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폰(MVNO)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업계를 대표하던 CJ헬로는 대기업의 자회사가 됐고, 새로운 대형 사업자인 KB국민은행이 등장했다.
인수·합병(M&A) 등 시장의 변화를 고려한 정부의 지원 아래 알뜰폰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5G 요금제를 내놓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국회의 무관심 속에서 알뜰폰을 지탱하던 최후의 안정창치인 ‘도매 제공 의무사업자 지정제도’는 일몰돼 사라졌다.
사업 규모가 크지 않은 중소 알뜰폰 사업자에게 이런 변화에 더욱 혹독하다. 덩치가 작을수록 빠른 변화 속에서 자리를 지키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생존을 고민해야 할 때’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중소 알뜰폰 사업자인 문성광 에넥스텔레콤 대표를 만났다. 문성광 대표는 알뜰폰이 처음 도입되던 시기부터 지금까지 십여 년간 업계를 지켜온 인물이다. 그는 알뜰폰 시장의 변화가 중소 사업자의 위기를 심화할 수 있다는 진단에 동의했다. 하지만 위기에서 한 발 나아가 기회를 엿봐야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틀’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경쟁의 틀을 바꾸고 자사만의 경쟁력을 확보할 때, 위기 뒤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KB국민은행이 알뜰폰에 새롭게 뛰어들었는데, 중소 사업자 입장에서 체감되는 변화가 있나.
“대기업이 알뜰폰 시장에 진출하면 중소 사업자의 위기가 심화될 것이라는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다. KB국민은행이 알뜰폰 시장에 진출하면서, 많은 가입자가 이동했다. 알뜰폰 가입자는 가격에 민감하다. 조금이라도 더 저렴한 요금제가 나오면 이동하는 경향이 강하다. 가격경쟁력 차원에서 중소 사업자는 KB국민은행과 같은 대기업에 맞설 수 없다.”
-알뜰폰이 위기라는 목소리가 많은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금까지 알뜰폰은 선불 시장을 중심으로 가입자가 늘었다. 선불 가입자는 약정이 없기 때문에 언제든 떠날 수 있고, 이는 안정적인 매출을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안정적인 매출을 위해서는 후불 가입자가 필요한데, 알뜰폰의 후불 가입자는 매우 제한적이다. 이동통신 3사 가입자가 알뜰폰으로 넘어오는 비중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알뜰폰 내부에서 가입자 유치 경쟁이 일어나는데, 중소 사업자가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보유한 대기업 계열 알뜰폰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특히 ARPU(가입자당평균매출)가 높은 우량 가입자가 보다 저렴한 요금제를 내놓는 대기업 계열 알뜰폰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우려가 있다.”
-최근 중소 알뜰폰 사업자가 5G 요금제를 내놓고 있는데, 저렴한 5G 요금제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는가.
“5G 요금제 출시가 알뜰폰 사업자에게 직접적인 매출 증가 등 영향을 미치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5G 단말기가 활성화돼서 유심만 바꾸면 알뜰폰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 2~#년 뒤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현재로서는 크게 실효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알뜰폰이 5G 요금제를 내놓는 이유는 상징성 때문이다. 알뜰폰도 5G를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점이 있다.”
-알뜰폰이 5G 요금제 내놓는데 우려되는 점도 있나.
“서비스 측면에서 우려가 있다. 새로운 네트워크가 상용화된 초기에는 커버리지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반 이용자 입장에서는 커버리지 부족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5G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는 알뜰폰에도 적용된다. 알뜰폰 5G 요금제를 사용하다가 서비스가 불안정하면, 5G 자체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알뜰폰의 문제라는 잘못된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
-정부가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를 승인하면서 알뜰폰에 유리한 조건을 내걸었다. 업계 종사자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나.
“물론 긍정적이다. LG유플러스가 어떤 이유에서 알뜰폰 활성화 정책을 내세웠던 사업자에게 긍정적인 것은 확실하다. 5G 요금제를 빠르게 내놓을 수 있도록 했다는 점도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번 조치로 알뜰폰의 도매대가는 전체적으로 더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이통 3사가 경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동안 알뜰폰의 입장을 대변했던 CJ헬로가 LG유플러스의 자회사가 되면서 더 이상 알뜰폰을 대표할 수 없게 됐는데,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는가.
“아직은 CJ헬로 인수에 따른 알뜰폰의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려되는 점은 있다, 알뜰폰 관련 정책적 이슈가 등장했을 때, 강하게 업계를 대변할 사업자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 우려인 탓에 CJ헬로의 인수가 알뜰폰에 좋다 나쁘다를 딱 잘라 말하긴 어렵다. 일각에서는 KB국민은행의 리브엠이 업계를 대표할 수 있을 것이란 의견도 있지만, 금융을 기반으로 한다는 특수성 탓에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SK텔레콤을 망 의무제공 사업자로 지정했던 법안이 일몰됐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망 의무제공 사업자 지정은 알뜰폰 입장에서 마지막 보루다. 이 제도는 알뜰폰 사업의 근간인 저렴한 요금제 출시의 기본 틀 역할을 해왔다. 도매대가 기준이 없다면 이동통신 3사가 도매 제공 가격을 인상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알뜰폰 도입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도 이 제도는 유지돼야 한다.”
-향후 알뜰폰 시장을 전망한다면 어떤 모습일 것이라고 예상하는가.
“현재 정부와 이동통신 3사는 알뜰폰 활성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지원을 다 하고 있다. 사업 환경이 좋아지면서 경쟁사도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향후에는 알뜰폰 시장이 우량기업과 우량하지 않은 기업으로 나뉠 것으로 예상된다.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기업이 정리되고 나면, 살아남은 기업을 중심으로 알뜰폰 시장이 안정화될 가능성이 있다.”
-알뜰폰 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망 도매대가 인하 등 정책적인 지원 외 자체적인 경쟁력 강화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에넥스텔레콤의 계획은 무엇인가.
“알뜰폰 업체도 사업적인 자구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에넥스텔레콤도 결국 통신만으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향후 통신과 렌털을 결합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통신 서비스를 이용하면 가전제품 등 렌털 비용을 할인해주는 방향이다. 틀을 바꿔야 한다. 알뜰폰만으로 자구책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다른 산업과 통신을 결합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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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알뜰폰이 중소 사업자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뜰폰을 처음 도입할 때에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알뜰폰을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선정하는 방안을 고민하면 좋겠다. 이제 중소기업적합업종을 신청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지만. 만약 이뤄졌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선순환하는 구조가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