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박영민 기자) 배터리 셀 한가운데로 20센티미터(cm) 길이의 강철못을 억지로 욱여넣자 연기와 함께 빨간 불꽃이 피어올랐다. 셀 온도는 이내 300도(℃)까지 상승했다. 내부에 부착된 수만 개의 소화(消火)캡슐이 불꽃과 부딪혀 '탁, 탁, 탁' 소리가 났다. 정확히 10분 뒤 셀 내부 온도는 3도로 떨어졌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로 한바탕 곤욕을 치른 배터리 업계가 본격 신뢰 회복에 나섰다. 23일 삼성SDI 울산사업장에서 열린 ESS 소화시스템 시연회는 무너진 생태계를 하루빨리 복원하고 싶다는 업계의 간절함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삼성SDI는 이날 시연회에서 2천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자체 개발한 화재 확산 차단용 특수 소화시스템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 시스템은 자칫 대형 화재로 번질 가능성을 전면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 특수 소화시스템 시연…"극단적인 상황에서도 효과적으로 작동"
먼저 특수 소화시스템이 적용된 배터리 모듈의 강제 발화 테스트가 진행됐다. 모듈의 셀을 강철못으로 찔러 강제 발화를 시켰더니 시간이 지나 한 개의 셀에서 연기와 함께 불꽃이 발생했다. 이어 소화시스템이 작동해 불꽃을 식혀 화재 확산을 막았다.
이는 소화시스템 내부에 부착된 첨단약품 덕분이다. 배터리 내부 온도가 올라가면 자동 분사돼 수만 개의 캡슐이 불꽃과 부딪혀 열을 식힌다. 실제로 첨단 약품이 들어있는 소화 부품을 불 위에 올리자 수십 초내 불이 꺼졌다. 부착된 모듈 커버에는 어떠한 화재 흔적도 없었다.
첨단약품에는 운모(MICA) 등 복합 재질로 구성된 열확산차단재가 쓰였다. 이 약품들이 셀과 셀 사이에 겹겹이 들어가 열 확산을 막는 것이다.
이어 소화시스템이 적용되지 않은 모듈에도 동일한 테스트가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불꽃과 연기가 발생하더니 얼마 후 인접한 셀로 화재가 확산되어 모듈이 전소됐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배터리 셀에 일부러 못을 찔러넣어 불을 낼 일은 없다"며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소화시스템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 삼성SDI "배터리가 원인 아냐"…화재 확산 '전면차단'
ESS 화재는 지난 2017년부터 지금까지 총 27건 발생했다. 다만 화재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제조사들은 배터리가 화재 원인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해왔다. 정부 조사 결과 화재와 배터리 결함의 직접적인 연관성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삼성SDI는 화재 원인을 찾는 동시에, 배터리 외부적인 요인에 따른 발화 이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운영 과정에서 관리가 미흡하면 ESS가 외부 환경에 노출돼 누수·외부물질 이입 등 배터리에 큰 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것. 이상징후가 발생된 시스템을 원격으로 제어하는 소프트웨어 펌웨어 개발도 이달 내로 끝낼 계획이다.
허은기 삼성SDI 중대형시스템 개발팀장(전무)은 "당사는 고전압·고전류 등 외부 충격으로부터 제품을 보호하는 3중 차단장치를 통해 안전조치를 강화하고 있다"며 "배터리 셀의 문제는 아니지만, 국내 ESS 산업 생태계를 복원시키기 위해 선제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게 우리의 진심"이라고 설명했다.
삼성SDI는 소재 단계부터 출하까지 '이물 제로(ZERO)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 국내외 모든 사업장에 첨단 품질 관리 시스템도 도입해 엄격하게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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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 관계자는 "ESS화재에 대한 국민들과 고객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자체 부담으로 이 같은 실질적인 조치를 취했다"며 "이번 조치를 통해 국내 ESS 산업의 생태계가 회복되는 것은 물론, 글로벌 ESS 시장에서 기술을 선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전영현 삼성SDI 사장도 현장에서 직접 나서 소화시스템 기술 설명을 이해하기 쉽게 돕기도 했다. 전 사장은 "우리 배터리가 시장에 출하되기 전에 품질과 안전을 선제적으로 콘트롤 해야 한다"며 "안전은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경영원칙"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