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진제 대안 '계시별 요금제'…소비자·한전 모두 웃을까

정부-한전, 내년 전기료 개편 앞서 실증사업 착수

디지털경제입력 :2019/09/23 14:17    수정: 2019/09/24 07:23

정부가 현행 전기요금 누진제도의 대안으로 계절과 시간대에 따른 요금을 부과하는 '계시별 요금제' 도입을 추진한다.

소비자의 합리적인 전기 소비를 유도해 각 가정의 전기료 부담을 줄이고, 누진제 완화로 악화된 한국전력공사의 재정 부담도 줄이겠다는 취지다. 다만, 신요금제 도입으로 전기료 인상 논란 역시 이어질 전망이다.

23일 한전 등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상반기로 예고된 주택용 전기료 제도 개편에 앞서 주택용 계시별 요금제 실증사업에 본격 착수했다.

전력 계량기. (사진=한국전력)

계절·시간대별로 다른 전기료…'합리적 소비'에 방점

계시별 요금제는 각 가정에서 측정된 전력사용량을 바탕으로 계절과 시간대별로 분류해 전기료를 차등 부과하는 방식이다. 같은 양의 전기를 사용하더라도 주간과 야간, 계절에 따라 요금이 달라진다.

계절은 여름, 겨울, 봄·가을 등 3개로 분류되고 시간대는 전력 사용량에 따라 경부하, 중간부하, 최대부하로 나뉜다. 전력수요에 따라 비교적 저렴한 시간대에 맞춰 소비자 스스로 전기를 합리적으로 쓰도록 유도하겠다는 것.

그동안 국내에서는 100킬로와트(kW) 이상 산업용, 일반용 고압에만 부과됐지만 미국·영국·프랑스 등에서는 주택용 요금제에도 이를 적용하고 있다.

계시별 요금제. (자료=산업부)

계시별 요금제 도입을 위해서는 전력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스마트계량기(AMI) 보급이 필수적이다. 이번 실증사업을 통한 계시별 요금제 시범 적용 가구는 서울·경기·인천·대전 등 AMI가 보급된 아파트단지 2천48가구다.

한전과 정부는 AMI 보급 가구 중 시범사업 접수를 받았다고 밝혔지만, 아직 보급률은 미미한 수준이다. 정부는 당장 내년까지 전국 2천250만 가구에 AMI를 설치하겠다는 목표지만, 보급 속도가 빨라질 지도 미지수다.

정부는 지난 6월 발표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계시별 요금제 도입을 언급했다. AMI 보급에 박차를 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우선 준비가 되는 지역부터 단계적으로 새로운 요금제를 도입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국전력 서울지역사업소에서 직원들이 가정으로 배부될 전기요금 고지서를 분류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 "전기료 선택권 확대" vs "요금 인상 우려"

요금제 도입에도 찬반이 나뉜다. 신요금제 도입을 찬성하는 이들은 그동안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했던 누진제가 폐지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계량기 보급만 전제된다면 전기 수요 관리 측면에서 글로벌 추세인 계시별 요금제를 시행하는 게 맞다"며 "계절, 시간대별로 합리적으로 계산해 전기를 쓸 수 있어 소비 주체인 각 가정의 선택권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요금 인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요금제도를 개편하면 여름철과 겨울철 전력사용이 급증하는 소비패턴에 맞춰 가능한 많은 가구에 전기료 부담을 완화하는 누진제의 순기능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에 새로운 요금제를 도입하더라도 종전과 요금 총액에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새로운 전력 요금제 도입으로 한전의 재정부담이 줄어들 지도 주목된다. 정부가 내년까지 최대한 AMI 보급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이어서, 계시별 요금제가 도입되면 한전도 곧 수익구조를 공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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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전은 주택용 소비자의 시간대별 전기사용 변화 등을 살펴보고, 1인 가구 증가 등에 따른 다양한 수요를 반영한 요금제를 마련할 방침이다.

한전 관계자는 "계시별 요금제가 곧바로 전기료 인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에너지가 제값을 받는 방식으로 전반적 요금체계를 마련해야 지속가능 경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