 있어 보험사의 고민이 커지는 모양새다.
2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주요 손해보험사에 운전자보험 판매 실적과 함께 '중복가입', '승환계약' 등 실태를 점검해 제출해달라는 요구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금감원이 중복계약'과 승환계약 자료를 요청한 것은 보험사가 운전자보험 상품을 무리하게 판매했는지 여부를 살펴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승환계약은 소비자에게 기존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보험 상품에 가입하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또 소비자는 벌금과 형사합의금, 변호사선임비용 등 손해를 보장하는 특약을 2개 이상 가입할 필요가 없다. 보험금이 중복 지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A와 B보험사의 상품에 모두 했다면 사고 시 두 곳으로부터 각각 벌금액 100%를 받는 게 아니라 실제 벌금액의 절반씩을 보상받게 된다.
앞서 금감원은 '민식이법' 시행으로 운전자보험 판매가 급증하자 이례적으로 자료를 배포해 소비자에게 가입에 주의해줄 것을 당부한 바 있다. 특히 기존 보험의 낮은 벌금 한도를 늘리려는 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 가입하면 불필요한 손실이 생길 수 있으니 보험사별로 확인 후 특약을 추가하라고 금감원 측은 조언했다. 가령 기존 벌금한도가 2천만원이었으나 스쿨존 사고 벌금한도가 3천만원으로 늘어 운전자보험의 벌금 보상액을 증액하고 싶다면 '벌금담보 증액특약'만 추가하면 된다는 얘기다.
손보업계의 속내는 복잡하다. 운전자보험의 관심이 확산되면서 대부분 손보사가 내심 관련 상품에 기대를 걸고 있는데, 금감원 측 움직임으로 인해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실제 손보사는 올 4월부터 벌금과 형사합의금 보장한도 등을 높이거나 새 담보를 추가한 신상품을 내놓으며 운전자보험 판매에 주력해왔다. 금감원 집계 결과 운전자보험은 4월 한 달 동안에만 '83만건'이 판매(신계약)됐다. 1분기 월평균치인 34만건의 2.4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4월말 현재 운전자보험 가입건수도 총 1천254만건에 달한다.
관련기사
- DB손보-삼성화재, 운전자보험 '배타적사용권' 갈등 일단락2020.05.26
- KB손해보험, 스쿨존사고 보장 늘린 ‘하루운전자보험’ 출시2020.05.26
- 車보험료 손해율 '뚝'…손보사 빅4, 코로나19에도 실적 선방2020.05.26
- 보맵, 24~26일 운전자 보험료 전액 지원2020.05.26
다만 지금은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입장이다. 금감원이 당장 운전자보험 판매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도 아니고, 승환계약과 같은 부당 계약에 대한 기준 또한 모호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금감원이 과잉 판매를 향한 우려의 메시지를 던진 만큼 시간을 두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겠다는 방침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최근 들어 운전자보험과 관련한 금감원의 요청이 부쩍 늘었다"면서 "평소에도 수시로 자료를 요구하긴 하나, 최근 운전자보험이 집중 조명되고 있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설령 마케팅을 자제한다고 해도 현장의 설계사 개개인까지 통제하긴 어려운 만큼 여러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