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가상자산) 사업자에 금융권 수준의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하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이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하 특금법)'이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가운데, 자칫 특금법 시행 후 암호화폐 거래소의 생사여탈권을 은행이 쥐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앞으로 거래소를 운영하려면 실명확인이 가능한 입출금 계정이 반드시 필요한데, 발급 조건이 명확하지 않으면 은행이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계정을 내주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앤장법률사무소 정영기 변호사는 10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블록체인 컨퍼런스에서 "특금법 시행으로 우려되는 것은 규제 내용이 아니라 규제가 불명확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하며, "대통령 시행령에서 실명계좌 발급 조건 등을 아주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국블록체인학회, 한국블록체인콘텐츠협회, 한국블록체인평가가 주최한 이날 컨퍼런스는 특금법 개정안 및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정책권고안 이행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로 마렸됐다.
특금법 개정안은 지난달 25일 정무위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의결을 남겨 놓고 있다. 지난 6월 FATF가 발표한 가상자산 관련 국제 가이드라인을 실정법에 반영하기 위한 입법과정을 진행 중인 것이다. FATF 가이드라인에는 가상자산 사업자가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다 하도록, 각 지역 관할기관이 관리감독 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에 따라 특금법 개정안에도 가상 자산 사업자는 반드시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 수리(준허가)'를 획득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미신고 영업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의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문제는 영업 허가를 받으려면 '실명확인이 가능한 입출금 계정'을 사용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은행이 입출금 계좌를 발급해 줘야 하는 조건은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정 변호사는 "그동안 은행권에서는 실명확인 가능한 입출금 계정 제공에 소극적였다"며 "발급조건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은행이 마음대로 거래소 영업 여부를 판단하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실명계좌를 보유한 업체는 빗썸, 업비트, 코인원, 코빗 등 대형 4개 거래소뿐이다. 은행들은 추가로 실명계좌를 발급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은행은 중소 거래소가 법인 계좌를 고객 거래 지원을 위해 사용하는(일명 벌집계좌) 경우 입출금 계좌 계약 해지를 시도하면서, 업체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이미 실명 계좌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도 안심할 수 없다. 실명계좌 보유 여부가 신고수리 요건뿐 아니라 직권말소 요건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영업 허가를 받은 거래소도 은행이 실명 계좌 계약을 연장해 주지 않으면, 허가가 말소된다는 얘기다.
강 변호사는 "은행에서 계좌를 제공하다가 연장을 거부에서 끊으면 직권 말소 사유가 발생하고 직권이 말소되고 5년이 지나지 않으면 다시 신고를 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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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어 "특금법은 규제 틀안에서 가상자산 거래를 양성화·제도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면서 "규제 내용보다 규제가 불명확해서 생기는 문제가 우려되는 만큼 대통령 시행령을 통해서 규제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컨퍼런스에 참석한 금융위원회 노태석 정책전문관은 은행이 실명계좌 발급에 대해 보수적으로 해석할 여지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시행 초기에는 아무래도 금융기관 입장에서 (실명계좌 발급을) 보수적으로 평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정부에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시할 순 없는 입장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