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업체들간의 치열한 전기자동차 배터리 기술력 경쟁이 결국 법적 다툼으로 비화했다. 중국 기업들이 어부지리를 거둘 판이다.
소를 제기한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수년간 자사 배터리 핵심 인력을 빼가며 '조직적인 위법행위'를 일삼았다고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은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하며 향후 법적 절차에 따라 정면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LG화학은 29일(현지시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미국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영업비밀(Trade Secrets) 침해'로 제소했다.
■ LG화학 "R&D·영업 등 전분야에서 76명 인력 유출돼"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소는 총 3건이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의 전지사업 미국 법인(SK Battery America) 소재지인 델라웨어 지방법원에 영업비밀침해금지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어 ITC엔 SK이노베이션의 셀·팩·샘플 등의 미국 내 수입을 전면적으로 금지해달라고 요청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침해한 영업비밀의 내용이 주로 핵심 인력과 기술 빼가기에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2017년부터 자사 전지사업본부의 연구개발(R&D)·생산·품질관리·구매·영업 등 전 분야에서 76명의 핵심인력을 빼갔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엔 LG화학이 글로벌 자동차 업체와 진행 중인 '차세대 전기차 프로젝트'의 핵심인력도 다수 포함됐다는 설명이다.
상황을 인지한 후 2017년 10월과 올해 4월 SK이노베이션 측에 두 차례의 공문을 발송했지만, 아직도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의 핵심 인력을 대상으로 추가적인 채용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는 게 LG화학의 주장이다.
LG화학은 "이 같은 자제요청에도 SK이노베이션이 핵심인력 채용과정에서 유출된 영업비밀 등을 2차전지 개발과 수주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뿐 아니라, 이러한 행위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해 법적 대응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 경력입사자 서류 통해 영업비밀 수집
LG화학의 주장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경력 입사 지원자들의 서류를 통해 LG화학의 주요 배터리 영업비밀을 수집해왔다. 문제가 된 SK이노베이션의 입사지원 서류에서 2차전지 양산 기술 및 핵심 공정기술 등이 매우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담겨 있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LG화학 관계자는 "입사지원 서류에 LG화학에서 수행한 상세한 업무 내역은 물론 프로젝트 리더, 프로젝트를 함께한 동료 전원의 실명도 기술하도록 돼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 회사에 따르면 한 직원의 입사지원 서류에는 전극 제조 공정 관련 프로젝트 내용이 당시 상황과 배경, 목적에서부터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개선 방안과 성과에 이르기까지 프로젝트 내용이 모두 기록됐다.
이를 위해 입사지원 인원들은 집단적으로 공모해 LG화학의 선행기술, 핵심 공정기술 등을 유출했고, 이직 전 회사 시스템에서 개인당 400여건에서 1천900여 건의 핵심기술 관련 문서를 다운로드 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주장이다.
또 LG화학은 "2016년 말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수주 잔고는 30GWh에 불과했다"면서 "올해 1분기 기준으로는 430GWh로 14배 이상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최근 3년간 양사의 R&D 투자 현황을 비교하며 자사 출신 경력자들이 유출한 영업비밀을 통해 SK이노베이션의 기술력이 향상됐다고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 SK이노베이션 "사실 무근"…정면 대응 시사
이날 오전 LG화학의 입장 발표 이후 SK이노베이션 측은 공식 입장문을 배포했다.
입장문에서 SK이노베이션은 "경력직원 채용은 당사자 의사에 따라 투명하게 진행됐다"며 "LG화학이 제기한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이 회사는 "SK 배터리 사업은 투명한 공개채용 방식을 통해 국내외로부터 경력직원을 채용해 오고 있다"며 "경력직으로의 이동은 당연히 처우 개선과 미래 발전 가능성 등을 고려한 이동 인력 당사자 의사에 따라 진행된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LG화학이 자사 인력이 대거 이직한 시점을 전후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수주 잔고가 대폭 늘었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한 점에 대해서도 "SK 배터리 사업은 글로벌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제품력을 기반으로 하여 투명하고 윈-윈(WIN-WIN)에 기반한 공정경쟁을 통해 영업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도 확실히 말씀드린다"며 "이는 자동차 산업 글로벌 리더들의 SK 배터리 선택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LG화학에서 제기한 이슈들을 명확하게 파악하여, 필요한 법적인 절차들을 통해 확실하게 소명해 나갈 것"이라며 "아울러 이와는 별개로 글로벌 톱(Top3) 배터리 기업이라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사업 본연의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SK이노베이션은 덧붙였다.
■ 전기차 배터리 선·후발주자 법적 공방 '예견된 수순'
양측의 소송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LG화학은 2017년 10월 한 차례 공문을 보낸 후 같은 해 12월에 SK이노베이션으로 전직한 직원 5명을 대상으로 대전지방법원에 전직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고, 소송은 3심까지 진행됐다. 대법원은 올해 1월 LG화학의 손을 들어주며 해당 직원들의 2년 전직을 금지했다.
한국이 아닌 미국 법원과 ITC를 통해 소송을 제기한 점도 이례적이다. LG화학은 "미국 ITC와 연방법원이 소송과정에 강력한 '증거개시(Discovery) 절차'를 둬 증거 은폐가 어렵고, 이를 위반 시 소송결과에도 큰 영향을 주는 제재로 이어지기 때문에 미국에 소를 제기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미국에서 제기한 이슈에 대해 기업의 정당한 영업활동에 대한 불필요한 문제 제기와 국내 이슈를 외국에서 제기함에 따른 국익 훼손 우려 등의 관점에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LG화학과 후발 주자인 SK이노베이션의 과열 경쟁은 업계에서 이미 예상됐던 것이다. 그러나 소송이 양측의 정면 대결을 넘어 장기화할 조짐도 있어 국내 배터리 업계의 경쟁력 하락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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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양사의 배터리 사업 시장 타깃과 방향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선발 주자와 후발 주자간의 다툼은 어느정도 예견됐던 것"이라면서 "기술유출 분쟁은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 나중에 탈이 없는 게 당연하지만, 중국 등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국내 업체간 분쟁이 길어진다면 양측 모두에 손해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양사의 소송전은 ITC가 5월 중 조사개시 결정을 내리면 내년 상반기에 예비판결, 하반기에 최종판결 순으로 진행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