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4일부터 반도체 핵심소재에 대한 개별수출 심사를 시작했다. 우리나라로 반도체 제조공정에 사용되는 감광액(포토레지스트), 불산(에칭가스) 등을 수출하는 일본 기업들은 이날부터 각 건마다 수출심사를 신청하고, 이에 대한 허가를 받아야한다.
수출심사는 최대 90일간의 심사 기간을 거치게 되며, 일본 정부는 심사 기간 이후 수출불가 판정을 통해 핵심소재에 대한 수출금지 조치도 내릴 수 있다.
■ 일본의 수출규제, 삼성·SK 반도체 사업에 미치는 영향은?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의 이번 수출규제로 인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받을 영향은 단기적으로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노광 공정에서 주로 사용하는 핵심소재(ArF, KrF)가 이번 수출규제에는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정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193nm 미만 파장의 빛에 최적화된 레지스트만 규제하기로 했는데 EUV(Extreme Ultra Violet)만 이 규제 대상에 한정된다”며 “ArF(불화아르곤) 빛의 파장은 193nm(nanometer)이고, KrF(불화크립톤) 파장은 248nm로 일본 정부의 조치는 국내 반도체 생산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현재 D램에서 주로 사용하는 레지스트는 ArF Immersion 노광장비용이고, 3D 나노(NAND) 공정에서 주로 사용하는 레지스트는 KrF 노광장비용이다. 둘 다 수출규제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EUV는 아직 양산에 대규모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다만, 일본의 수출규제가 장기화되고 일본 경제산업성이 수출규제 확대 및 수출금지 조치에 나설 경우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적지 않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제품 생산을 위한 주요 소재의 재고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단기간 내 생산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이번 사태가 장기화 될 경우, 일본 의존도가 높은 웨이퍼(반도체 원재료)와 블랭크 마스크(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필름)에 대한 추가 규제가 발표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웨이퍼는 일본이 세계 시장 점유율의 53%를 차지하고 있고, 블랭크는 일본 업체과 과점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곽민기 전자부품연구원 센터장도 “일본의 수출규제가 장기화되면 에칭 공정에 사용하는 고순도 불산의 수급량이 부족해 생산라인을 멈춰야하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며 “불산에 대한 수출금지에 나서게 되면 일본 기업들도 피해를 볼 수 있어 현실 가능성이 없다고 하지만, 일본 정부가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 대책마련 중인 삼성·SK “당장은 큰 문제 없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일본이 핵심소재에 대한 수출규제를 공식화한 지난 1일 곧바로 일본에 구매팀을 파견해 물량을 확보하거나 대만 등 인접 국가에 위치한 일본 업체를 방문해 소재공급 협의를 논의하는 등 빠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양사는 지난해부터 한일 관계가 과거사 문제로 악화되기 시작하자 올해 초부터 일본의 수출규제 가능성을 열어두고, 여러 대응책을 마련해왔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일본이 보복조치에 나설 수 있다고 판단해 올해 초부터 제3국을 통한 수급물량 확보나 국산 소재채용 확대 등의 방안을 모색해왔다”며 “당장은 핵심 소재에 대한 보유재고가 있어 문제가 없지만, 장기적 수출규제 가능성을 보고 여러 업체들과 물밑 접촉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일본 정부가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한국이 감광액과 불산의 최대 수입국인 만큼 일본 정부가 자국 기업이 피해를 보는 수출금지에 나서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오히려 이번 수출규제가 올 초부터 시작된 반도체 업황 둔화로 인한 재고문제와 가격하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내부에서는 일본의 수출규제가 메모리 반도체 가격상승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기회라고 보고, 가동률 조정에 신경을 쓰는 측면도 있다. 삼성전자만 반도체 재고규모가 10조원 이상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가격이 오르면 이득인 셈이다”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투자규모를 줄이고, 마이크론이 감산조치에 나선 상황에서 일본의 수출규제는 악재가 아닌 호재라고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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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증권업계 역시 비슷한 진단을 내놨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일본 소재 수출제재는 공급에 영향을 주는 제재로 삼성전자 메모리 제품 가격에는 오히려 긍정적”이라며 “한국이 메모리 사업을 과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의 제재가 이어질 경우, 메모리 가격 급등에 따른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점에서 제재가 장기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