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코로나19 사태' 보도하는 어느 기자의 비망록

'트래픽 vs 이슈 리딩' 줄타기

데스크 칼럼입력 :2020/03/10 14:05    수정: 2020/10/05 13:48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15년쯤 전 일이다. 어떤 후배 기자가 퇴사를 선언했다. 꽤 능력있던 후배였다. 이유를 물었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빨간 마스크 기사 때문이요.”

그 무렵 초등학생들 사이에 ‘빨간 마스크 공포’가 한창이었다. 그 기자가 무심코 쓴 기사가 엄청나게 많이 읽혔다. 아침 8시 무렵까지 트래픽이 가파르게 올라갔다. 그러다간 몇 시간 잠잠해지더니, 오후 3시 이후 다시 트래픽이 폭발했다. 우린 그 현상을 우스갯소리 삼아 '초딩 트래픽'이라고 했다.

"공들여 쓴 기사는 외면 당하는 데, 엉뚱한 기사에 열광하는 게 너무 슬퍼서요."

저널리즘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다. 어떻게 틀을 짓느냐에 따라 보이는 세상이 달라진다.

폭발적 트래픽 몰고 오는 기사 vs 잔잔하지만 의미 있는 기사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빛 바랜 사진처럼 희미했던 그 때 기억이 떠올랐다. (노파심에서 한 마디. 물론 그 기자가 퇴사한 게 ‘빨간 마스크’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실 다른 이유가 더 컸다. 하지만 그가 한 여러 이유 중 유독 빨간 마스크가 크게 와 닿았다.)

요즘 가장 큰 뉴스는 ‘코로나19’다. IT 매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수면 위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은 ‘코로나19’와 관련돼 있다. 독자들의 관심도 엄청나다. 그런 만큼 트래픽도 많이 나온다.

많은 독자들은 언론사들이 ‘트래픽 장난’에만 열을 올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한국 언론이 그 동안 보여준 부끄러운 모습이 워낙 강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가능하면 좋은 기사로 많은 독자들의 시선을 끌고 싶은 욕심을 갖고 일을 한다. 물론 현실은 냉혹하다. 공들여 쓴 기사는 외면 당하는 데, 어쩌다 검색어에 걸린 기사는 수 십만 트래픽을 몰고 온다. 한 편으론 고맙지만, 또 한 켠에선 씁쓸한 마음이 스물 스물 고개를 든다.

매일 일과를 시작하면서 두 가지 생각을 한다.

첫째. 이슈 리딩.

둘째. 목표 트래픽 초과.

최상의 그림은 첫째와 둘째가 일치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은 거의 없다. 드물게 그런 일이 있는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뿌듯하다. 하지만 이슈와 트래픽이 엇갈리는 날이 더 많다. ‘많이 읽히는 기사’와 ‘강하게 읽히는 기사’는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둘 사이에서 늘 갈등하게 된다.

그 동안 많은 매체들은 ‘어뷰징’을 통해 둘째 목표를 달성했다. 하지만 지디넷코리아는 어뷰징은 가급적 지양한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그건 기사가 아니기 때문.

둘째. 로봇이 아닌 사람에게 그런 일 시키는 건 몹쓸 짓이기 때문.

트래픽이 안 나올 땐 유혹을 받기도 한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투수 혹사’ 시키는 감독 심정과 비슷하다. 팔 망가지는 줄 알면서도, 위기 때만 되면 믿을만한 투수를 마구잡이로 등판시키는 관행. 그 유혹을 던져버리는 게 쉽진 않다.

그 중간을 어떻게 지킬까? 나름대로 평가 잣대를 엄정하게 적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위기 때면 특정 투수 마구잡이 등판시키는 어느 감독처럼…

지난 주 어느 날의 일이다.

코로나19 치료용 항체 개발 속도가 붙었다는 기사가 출고됐다. 속된 말로 ‘트래픽 대박’이 났다. 공교롭게도, 그날 ‘인기 실검’에 딱 걸린 덕분이다. 어마어마한 트래픽이 몰려 왔다. 그 기사 하나로 하루 목표치를 다 채웠을 정도다.

이런 건 ‘일회성 호재’다. 트래픽 기여 효과가 엄청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회성이다. 덕분에 트래픽 목표량은 채웠지만, 그것만으론 만족할 수 없다.

더 중요한 건 ‘펀더멘털’이다. 폭발적이진 않지만 꾸준히 소비되는 기사. 업계에서 의미 있게 거론되는 기사. 이런 ‘중소형 우량주’가 든든히 받쳐줘야 한다. 그게 또 다른 힘이다.

그 관점으로 다시 보자. 몇몇 기사가 눈에 띄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일주일 원격근무를 한 경험담을 담담하게 담아낸 기사는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꽤 화제가 됐다. 지디넷 공식 페이지에서만 좋아요 450개, 공유 250회를 기록했다. 재미있게 봤다는 반응들도 꽤 많다. 비록 일회성 호재가 몰고오는 트래픽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수치이지만, 저변 확대란 측면에선 긍정 신호다.

삼성이 반도체 생산공정에 인공지능(AI)을 적용했다는 단독 기사도 꽤 많이 거론됐다.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한 소셜 미디어 공유도 상당했다. 역시 탄탄한 펀더멘털의 한 축을 형성했다.

야구 선수에 비유해보자. 한 시즌을 치르다보면 잘 할 때도 있고, 못 할 때도 있다. 때론 홈런 몇 개를 한꺼번에 몰아치기도 한다. 그러다가 몇 게임 헛 방망이 질만 하기도 한다. 프로 선수들은 여기에 일희일비하진 않는다.

잘 하는 선수는 꾸준히 평균 이상을 해준다. 펀더멘털이 강하다. 사이트 트래픽도 마찬가지다.

물론 출발점은 ‘좋은 기사’다. 하지만 인터넷에선 ‘잘 꿰어야 보배’가 된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쏙쏙 들어오는 제목을 달아야 한다. ‘낚시 제목’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조금 어려운 주제도 쉽게 설명해줄 수 있는 제목. 살짝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 그리고 무엇보다 술술 읽히는 제목이 중요하다. 시류를 반영하면 가독성이 한층 높아지기도 한다.

관련 기사도 중요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해당 기사에 부가 정보를 더해주는 게 관련 기사의 최우선 용도다. 이 때도 무작정 아무 기사나 링크하진 않는다. 몇 가지 고민을 한다.

첫째. 어떤 기사를 제시하면 더 풍부한 부가정보를 접할까.

둘째. 이 기사에 빠진 정보를 보충해주는 기사는 없을까.

셋째. 직접 관련 되진 않지만, 꼭 읽어보면 좋은 기사는 없을까.

비슷한 기사 잔뜩 링크해 놓으면 오히려 공해다. 그래서 중요한 건 편집자의 감이다. 인공지능(AI)이 알아서 뽑아주면 좋겠지만, 아직 그 정도 기술은 없다. 적어도 우리는 그런 상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그날의 톱기사’다. 물론 인터넷 매체는 ‘그날의 톱’이라고 하진 않는다. 종이신문과 달리 매순간 흐르는 물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순간 가장 중요한 기사를 톱으로 세운다.

또 한 가지. 톱을 언제 교체해줄 지도 고민거리다. 이 때도 두 가지 가치를 놓고 갈등한다.

첫째. 이슈가 아직 살아있는가.

둘째. 트래픽은 계속 나오는가.

주된 고려 사항은 첫 번째다. 그런데 하다보면, 두 번째 요소도 꽤 중요한 고민거리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칼로 무 베듯 잘라내긴 쉽지 않다.

이 때 ‘일회성 호재’가 중요한 터전이 되기도 한다. 크게 공들이지 않은 기사가 뜻밖의 ‘트래픽 대박’을 몰고 오면 좀 더 편안하게 선택할 수 있다. (정확한 비유인진 모르겠다. 방송사들이 연예나 드라마에서 돈을 벌고, 뉴스에 공익 개념을 담는 건 그래서 꽤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뉴욕타임스의 왜곡, 혹은 실수에서 배우는 교훈

당연한 얘기지만, 사진도 중요하다. 기사의 가독성을 높여주는 효과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섬네일 사진은 독자들의 시선을 끄는 중요한 미끼 역할도 한다.

그런데 요즘 같은 시기엔 자료 사진 하나 쓰는 것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자칫하면 사진이 독자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뉴욕시 코로나 확진자 살생 사실을 전해준 뉴욕타임스 기사. 엉뚱한 자료 사진이 붙어 있다. (사진=diet_prada 인스타그램)

미국의 보도 사례가 이런 부작용을 잘 보여줬다. 지난 주초 미국 뉴욕에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뉴욕 주지사와 뉴욕 시장이 공동 기자화견을 통해 코로나 확진 환자 발생 사실을 공표했다.맨해튼에 거주하는 39세 여성이었다. 그는 이란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됐다. 그런데 뉴욕타임스와 뉴욕포스트는 이 같은 사실을 보도하면서 마스크 쓴 아시아 여성 사진을 사용했다. 은연 중에 여론을 왜곡하는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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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보도 전쟁을 치르다 보면 이런 실수를 하기 쉽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기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코로나19 정국에도 우리는 이런 패턴으로 하루 일과를 하고 있다. 독자들의 눈엔 그저 미흡하고, ‘기레기 짓’ 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존재 의미를 찾고, 또 끊임 없이 변신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느리긴 하지만, 그래도 한 발 한 발 힘든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