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기술(ICT) 영역에서 요즘 최고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누가 새로운 KT 회장이 될 것인가의 문제다. 그도 그럴 만하다. KT가 어떤 회사인가. 재계 10위권인데다 직원만 해도 수만 명이다. 그뿐인가. 국내 ICT 생태계의 정점에 있다. 그러하니 그 영향력이 지대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오너 없는 대기업’ 아닌가. 누구라도 줄만 잘 서고 공략만 잘 하면 꿰찰 가능성도 있는 상황 아니겠나.
이 자리를 정치권이 탐내는 이유가 그것이다. 실제로 KT 회장은 늘 정치권의 논공행상과 연결됐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현직은 내려오기를 강요받는 듯 했다. 알아서 물러나야 현명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잖으면 정치권력의 매운 맛을 피하지 못한 것 같다. 우리나라는 언제나 정치권력이 검찰을 시녀처럼 부렸고 그들은 물러나지 않는 KT 회장을 털었다. KT 회장은 그러므로 위험한 자리였다.
황창규 회장은 그 점에서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가 삼성 시절부터 반도체로 보여준 탁월한 경영 능력 덕이겠지만, 어찌됐든 연임에 성공했고, 그 사이에 정권이 바뀌었지만 무사하고 무탈하게 임기를 마칠 수 있게 됐다. 2년6개월 전 정권이 바뀌자 정부 여당이 그를 흔든다는 루머가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무사히 임기를 끝마치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그런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정부는 이번 선임절차에도 깊게 관여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2가지다. 우선 현재 정부여당의 형편이 KT 회장에 간여할 만큼 녹록치 않아 보인다. 경제 북핵 일본 등 굵직한 이슈를 처리하는 것만도 힘겨워 보인다. 그 와중에 KT 회장에 신경 쓸 겨를이 있을까. 게다가 선거가 코앞이다. 만약 이 문제로 구설에 오른다면 득보다 실이 훨씬 클 것임은 너무나 자명한 이치 아닐까.
KT 회장 선임 과정에서 과거와 다르게 정치권력의 입김이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해서 ‘정치’마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왜? 많은 이에게 KT 회장 자리는 여전히 ‘권력’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에는 ‘정치’가 불가피하다. 그래서 어쩌면 진짜 문제는 이것일 수도 있다. 이 문제에 청와대가 개입할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청와대를 칭하는 존재’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정치’는 그러나 청와대만 뜻하는 게 아니다. 내부에도 있다. KT 회장에 응모한 37명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들을 순수한 개인으로 볼 수만은 없다. 과거로부터 이어진 역사적 맥락 속에서 하나의 ‘세력’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수도 있다. 이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사실을 간과할 경우 KT는 신임 회장 선임 이후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 세력은 ‘정치’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KT 새 회장에 누가 선임되느냐보다 어떻게 선임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고 쓴 까닭이 여기에 있다. KT 회장은 선거로 뽑지 않는다. 기껏해야 열 명 안팎의 판단에 좌우된다. 지배구조위원회와 회장후보심사위원회 그리고 이사회 멤버가 그들이다. 각각의 멤버는 다르기도 하고 겹치기도 한다. 결국 이들이 중요하다.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가 결국 KT의 미래를 좌우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그 중요한 분들에게 두 가지를 제안한다. 후보를 심사하고 고를 때 ‘전문성’과 ‘경영 능력’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건 두 말할 나위 없는 얘기고, 그에 못지않게 후보가 KT 회장 자리를 ‘권력’으로 여기는지 ‘봉사’하는 곳으로 여기는지 그 품성을 잘 따져주기를 바란다. ‘권력’은 반드시 ‘정치’를 동반하게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회사는 미래로 가지 못하고 내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멤버들은 무엇보다 고정관념인 사견(私見)을 버리고 넓고 길게 판단하기 바란다. 이미 이리저리 얽힌 사견은 ‘정치’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하라고 선임권한을 위임해준 게 아니다. ‘정치’와 단호히 결별하고 좋은 여론을 넓고 깊게 듣길 권한다. 주주와 수만 명의 직원 그리고 국민인 소비자와 수천은 될 협력업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 위해서는 사견을 먼저 버리고 귀를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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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고정 관념에 의해 멤버들 마음속에 자리한 능력 있는 그 ‘누구’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다시 생각하게 된 다른 누군가가 KT 회장의 적임자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마음이 있다면 남은 기간 바삐 움직이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힘이 있어 ‘정치’적 발언을 할 사람은 될수록 만나지 말고, 작은 주주, 이름 없는 직원, 소비자, 헌신적인 협력업체의 의견을 가능한 많이 들어보시길 권한다.
여건상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이 원하는 회장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 지를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그게 회장 선임에 위임된 권한을 바로 쓰는 길이다. 그래야 사내외 ‘정치’와 결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