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 양자기술 선점 칼 뽑았다

퀀텀 프로젝트 가동, 미국 중국 패권경쟁에 정면 승부수

방송/통신입력 :2019/10/20 12:00    수정: 2019/10/20 14:50

<헬싱키(핀란드)=박수형 기자> “유럽이 양자 기술 산업을 이끌기 위해 처음 그렸던 청사진은 미국이 유인우주선을 달에 착륙시켰을 때 성조기를 꼽은 것처럼 유럽연합은 퀀텀 플래그십 프로젝트로 EU 깃발을 가장 먼저 꼽겠다는 것이다.”

17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파시토르니 컨퍼런스 센터에서 EU 퀀텀 플래그십 커뮤니케이션 담당인 알리나 히어쉬만 박사는 이같이 말했다.

물리학의 새로운 분야 정도로 여겨진 양자역학의 산지인 유럽에서 양자를 통한 ICT 산업 발전의 선두에 서겠다는 뜻이다. 미국과 중국이 수조원대 투자 규모로 양자 기술 확보에 패권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EU가 뒤처질 이유가 없다는 자신감이다.

유럽은 20세기부터 알버트 아인슈타인, 막스 보른, 닐슨 보어 등 양자 이론의 기초를 만든 수많은 석학을 배출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 1차 양자혁명으로 트랜지스터, 마이크로프로세서, 의료 이미징 스캐너 등 다양한 산업을 태동시켰다는 것이 EU의 믿음이다.

1차 양자혁명에 머물지 않고 21세기에는 유럽이 2차양자 혁명을 선도해 미래 산업 전반을 이끌겠다는 계획이다.

■ 10억 유로 장전, 퀀텀 플래그십 출범

EU는 ‘제2의 약자혁명 선도’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며 지난해 10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퀀텀 플래그십(양자대표기구, https://qt.eu/)’을 출범시켰다. 이를 통해 양자 기술 분야에 2018년부터 2028년까지 10년간 10억유로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퀀텀 플래그십은 유럽 전역의 학계, 산업계 양자 기술 전문가 5천여명과 각국의 정부 기관이 참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통신, 컴퓨팅, 센싱, 시뮬레이션 총 4개 분야에서 양자 기술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목표다.

EU는 퀀텀 플래그십 출범에 앞서 양자기술자문위원회를 설립해 유럽의 양자 기술 발전을 위해 장기 실행 로드맵, 거버넌스 등을 조언하는 등의 준비를 거쳤다. 또 EU 회원국의 다국적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 26개국으로부터 연구 자금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퀀텀 플래그십 출범과 함께 통신, 컴퓨팅, 센싱, 시뮬레이션 분야의 20개 프로젝트에 1억3천만 유로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즉, 퀀텀 플래그십은 EU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올해부터 대규모 프로젝트를 실제 시행하게 됐고, 첫 번째 프로젝트인 오폰 QKD(공개 양자키분배) 프로젝트에 SK텔레콤 자회사 IDQ가 전격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EU 차원에서는 모든 양자 응용 분야의 근간이 되는 양자암호통신부터 가장 먼저 구축하겠다는 계획이 시작된 셈이다.

한스 휘벨 오픈 QKD 프로젝트 리더는 “양자암호 기술은 이미 성숙화 단계이며 실제 시장에 적용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오픈 QKD 참여 파트너의 양자암호통신 기술이 연구실 수준을 넘어 상용화 직전의 높은 수준에 올라있다는 뜻이다.

■ 유럽 전역 양자 경쟁력 모인다

EU 퀀텀 플래그십은 핀란드 헬싱키 파시토르니 센터에서 지난 18일까지 이틀간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양자 분야의 저명한 과학자, 기업 대표, 정책 입안자들이 모두 모여 유럽 양자 기술 생태계의 현황과 미래 비전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하기 위한 자리다.

위르겐 믈뤼넥 퀀텀 플래그십 SAB 의장은 “유럽은 현재 제 2의 양자혁명을 선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유럽 대륙 차원의 협력이 필요할 때”라며 “이번 행사에 대규모 커뮤니티가 모여 양자 기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것에 큰 기대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는 유럽의 양자기술에 대한 고찰과 전략적 실행 방안이 두루 논의됐다.

헤이키 마닐라 핀란드 아카데미 대표, 카릴 로하나 EC(유럽집행위원회) 통신콘텐츠기술 담당, 위르겐 믈뤼넥 퀀텀 플래그십 SAB 의장, 유카 페코라 핀란드 Aalto 대학 교수, 안티 바사라 핀란드 국립기술연구소 원장, 얀 괴츠 IQM CEO는 각각의 의견을 담아 유럽 양자 기술에 대한 진단과 청사진을 제시했다.

위르겐 믈뤼넥 퀀텀 플래그십 SAB 의장

■ EU의 양자기술 발전 고민은 어떻게 이뤄지나

주목할 부분은 국내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회성 발표, 미국이나 중국의 대규모 자본 투입과 달리 기반 강화를 위한 교육과 인프라부터 중장기적 계획이 동시에 실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퍼스트무버로 나서겠다는 목표는 같지만, 양자 기술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공공 교육을 강화하는 기반 강화부터 집중해야 하는 산업 분야로 규모를 키워야 할 지점을 명확히 지목했다. 지속적인 연구인력 확충에도 청사진 수준을 넘어 단계별 계획 도입을 고민하고 있다.

EU 각국의 정부 투자와 별도로 벤처캐피탈의 투자 목적지를 이끌기 위한 고민도 이뤄지고 있다. 일자리 창출 역시 따로 고민하지 않고 양자 산업 발전에 따른 효과고 기여할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특정 대규모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톱다운 방식의 생태계 조성보다 중소 중견기업마다 각각의 역할을 부여하는 방안이 EU가 고민하는 양자 기술 개발 방법론이다. 단순히 규모가 작은 회사도 양자로 끌어들이겠다는 취지는 아니다.

양자 분야의 다양한 기술을 두고 유럽 역시 큰 회사가 맡아야 역할이 있지만 중소기업들이 양자 하드웨어 분야로 옮겨올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지다. 이를 통해 기초기술을 가진 중소기업과 엔드유저 역할의 큰 회사로 생태계 전반을 육성시킨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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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환 IDQ 부사장은 “그동안 유럽의 자존심만 보이고 행동은 보이지 않았는데 EU가 추진하는 퀀텀 프로젝트는 양자역학의 본산지에서 산업화를 시켜 전세계를 이끌겠다는 뜻이 분명히 드러난다”며 “자신들의 방식으로 기술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잘 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새로운 산업의 생태계를 위해 다음 세대 교육을 해야 한다고 프로젝트 시작부터 고민하고 있는 점은 한국이 본받아야 할 부분”이라며 “한번 크게 투자받겠다는 미국식 사고와 달리 세부적인 목표로 투자를 이끌고 다음 목표를 세우는 점은 매우 전략적인 접근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