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경찰청은 국제 공조 수사를 통해 다크웹의 아동음란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W2V)' 이용자 300여 명을 검거했다. 사이트 운영자인 손모 씨는 2015년부터 해당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약 4억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이와 같이 아동음란물 사이트 운영 등 범죄행위에 비트코인을 이용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법정화폐가 아닌 비트코인으로 범죄 수익을 얻었을 때, 비트코인은 몰수 대상에 속하는 걸까. 몰수가 된다면, 몰수된 비트코인은 어떻게 처리되는 걸까.
7일 대검찰청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한국디지털포렌식학회는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에서 이와 같은 주제를 논의하는 2019 과학수사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 국내법상 '재산'으로 해당해 몰수 가능…"국제 추세에도 부합"
이날 최상훈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증권범죄합동수사단 검사는 범죄수익으로서의 비트코인을 몰수한 국내 사례를 소개했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지난해 5월 수원지방법원에서 음란물 사이트 운영으로 비트코인을 취득한 사건에 대해 몰수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비트코인을 법률상 재산으로 인정해 몰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 판결이다.
수원지방검찰청에서 해당 사건의 항소심을 맡은 최 검사는 "당시 법원에서도 핵심 쟁점은 피고인의 유무죄 여부가 아니라 비트코인 몰수 가능 여부였다"고 말했다. 당시 수원지방법원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음란물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범죄수익으로 취득한 216비트코인 중 191비트코인을 몰수하라는 선고를 내렸다.
수원지법의 이러한 선고는 몰수를 기각한 1심의 판결을 뒤집은 판결이었다. 앞서 2017년에 진행된 1심에서는 ▲압수된 216비트코인 중 범죄수익에 해당하는 부분만을 특정하는 것이 어려우며 ▲비트코인이 현금과 달리 물리적 실체 없이 전자화된 파일 형태로 돼 있어 몰수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해당 사건의 비트코인 몰수가 기각됐다.
하지만 1심 이후 수원지방검찰청은 대검찰청 사이버수사과와의 협업을 통해 범죄수익에 해당하는 부분을 명확히 특정할 수 있고, 국내법상 비트코인이 몰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해외 판결 사례를 예시로 들어 비트코인이 재산에 해당해 몰수가 가능하다는 2심 및 대법원 선고를 끌어냈다.
최 검사는 "음란물 사이트 서버에서 비트코인을 이체받은 주소 및 그 액수가 기재된 목록이 확인됐고, 대검찰청 사이버수사과에서 2개월에 걸쳐 압수된 비트코인의 블록체인에 기록된 주소와 비교·대조해 범죄 수익을 특정했다"며 이를 항소심 재판과정에서 추가 증거자료로 제출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비트코인은 생성·보관·거래가 공인되는 가상화폐라는 점 ▲범죄수익은닉규제법에 따라 몰수 대상이 '재산'으로 확장 가능하며, '재산'은 현금, 예금, 주식 이외에도 간접적으로 사회통념상 경제적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이익 일반으로 정의했다는 점 ▲게임머니도 재산으로 인정한 비슷한 사례가 있다는 점 ▲현실적으로 법정화폐로 환전돼 경제적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 ▲미국 실크로드 판결 등 해외 사례가 존재한다는 점 등이 몰수 인용 사유로 고려됐다.
미국에서는 2014년 마약 밀거래 사이트인 실크로드에 남아있던 29,656.5비트코인(당시 약 1800만 달러)과 운영자 컴퓨터에서 발견된 144.341비트코인을 압수해 공매 절차를 걸쳐 현금으로 교환한 후 국고로 귀속한 바 있다.
이외에도 프랑스, 영국, 스페인, 인도에서도 암호화폐 압수를 인정한 사례가 있으며, 독일, 호주에서는 범죄 수익으로 벌어들인 비트코인을 압수해 경매를 진행한 사례가 있다.
최 검사는 "몰수한 비트코인을 반환하게 되면 피고인이 경제적 이득을 취득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해 정책적으로도 몰수가 타당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며 "해당 판결은 향후 암호화폐를 이용한 범죄 수사나 그 범죄수익 은닉 등과 관련한 수사에 참고할만한 유용한 판결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 몰수한 비트코인 처리는 유보…"공매절차 진행되려면 법적 성격 먼저 규정돼야"
국내에서 범죄수익으로 취득한 비트코인이 몰수가 가능하다는 판결은 나왔지만, 아직 몰수된 비트코인의 처리에 대해서는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위의 판결을 통해 압수된 191비트코인은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처리되지 못한 채 검찰청 지갑에 들어 있다. 아직 국내에서 비트코인의 법적 성격이 규정되지 않아 공매와 같은 처리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윤후 대검찰청 과학수사과장은 "압수한 비트코인 공매절차에 관련해서는 노력하는 중"이라며 "형사법뿐 아니라 비트코인에 대한 법적 성격이 먼저 규정돼야 하고, 법적 성격이 규정되면 거기에 따라 형사 집행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진행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사례 발표 뒤에 이어진 토론에서는 범죄자가 비트코인이 들어 있는 개인 지갑의 주소와 비밀키 등의 공개를 거부하는 상황일 때, 비트코인을 강제적으로 몰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윤정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191비트코인을 압수한 해당 사건의 경우는 범죄자가 자신의 전자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수사기관이 생성한 전자지갑으로 순순히 이체해 준 상황이지만, 이와 달리 범죄자의 비트코인이 탈중앙화 개인 지갑에 보관 중이고 범죄자가 해당 지갑의 주소와 비밀키 공개를 거부하는 경우는 비트코인이 몰수 가능한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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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균 한국형사정책연구위원도 "비트코인이 보관돼 있는 전자지갑의 암호를 확보하는 방법이 피의자의 진술밖에 없을 때, 해당 암호화폐의 실질적인 압수를 위해서 어떤 수사기법이 필요한지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최 검사는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서 암호화폐 거래소를 먼저 압수수색할 것으로 보인다"며 "그 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고민하지 못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