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응해 발전업계도 설비 국산화 대열에 동참한다. 향후 제재 확대로 영향받을 수 있는 설비·부품 등 기자재 원산지 목록을 확보하고, 외화 절감까지 꾀하겠다는 목표다.
업계는 소재·부품 연구개발(R&D)과 피해기업 지원을 올해 핵심 업무로 추진하고, 신뢰성이 확인되지 않은 국산 부품에는 테스트베드(Test Bed·성능 실험 시스템)를 제공할 방침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중부발전·동서발전·서부발전·가스공사·지역난방공사 등 발전공기업은 일본이 한국을 '백색 국가(수출 우대국 명단)'에서 제외키로 한 2일부터 외산 설비·부품·기술 긴급 점검에 들어갔다.
이 업체들은 ▲백색 국가 제외로 인한 발전소 영향 ▲외국산 의존도 저하를 위한 발전 기자재 국산화 확대 방안 ▲발전 기자재(소재·부품) 국산화 R&D와 협력사 지원 방안 등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발전 분야는 핵심전략 물자 대상에 해당하지 않고, 일본산 부품도 대부분 국산화 또는 대체품으로 교체가 가능한 것으로 파악돼 피해는 제한적일 것"이라면서도 "분쟁이 장기화하고, 전 산업 분야로 확산할 것에 대비해 선제적 조치를 검토하고 유관산업 발전을 위한 역할을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부발전은 지난 5일 긴급 현안 점검 회의를 열고 수출제한 조치에 따른 대비태세 점검과 향후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회의에서는 일본 제재 영향권 내에 있는 기자재 파악과 추가적인 재고 확보, 공급처 다변화 방안 등이 논의됐다.
이 회사는 기술본부장을 위원장으로 한 일본 경제 제재 관련 대응 태스크포스(TF)를 상시로 운영키로 했다. TF는 앞으로 기자재 구매 동향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일본산 기자재 국산화에 집중할 예정이다.
같은 날 회의를 개최한 동서발전은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산·학·연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10개 R&D 과제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이 회사는 지난달 제주 YWCA에 건립된 태양광 발전 설비와 당진화력본부에 설치된 태양광발전소와 함께, 올해 말 준공을 앞둔 파주 영농형태양광 시범사업에 신형 국내산 모듈을 사용한다. 또 수출규제로 인한 재생에너지 업계 현장의 애로사항을 직접 듣고 대책 방안을 찾겠다는 계획이다.
서부발전은 발전사 최초로 국산화 관련 전담부서인 '국산화부'를 신설하는 등 오는 2030년까지 중장기 국산화 로드맵을 수립했다. 지난해 3월 취임한 김병숙 사장의 지휘 아래 외산 기자재의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발전사는 지난해 국내외 발전시장의 미래동향과 핵심부품 기술 추세, 국산화 현장 수요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6천500여 건의 국산화 품목을 선정했다. 희망 기업에 한해 설명회를 진행하고, 시제품을 실증할 수 있는 시험대를 지원하는 등 판로개척도 돕겠다는 취지다.
일본의 규제조치 발표에 앞서 설비 현황 점검을 진행한 가스공사의 경우, 수출 규제 품목에 해당하는 부품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현재 공사가 보유 중인 일본산 설비·부품에 대해서도 국산품 등 충분한 양의 대체재를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설비 국산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벌써 결실을 본 기업도 있다. 열병합발전소 가스터빈(MHPS) 소모품의 국산화를 추진해 900여개 품목 국산화를 달성한 지역난방공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난방공사는 2013년 가스터빈 부품 국산화 연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10개 중소기업이 참여해 11건의 외산 자재 국산화를 추진했다. 그 결과 약 73억원의 외화 절감과 70여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발생했다.
그동안 난방공사는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 GE, 독일 지멘스, 일본 MHPS 등 해외 업체로부터 관련 부품을 전량 수입해왔다. 해외로의 기술 종속과 국부 유출에 따른 기술 자립도 저하 문제가 꾸준히 지적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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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발전도 국산화 중장기 로드맵 수립 이후 현재까지 81건의 국산화 개발을 완료해 현장에 적용해 73억9천만원의 성과를 창출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규제 확대는 오히려 외산 설비·부품을 국산으로 탈바꿈하는 둘도 없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국산 설비와 부품을 중심으로 채용하고, 자립화에 시간이 소요되는 품목에 대해서는 기술개발을 아끼지 않고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