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강점은 누가 뭐래도 전자 분야의 ‘제조 경쟁력’이다. 그런데 제조 경쟁력은 ‘공정의 선진화’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건 기본이다. 여기에 더 좋은 부품을 조달할 수 있는 생태계와 잘 만든 제품을 더 빠르고 넓게 공급할 수 있는 유통망까지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삼성은 전자 분야 세계 최강이다. 세트에서 부품까지 수직계열화했다는 점도 삼성이 가진 제조 경쟁력 중 하나다.
삼성은 그러나 늘 위기다. 반도체는 추종 불허의 세계 1위이고, 스마트폰도 1위 자리를 차지한 뒤로는 왕좌를 내준 기억이 별로 없지만,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위기론을 전파한다. 반도체는 경기 파동에 따른 영업이익 감소가 직접적인 원인이고, 스마트폰은 미국 애플과 중국 화웨이 사이에 끼였다는 샌드위치론이 배경이다. 실제로 이들 요소는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두 위기 중 그나마 반도체는 조금 더 여유가 있는 편이다. 삼성 자체의 대외경쟁력이 근본 문제인 게 아니라 세계 경제와 경기라는 외부 환경 탓이기 때문이다. 경기 파동은 늘 있는 것이고, 삼성은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준비가 가장 잘 된 기업 중 하나이며, 경기에 따라 물량을 주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입장이기도 하다. 경기는 순간적으로 악재지만 잘 준비하면 장기적인 호재이기도 하다.
스마트폰은 반도체와 입장이 다르다. 반도체는 아직도 상당기간 삼성을 중심으로 한 과점체제가 지속될 것이고 4차산업혁명이 더 활발하게 전개될 경우 지금의 위기는 길지 않은 시간 내에 호재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반도체와 같은 절대 우위에 있지 않다. 샌드위치론은 분명하고 냉정한 현실이다. 삼성 스마트폰은 지난 3~4년 동안 그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시장을 통째로 잃은 것은 가장 뼈아픈 일이다. 삼성은 한때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30%대의 점유율로 1위를 했었다. 6~7년 전 일이다. 그러나 최근 2~3년간 점유율은 수치를 기록하기가 무색할 정도로 줄어들었다. 여전히 세계 1위를 하고 있고 한때 중국 시장에서도 1위를 했던 기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휴대폰 사업을 중국에 팔라는 비아냥도 들었다.
스마트폰은 그러나 삼성으로선 포기할 수 없는 사업이다. 스마트폰을 포기하는 순간 ‘전자 분야 세계 최강’이라는 브랜드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에 집중해 부품 분야 세계 최강이라는 명망은 유지할 수 있겠지만 세계 최강의 제조 경쟁력을 갖춘 회사라는 지위에서는 내려와야 한다. 잘 닦아 놓은 부품 생태계와 사통팔달하는 유통망을 더는 유지하기 힘들게 되기 때문이다.
배터리와 전장부품, 그리고 IT 솔루션 사업을 강화하는 만큼 친환경차 시장에 직접 진입한다면 스마트폰을 접고도 더 큰 미래를 열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삼성이 그런 준비를 하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그 영화 같은 장면전환은 부드럽고도 치밀하게 준비돼야 한다. 그리고 충분히 그렇게 할 수도 있다. 그걸 위해서라도 스마트폰은 상당기간 삼성에게 주력 사업이어야만 한다.
삼성의 뜻 또한 그런 것처럼 보인다. 스마트폰 사업에 대한 온갖 의혹의 눈초리 속에서도 지난 3~4년간 매진한 결과물이 최근 청신호를 보내고 있는 듯하다. 특히 중국 시장에서 그렇다. 5G폰과 폴더블이 나쁜 분위기를 뒤집기 하고 있다. 역시 중요한 것은 혁신에 대한 투자다. 투자는 실패할 수도 있지만, 투자하지 않고서 성공하는 기업은 있을 수 없다는 자명한 진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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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보도에 따르면 삼성은 3분기 중국 5G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29%를 차지했다. 중국 업체 비보에 1위를 내줬지만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분석이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출시한 폴더블 폰도 완판을 기록했다. 여러 이유로 애플과 중국 폰만을 구매하던 중국인들이 다시 삼성 제품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 답은 삼성 아니면 안 되는 제품을 조기에 시장에 투입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정치인은 늘 국민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야 선거에 이길 수 있고 기업은 소비자의 마음을 세세히 살펴야 물건을 팔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세계 1위가 될 수 있는 길은 없다. 삼성은 중국 시장에서 뼈아픈 경험을 통해 중국인의 마음을 살피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그걸 믿어도 좋다. 중국에서도 잃어버린 고토(故土)를 꼭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