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1·2위인 삼성과 현대차그룹 총수가 만났다. 신성장 산업으로 꼽히는 미래차 분야 관련 사업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4차 혁명시대를 맞아 신기술 선점을 위한 합종연횡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기업으로서는 '생존'을 위한 움직임으로도 읽힌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지난 13일 삼성SDI 천안사업장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났다. 현장에서는 삼성의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기술에 대해 상호 현황을 공유하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좋은 분위기가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이 사업을 목적으로 단독 회동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는 이번 만남으로 미래 모빌리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 회사의 협력 물꼬가 트일지 주목하고 있다.
■ '전고체전지' 화두…미래 유망 기술에 가속 페달
이날 정 수석부회장과 이 부회장의 화두는 전고체전지였다. 미래 유망 기술 중 하나인 전고체전지는 양극과 음극 사이에 있는 전해질을 액체에서 고체로 대체해 리튬-이온전지보다 대용량을 구현하고 안전성을 높인 게 특징이다. 전기차 안전을 강화하면서 주행거리를 대폭 늘릴 수 있는 것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이 지난 3월에 발표한 전고체전지 연구결과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가 이번 만남을 추진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은 1회 충전에 800km 주행, 1천회 이상 배터리 재충전이 가능한 전고체전지 연구결과를 공개했다. 기존보다 얇은 배터리 음극 두께로 에너지밀도를 높여 리튬-이온전지보다 크기를 절반 수준으로 줄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전고체전지 상용화까지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 중국 등이 전고체전지 기술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선두주자는 일본이 거론된다. 일본 도요타는 관련 개발에 1조5천억엔을 투자, 2022년에 전고체 전지를 탑재한 전기차를 출시할 것이라고 밝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전고체전지 전해질 관련 해외 특허 출원 건수도 세계 1위다
기업들이 이처럼 전고체전지에 열을 올리는 것은 기술 상용화 시기에 따라 미래 자동차 산업 선점이 좌우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리튬 황 전지, 리튬 에어 전지 등 다른 차세대 전지들도 있고 아직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걸리기에 각 기술을 비교하기에는 이르다"면서도 "전고체전지가 차세대 배터리 중 더 각광을 받고 있어 그만큼 투자도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앞으로 손을 잡고 전고체전지 개발에 나선다면 더욱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미래 시장에서 침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부족한 기술을 기업간 협업을 통해 빠르게 충족하는 추진력도 필요하다"며 "국내 각 계 1등이 뭉친다면 미래 리더십 확보에도 속도가 붙지 않겠나"고 말했다.
■ '1등 시너지 낼까'…韓 모빌리티 산업에도 기대감
두 살 터울인 두 총수는 평소에도 막역하게 지내는 사이로 알려졌지만 이번 만남은 개인적 친분보다도 사업적인 이유로 성사됐다는 평이다. 전자와 자동차 기업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사업적으로 협력을 할 수 있는 구도도 형성됐다. 미래 모빌리티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자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동맹관계로 진전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 수석부회장은 올 초 미래차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5년 동안 100조원을 투입하겠다는 공격적인 투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2025년까지 전기차 23종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새 배터리 기술 확보도 주요 과제다. 그는 평소에도 신기술에 대한 관심이 많아 이해하고 배우기 위해 노력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6일 대국민 입장문 발표에서 "한 차원 더 높게 비약하는 새로운 삼성을 꿈꾸고 있다"며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력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신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겠다"고 전했다. 삼성은 2018년 8월 인공지능(AI)과 5G·바이오·전장부품 등 미래성장 사업에 180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두 사람이 공식 행사에서나 개인적으로 만남을 가졌겠지만 사상 처음으로 사업적인 이유로 회동한 것은 달라진 시대상을 보여준다"며 "과거에는 전자와 자동차가 독립적이었다면 4차 혁명시대를 맞아 이(異)업종간 교류와 융합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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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간 동맹이 한국 모빌리티 산업 발전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 연설에서 우리나라 경제 선도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 개척을 위해 "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차 등 3대 신성장 산업을 더욱 강력히 육성해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미래차는 속도의 문제로 '패스트 팔로워'보다는 '퍼스트 무버'가 되는 게 관건이다. 과거처럼 독불장군식의 경영을 이어가면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며 "모빌리티 산업에서 한국이 더 치고 나갈 수 있는 이정표가 될 수 있는 만큼 앞으로의 협업 행보에도 관심이 가는 이유"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