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이 훨씬 편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니 조금 달랐다. 기대만큼 편안하진 않았다. 생각 못했던 부담감 때문에 더 피곤한 측면도 있었다. 주말에 집에서 일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래서 내린 결론. “근무 방식 바꾸는 게 단순하지 않구나. 패러다임 변화가 정말 힘든 거구나.”
코로나19 때문에 원격근무(재택근무)를 했다. 지난 주 사흘, 이번 주 나흘. 워킹데이 기준으로 총 7일이다.
원격근무를 결정하기까지 회사 내에선 꽤 많은 고민을 했다. 전 직원이 집에서 일한다는 게 생각처럼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서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1. 업무 차질은 없을까.
2. 근태 관리엔 문제 없나.
3. 원격근무가 불가능한 부서는 없나.
누구도 자신 있게 답하기 힘들었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약간의 업무 차질은 감수하자. 직원들(특히 기자들)의 자기 관리를 믿어보자. 대신 팀장들은 여러 소통 수단을 활용해 최대한 업무 차질이 없도록 하자.
그렇게 해서 원격근무에 들어갔다.
■ 출근 안하고 편안한 복장 장점…출근 시간에도 일하는 역설도
전날 저녁 간단한 가족 회의를 했다. “내일부터 집에 있더라도 노는 게 아니다. 근무하는 거다. 평소와 똑 같다고 생각해달라. 가급적 출퇴근 시간도 지키겠다.”
가족 모두 ‘오케이’했다. 동거 가족은 총 3명. 직장 생활하는 딸도 출근을 하지 않는다. 아내는 전업 주부다.
업무 첫날. 평소 출근하던 시간에 일어났다. 샤워와 아침 식사? 잠시 보류. 곧바로 업무 모드 돌입. 평소 같으면 분주하게 출근 준비할 시간이다. 생각보다 아침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우리 집은 비교적 업무 환경이 잘 갖춰져 있는 편이다. 세 명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서재는 원격 근무엔 최적의 조건. 귀찮게 할 어린 아이도 없기 때문에 업무 몰입도는 꽤 높다. 다들 자기 일에 바쁘다 보니, 서로 잡담하는 일도 없다.
그렇게 한 나절이 지났다. 중간에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한 것 외엔 일만 했다. 생각보다 알차게 보냈다는 뿌듯한 기분. 그런데 곰곰 따져보니, 한 나절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평소와 같은 시간에 점심 식사. 식탁에 앉은 가족들이 비로소 대화를 했다. 난 근무 중이니까, 가사 노동은 열외. 아내와 딸은 식사 뒷정리. 난 뭘할까? 평소 같으면 동료들과 식사한 뒤 커피숍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그런데 집에 있으니 애매하다. 소파에 누워서 쉬려니, 왠지 땡땡이 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자연스럽게 다시 책상으로 향한다. 일과 휴식의 경계가 무너지는 느낌. 묘한 기분이 들었다.
오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중간에 잠시 커피를 마시고, 또 수다를 떨긴 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회사에서 중간 중간 휴식하던 것에 비하면 꽤 밀도 높게 일했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평소 퇴근 시간에 맞춰 ‘자체 퇴근’을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몇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생겼다.
첫째. 일이 생활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
둘째. 출근을 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크지 않다. 오히려 조용히 출근할 시간에도 일을 하고 있다.
셋째. 육체적으로 자유로운 건 장점이다. 하지만 ‘심리적 부담’은 생각보다 더 컸다.
편안한 복장으로 혼자 조용히 일할 수 있다는 건 장점이었다. 결론적으론, 생각보다는 힘들었다. 왜 그럴까? 내 나름대로 내려본 결론은 이렇다.
■ 근태 관리보다 성과 관리가 중요…패러다임 바꿔야
‘성과중심’ 문화가 자연스럽게 몸에 배지 않았다. 성과 관리보다는 근태 관리에 더 신경쓰는 측면이 적지 않았다. 회사에선 멍 때리고 있어도 크게 부담되지 않는데, 집에선 뭔가 만들어내지 않으면 ‘놀고 있다’는 자기 부담감이 강하게 작용했다.
둘째날부터 좀 더 유연하게 바꿨다. 점심 시간엔 무조건 산책을 하기로 했다. “회사에서 쓰던 만큼은 쓰자”는 속내. 그래서 점심을 먹고 가족 셋이 근처로 산책을 다녔다. 출근 시간도 좀 조정했다. 어차피 하루 이틀 하고 말 것 아닌데, 새벽부터 무리하지 말자는 생각이 든 때문이다.
나머지 날들은 나름대로 일과 휴식을 구분했다. 중간 중간 스트레칭도 하고, 또 점심 식사 후엔 한 시간 가량 주변 산책. 가끔 가족들이 잡담도 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원격근무의 장단점을 두루 경험할 수 있었다.
갑자기 궁금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페이스북에 “원격(재택)근무를 하니 노동 강도가 생각보다 더 세다”는 글을 올렸다. 그랬더니, 몇몇 분이 댓글을 달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내용이었다.
“출근 안해서 편하지만 퇴근 못한다는 함정이 있다”는 분도 있었다. 휴식 없이 아예 일만 하고 있더라는 반응도 눈길을 끌었다. “야근 아닌 야근을 더 하게 된다”는 분도 있었다.
"가사까지 감당해야 하니 훨씬 힘들더라"는 현실적인 고민을 토로하기도 했다.
“오래 할 거면 의자부터 사야겠다”는 분도 있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사실 원격근무를 제대로 하기 위해선 ‘근무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심리적인 부분은 가족의 협조와 인정을 얻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좀 더 현실적인 건 물리적인 근무 환경 조성이다.
다행히 나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환경이 좋은 편이라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집에 책상 같은 것들이 제대로 없는 분들은 원격근무가 오히려 난감할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혼자서 원룸에 생활할 경우 답답해서 근처 카페로 향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원격근무, 정착될 수 있을까…다양한 시스템 정비 필수
1990년대말 IMF 한파 이후 국내에선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졌다. 대신 ‘평생 고용’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했다. 회사가 나를 평생 고용해주지 않으니, 내가 평생 고용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고민의 산물이었다. 그 때 이후 직장 패러다임이 달라졌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사태는 어떨까? 원격 근무 패러다임을 정착시킬 수 있을까? 몇몇 언론들에선 “코로나19 끝나도 재택근무 확대될 수 있다”는 내용의 기사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쉽진 않아 보였다. 원격으로 일을 하는 것만으론 제대로 된 원격근무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시스템과 보상 체제가 함께 정비되지 않는 한 원격근무가 자리를 잡기 힘들어보였다.
내 페이스북에 달린 댓글 중 “일 중심인 사람은 일을 더하게 되고, 생활 중심인 사람은 일을 더 안하게 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균형이 맞춰질 것 같다”는 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더 강하게 굳혔다.
같은 공간에서 일 하는 방식은 일종의 감시시스템이다. 누군가 감시를 한다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기 때문에 ‘일탈을 최소화하는 효과’가 있단 얘기다. 제레미 벤담이 얘기한 ‘파놉티콘’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관리자 입장에선 근태관리가 쉽다는 것도 장점이다.
반면 업무 집중도는 더 떨어질 수도 있다. 출퇴근하고, 또 동료들과 커피 한 잔 마시거나, 담배 한 대 같이 피우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다. ‘같은 공간에 있다’는 안도감이 은연 중에 작용한다는 의미다.
재택근무는 ‘함께 있다’는 기본 점수가 없다. 근태 관리도 의미가 없다. 따라서 철저한 성과 중심 평가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일 중심인 사람’ 은 생활을 좀 더 챙기고, ‘생활 중심인 사람’은 일을 좀 더 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개인의 근무 환경 문제도 생각해봐야 한다. 재택 근무가 일반화될 경우 ‘개인 사무 환경’ 구축 의무는 누가 지는게 맞을까? 황당해보이지만, 생각해 볼 문제다.
모바일 혁명이 본격화되면서 한 때 ‘디지털 노마드’ 시대가 열릴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 제기되기도 했다. 디지털 시대의 유목민 생활. 기술적인 부분만 놓고 보면 충분히 가능한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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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코로나19로 재택 근무 경험을 해보니, 이게 기술 만의 문제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더 중요한 건 ‘회사란 조직이 존재하는 이유’와 ‘원격 시대에 적합한 근무 및 평가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게 일주일 남짓 원격 근무를 하면서 두서 없이 해 본 생각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