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대형 통신사 보다폰이 페이스북 주도 암호화폐 프로젝트 '리브라'에서 발을 뺐다. 리브라 초기 파트너 중 탈퇴를 공식화한 건 이번이 여덟번 째다.
주요 파트너들이 줄줄이 선긋기에 나서면서, 세계 규제당국을 설득해 리브라 출시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부담은 페이스북이 혼자 짊어지는 모양새가 됐다.
21일(현지시간) 블록체인 분야 전문 외신 코인데스크는 보다폰 탈퇴 사실을 보다폰과 리브라 어소시에이션 양쪽에서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리브라 어소시에이션은 리브라 블록체인을 운영하고 정책을 설정하기 위해 설립된 연합체다. 페이스북의 블록체인 자회사 칼리브라를 포함해 IT, 금융 분야 28개 기업이 초기 멤버로 이름을 올렸다.
보도에 따르면 보다폰은 회사가 지분을 가진 '사파리컴'의 모바일 결제 서비스 엠페사(M-Pesa)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리브라 어소시에이션 탈퇴를 결정했다.
엠페사는 문자 메시지를 통해 친구와 가족에게 돈을 빌리거나 송금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이미 케냐를 포함해 아프리카 6개국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이용자는 3천5백만 명에 이른다. 케냐에서는 엠파사가 성공적으로 자리잡으면서 은행보다 폰에 돈을 보관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큰 그림에서 엠페사와 리브라는 지향하는 목표가 같다. 개발도상국의 은행 계좌가 없는 사람들도 모바일을 통해 돈을 보관하고 전송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리브라도 백서에서 인스타그램, 왓츠앱 등 페이스북 기반 서비스를 통해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만큼 쉽게 돈을 주고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엠페사가 이미 아프리카 지역에서 자리잡은 것과 달리, 리브라는 세계 규제 당국의 견제로 출시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보다폰이 리브라 대신 엠페사에 집중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데에는 이런 상황적 배경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보다폰 측은 코인데스크를 통해 "지금은 엠페사에 집중하는 것이 세계 빈곤층에 저비용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다폰을 포함해 초기 리브라 어소시에이션 중 탈퇴를 공식화한 업체는 총 8곳이다. 지난해 10월 페이팔을 시작으로 마스터카드, 비자, 메르카도 파고, 이베이, 스트라이프, 부킹홀딩스가 줄줄이 리브라를 떠났다. 이로써 리브라 어소시에이션 멤버 수는 20개로 줄었다.
페이스북과 리브라 어소시에이션은 파트너들의 탈퇴가 리브라 프로젝트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리브라 어소시에이션의 단테 디스파트 정책 및 커뮤니케이션 총괄은 파트너사들의 연이은 탈퇴에 대해 "어소시에이션 멤버 구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할 수도 있지만 리브라가 구현한 거버넌스와 기술 체계는 리브라 페이먼트 시스템을 끄떡 없이 유지시켜 줄 것이라 본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든든한 우군으로 여겨졌던 대형 IT, 금융, 통신 기업들이 엑소더스로 페이스북은 세계 주요 규제 당국과 외로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페이스북이 지난해 6월 리브라 백서를 공개한 직후 미국, 영국, 유럽연합을 포함해 세계 주요국의 금융 규제당국은 "페이스북 같이 글로벌 사용자를 갖춘 민간 기업이 주권화폐를 발행할 경우 세계 금융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보다폰을 제외한 다른 파트너들은 세계 리브라 프로젝트를 집중 견제하고 있는 상황이 부담으로 작용해 탈퇴를 결정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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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과 리브라 어소시에이션은 당초 올해 1분기 안에 리브라를 출시할 계획이었지만, 현재로써는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페이스북 마크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열린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리브라 청문회'에 참석해 "미국의 모든 규제 기관이 승인하기 전까지 리브라 결제 시스템을 전세계에 출시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