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은 요즘 '공공의 적'입니다. 유럽에선 특히 '반 구글 정서'가 강합니다.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공룡 기업들에게 디지털 주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합니다.
자국 데이터 활용에 여러 제약들을 두거나, 과징금이나 세금을 더욱 강력하게 부과하는 법안들이 발의되고 시행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이 지난 해 도입한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이 대표적입니다.
그런 와중에 우리 정부 기관 중 한 곳인 중소벤처기업부가 조금 색다른 행보를 보여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구글과 손을 잡고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와 글로벌 진출을 도와주는 지원 프로그램을 만든 겁니다.
이 프로그램은 60개 국내 스타트업을 선정해 사업에 필요한 자금과, 해외 진출을 위한 다리를 놓겠다는 구상입니다.
박영선 중기부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상생 협력'을 강조해 왔습니다. 특히 중소기업과 대기업간의 상생 협력을 통해 경쟁력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기조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협력 역시 특별할 것 없어 보입니다. 거대 플랫폼 사업자가 국내 스타트업들과 상생 협력하는 게 나쁠 건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대상이 구글이란 점입니다. 구글 등 유한회사들의 역외 탈세 논란은 국내에서도 뜨거운 이슈였습니다. 국내에서 막대한 돈을 벌어가면서도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습니다.
구글과 협력해 국내 스타트업들을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행보가 자연스럽지 않아 보이는 건 이 때문입니다.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는다고 비판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국내 스타트업들을 도와주니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말까지 합니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때문일까요? 박영선 장관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구글은 우리의 경쟁자이면서 협조자다. 구글과 이런 관계를 가져가야 한국과 미국 두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구글을 ‘잡아야할 호랑이’에 빗대 ‘협력’과 ‘경쟁’ 관계를 동시에 가져가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겁니다. 구글과 경쟁과 협조를 동시에 해야 양국에 도움이 되고, 국내 스타트업들이 발전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이어 박영선 장관은 “기술은 늘 도전에 의해 발전한다”며 “가장 무서운 건 독점이다. 구글, 아마존 등 전세계적 관점에서 보면 이들이 데이터 시장을 독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우리 회사들이 도전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상당히 이상적으로 들립니다. 세계를 향해 나가기 위해선 구글이란 '호랑이'의 등에 올라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래야만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호랑이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냥 두면 생태계를 완전히 지배해버립니다. 그럴 힘이 있을 뿐 아니라, 지배 욕구 역시 강력합니다.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많은 국가들이 구글을 비롯한 거대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강력한 규제 칼날을 들이대는 건 그런 우려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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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같은 독점기업을 잡기 위해 구글의 손을 잡았다는 박 장관의 말이 '허언'은 아닐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그 장담이 현실화되기 위해선 구글에 종속되지 않을 방안, 그리고 무엇보다 구글이 우리 경제에도 정당한 기여를 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래야만 구글 굴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겠다는 박 장관의 진정성이 무게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부분에 대한 제대로 된 고민이 없을 경우엔 토끼나 고양이조차 제대로 잡기 힘들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