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의 화웨이 봉쇄가 세계 IT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이 중간에서 난처한 상황에 처하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LG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표 IT기업은 미국 정부의 화웨이 제재 사태에 따른 영향 분석에 분주하다.
스마트폰, 통신장비 등 화웨이와 경쟁관계인 사업은 반사익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디스플레이 분야에선 제재에 참여할 경우 대형 고객을 잃을 우려가 있다. 여기에다 한국 기업에 대한 반발감으로 사업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16일 미국 상무부가 화웨이와 68개 계열사를 거래제한 대상 기업 목록에 올린 이후 이에 동참하는 기업들은 세계적으로 계속 확대되고 있다.
1차적으로 구글을 포함해 MS, 퀄컴 등에 이어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 회사(chip-designer)인 영국의 ARM이 화웨이와 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일본 파나소닉도 미국 수출관리 규정을 준수한다는 이유로 동참했다. 미국 정부는 한국을 포함해 독일, 대만 등 주요 국가 기업에 대해 '반(反) 화웨이' 전선에 합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화웨이 제재 사태에서 가장 복잡한 상황에 처한 기업은 삼성전자다.
스마트폰 시장에선 수혜가 예상된다. 세계 1위 휴대폰 제조업체의 지위를 지키고 있는 삼성전자는 2위 화웨이의 맹추격을 따돌리고 유럽과 미국 시장의 스마트폰 판매량을 늘릴 기회로 분석된다.
반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경우 고객사를 잃을 처지다. 삼성전자는 1분기 사업보고서에서 주요 매출처로 애플, AT&T, 도이치텔레콤, 화웨이, 버라이즌 등을 꼽으며 전체 매출의 14% 수준이라고 밝혔다.
5G 통신장비 사업의 경우 화웨이가 5G 장비 수출에 어려움을 겪게 되면 대체재로 자리매김할 기회다. 하지만, 통신사업자들이 5G 투자 자체를 지연시킬 공산이 커 마냥 호재로 보긴 어렵다.
삼성전자의 중국 매출은 지난해 전체 매출의 17.7%인 43조2천100억원에 달한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중국 의존도가 높아 이같은 상황이 달갑지 않다. SK하이닉스는 중국 반도체 시장 매출이 전체의 47%에 해당하는 3조1천600억원이다.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와 충칭에 생산라인을 운영중이고, 현지 자회사 13개를 보유하고 있다. 작년 우시에 파운드리 자회사인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를 현지 합작법인으로 설립하기도 했다.
LG전자는 스마트폰 사업에서 화웨이 중저가 시장을 획득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시장에서 매출은 크지 않다. 휴대폰,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의 중국 매출은 작년 전체의 3.9%인 2조3천694억원이었다. 문제는 중국 현지에서 운영중인 가전 생산라인이다.
국내 IT업계는 화웨이 제재 사태의 반사익을 얻기 위해 공세적으로 나설 경우 '제2의 사드 보복사태'로 번질 것을 우려한다. 미국 정부의 제재 속 민족주의가 중국 소비자 시장에서 강하게 자리잡을 경우 반한 감정을 부추겨 국내 기업 제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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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관계자는 "중국 시장은 한국 기업에게 그동안 큰 수출원이었기 때문에 화웨이 사태로 얻을 이익보다 손실이 크다"며 "미국 정부가 제재 동참을 한국 정부와 국내 기업에게 압박할 것으로 보여 대응하기 난처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이 문제가 비단 IT 업계의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에 향후 무역, 경제 영역에서 들여다 봐야 한다"며 "중국이냐, 미국이냐는 이분법적 사고로 판단하기 보다는 국익적 차원에서 좀더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