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기와 LG이노텍이 HDI 기판 사업에서 철수를 결정했다. HDI 기판은 스마트폰의 각종 전자회로가 동작하게 만드는 필수 부품이지만, 양사 모두 중국의 물량공세로 수년 간 적자를 이어온 게 철수 원인이 됐다.
삼성전기는 지난 12일 이사회를 열고 중국 쿤산 생산법인의 청산을 결정했다. 또 법인 청산에 따른 차입금 상환 및 향후 청산비용 확보를 위한 3천836억원의 유상증자도 결정했다.
삼성전기 측은 "쿤산법인 HDI의 수익성 개선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계속해왔으나 시장 성장 둔화 및 업체 간 가격경쟁 심화로 경영 실적이 지속적으로 악화돼 영업중단이라는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HDI PCB(High Density Interconnection Printed Circuit Board·고밀도 인쇄회로 기판) 시장은 중국 기업들의 저가 공세로 더이상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것이다.
LG이노텍 상황도 비슷하다. LG이노텍의 올해 3분기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LG이노텍 청주공장의 HDI 생산능력은 지난해 말 50만4천시트에서 올 3분기 말 10만2천시트까지 감소하는 등 위기를 겪고 있다.
LG이노텍은 지난달 28일 HDI PCB 사업 철수를 공시하면서 "모바일폰용 고부가 제품 수요 감소 및 경쟁 심화로 사업 부진이 지속됐다"며 "PCB 관련 일부 자원을 반도체 기판 사업으로 전환해 반도체 기판 사업에 집중하겠다. 성장·수익 창출 가능한 사업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개선하겠다"고 전하기도 했다.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은 앞으로 기판 사업에서 아직 중국 기업들이 양산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한 '반도체 패키지 기판(SiP)'과 'RFPCB(Rigid Flexible Printed Circuit Board·인쇄회로기판)' 사업에 역량을 더욱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내년부터 5G(5세대 이동통신 기술) 서비스가 글로벌 시장에서 본격 상용화됨에 따라 5G 스마트폰용 고부가 기판에 대한 수요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국내 기판 시장은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의 HDI 기판 사업 철수로 흔들리는 모양새다. 국내 기판 산업의 성장을 견인할 대기업들이 수익성을 이유로 사업을 철수하자 중견·중소 기판 기업들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기판 업계에서는 대표 수요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올해부터 스마트폰을 생산하는데 ODM(제조사개발생산) 및 합작개발생산(JDM) 방식을 늘리는 것도 부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더욱이 중국 스마트폰 시장은 중국 내수 기업들 위주로 동맹이 결성된 만큼 진입이 어렵다는 위기감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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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자회로산업협회 한 관계자는 "대기업이 HDI 기판 사업에서 철수했다는 건 과거에는 HDI 기판이 고부였지만 이제는 범용 제품이 됐다는 의미다"라며 "대형 기업의 HDI 사업 철수는 국내 중견·중소기업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세트업체(삼성전자, LG전자가) ODM 물량을 늘리고 있는 것도 문제다. 국내 PCB 업계는 2013년 이후 내리막길을 걸으며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수요를 끌어낼 포스트 스마트폰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편 글로벌 PCB 시장은 2018년을 기준으로 588억달러(약 69조원)로 추산된다. 국가별 PCB 생산액은 중국이 전체의 47.2%를 차지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 대만(13.2%)에 이어 3위(13.1%)를 기록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