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법안소위 안건으로 수 차례 상정됐으나, 어제도 결국 법안소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대 정기국회는 오늘부터 국정감사를 진행한다. 앞으로 한 달 가량은 법안 심사 재개를 기대하기 힘들다. 국정감사 종료 이후 논의를 서두를 수도 있겠지만, 낙관하기는 어렵다. 내년 총선이 예정돼 있어 법안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내내 그랬던 것처럼 정쟁으로 식물국회가 재연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해당 개정안은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위한 '데이터3법' 중 하나다. 익명 처리한 데이터인 '가명정보' 개념을 법제에 도입하고, 이를 산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끔 하는 제도 전반을 포함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데이터를 차세대 주요 먹거리로 보고 대비하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의 데이터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법제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발의된 법안이다.
법안에 대해 정보 주체의 권리 침해가 우려된다는 시민단체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조차도 데이터 산업화를 위한 기틀 마련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갖고 있다. 법안 수정·보완이 필요할 수는 있으나, 이런 변화를 막아야 한다는 여론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난 8월 말 개보법을 다루는 법안소위가 열릴 '뻔' 했다. 그러나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선거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의 반발로 무산됐다.
지난달 9일도 일정이 잡혔지만 무산됐다. 국회 행안위 관계자에 따르면 "추석 지나고 하자"는 게 이유였다.
두 차례의 무산 끝에 19일, 27일 소위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개보법 관련 의견 차이도 확인했다. 가명정보의 활용 범위를 어디까지 둘 것인지와 개인정보 관련 콘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될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추천 방식 등을 두고 논의가 오갔다.
때문에 어제 열린 법안소위에서는 입장 차를 좁히고, 어쩌면 법안이 소위를 통과할 수도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다른 상황이 전개됐다. 앞서 언급된 이견은 정리됐지만,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이 이전까지 언급하지 않았던 '조사 처분권' 관련 내용을 걸고 넘어졌다. 현 행정안전부 산하의 이 권한을, 개보위로 옮긴다는 내용에 대해 반대하고 나섰다.
그런데 이 내용은 우리나라 적정성 평가를 받고 있는 유럽 일반 개인정보보호법(GDPR)의 제58조에서도 규정하는 사항이다. 개인정보 활용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시민단체에서도 비판한 적 없는 내용이다. 소위 현장에서 동조하는 의원도 없었다.
GDPR에서 요구하고 있기도 하지만, 행안부에서 개보위로 권한을 이전하는 대의적 근거도 존재한다.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도 민감한 개인정보를 다루는 주체다. 철저한 감시·감독을 위해서는 독립 기관이 필요하다.
이런 내용은 GDPR 관련 규정 해석본과 함께 권은희 의원실에 전달됐다. 그러나 합의에 이르진 못했다. 권 의원이 해석본이 아닌, GDPR 조항 원본을 봐야겠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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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논의 중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법안을 세세히 살펴보는 과정에서 새로운 이슈도 부상할 수 있다. 법안 처리가 지연되더라도 그에 대한 논의가 치열하게 이뤄진다면 국민 입장에서 납득할 수 있는 결과다. 그러나 정파 싸움으로 법안 논의가 뒷전이 되고, 어렵사리 열린 논의 현장에서도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필요한 법안 처리가 미뤄진다면 '열심히 일하는 국회'라는 감상은 당연히 얻기 어렵다.
개보법 관련 조사 처분권 이전을 반대한 이유에 대해 업계 관계자 대부분 그럴 듯한 추측을 떠올리지 못했다. 권 의원실에 이유를 듣고자 했지만, 국정감사 준비를 이유로 연락이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