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박영민 기자) 산업통상자원부가 11일 발표한 ESS 화재 원인은 크게 배터리 보호설비와 관리·제어체계의 부실, 설치상의 부주의 등으로 압축된다.
그런데 실증조사 과정에서 일부 배터리 결함이 확인됐고, 실제 발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나타났지만 이를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조사위의 입장이어서 그 이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민관합동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위원장 김정훈)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된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 결과' 발표를 통해 "배터리 생산 과정의 결함을 확인키 위한 해체분석을 실시한 결과, 1개 제조사의 일부 배터리 셀(Cell)에서 제조결함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 조사위 "배터리 셀 제품서 제조결함 발견"
조사위는 지난 2017년 8월부터 전국 23개 지역에서 발생한 ESS 화재 사고를 유형화하고, 지난 5개월간 현장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위 한 관계자는 "화재 원인에 대해 될 수 있는 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설비가 비슷한 시기에 생산된 배터리 제품을 사용한 것이 확인됐다. 이에 조사위는 사고 현장의 배터리와 해당 업체들의 제조시설에서 생산된 제품을 수거해 해체 작업을 진행했다.
해체 작업을 통해 조사위가 발견한 결함은 ▲음극판 접힘 ▲음극판 절단불량 ▲활물질 코팅불량 등으로, 모두 배터리 셀 자체의 제조 결함이었다.
조사위는 극판접힘과 절단불량 등 결함이 있는 셀을 자체적으로 제작해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는 시험을 180회 이상 수행했지만, 발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고 결론내렸다.
이어 "시험 결과, 전기 양단이 합선돼 과다 전류가 흐르는 현상인 '단락'이 발생하지 않았다"며 "물성 분석에서도 화재 발생 가능 요소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시험을 통해 배터리 외부에서 안전성을 확보하는 배터리 보호시스템에서 단락이 발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지었다고 조사위는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조사위는 배터리 내부 결함을 제외한 ▲전기적 충격에 대한 배터리 보호시스템 미흡 ▲운영환경 관리 미흡 ▲설치 부주의 ▲ESS 통합제어·보호체계 미흡 등 총 4가지를 화재 원인으로 규정했다.
또 4가지 화재 원인에 대해서는 제조·설치·운영관리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의 안전 대책이 제시됐다.
■ 배터리로 인한 화재 가능성 여전…불안한 업계
다만, 조사위는 이날 발표에서 배터리로 인한 화재 가능성을 전면적으로 부인하지는 않았다.
조사위는 "제조 결함이 있는 상황에서 배터리 충·방전 범위가 넓고, 만충 상태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경우 자체 내부단락으로 인한 화재 발생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에너지 업계는 배터리 결함이 확인됐음에도 이를 화재 원인으로 볼 수 없다는 조사위의 주장이 다소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한 태양광 연계 ESS 사업자는 "배터리 제조 결함이 있다는 게 사실이었고, 실제로 화재 발생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것인데 이를 방지하는 근본적인 대책에 대한 언급은 없어 아쉽다"며 "다시 공장을 가동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ESS 화재 사건으로 공장 가동을 무기한 중단한 또 다른 사업자는 "결함이 발견된 제품에 대해서도 제조사의 신뢰 추락을 우려한 듯 명확히 밝히지 않아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사업자들이 떠맡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함으로 인한 화재 가능성을 소비자가 나서서 막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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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위의 발표를 토대로 산업부는 ▲옥내 설치 시 용량 제한(600kWh) ▲안전장치 설치 의무화 ▲배터리 만충 후 추가 충전 금지 등 후속 안전 조치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ESS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사고 예방을 위한 책임을 배터리 제조사가 아닌 소비자들에게 전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화재 위험 요소로 지목한 조건들이 다소 모호하고 명확한 안전 기준도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며 "결국 사업자가 더욱 안전을 기해 ESS를 사용하라는 말로 들린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