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의 안전한 활용을 골자로 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가운데, 국가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데이터 경제 시대에 대한 대응을 더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는 전문가 지적이 나왔다.
특히 개인정보 수집과 활용을 명목으로 이뤄지는 형식적 동의 절차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돼, 실효성 있는 방법론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반면 이용자 후생 측면에서 개인정보 활용에 동의하지만, 기업들이 자율적 규제 등을 강화해 사용자들에게 내 데이터가 안전하게 쓰일 거라는 믿음을 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반론도 나왔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30일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 기로에 놓인 데이터 경제’란 주제로 제3차 굿인터넷클럽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상직 변호사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성균관대학교 김민호 교수, 한국소비자연맹 정지연 사무총장, 네이버 보안책임자 이진규 이사, 류준우 보맵 대표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 "개인정보보호 규제로 데이터 주권 위기" vs "개인정보 침해 피해 고려해야"
먼저 김민호 교수는 4차산업혁명 시대가 되면서 데이터 양과 의존도가 과거에 비해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국내 데이터 활용은 과도한 개인정보보호 규제 때문에 막혀있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이진규 이사 역시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부가 데이터 경제 시대 전환을 약속해 희망을 품었으나, 여전히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어 다시 우려가 커진다고 토로했다. 또 유럽연합이 적용하고 있는 정보보호규정(GDPR)이 강력한 개인정보 내용도 담고 있지만, 영내에서는 자유로운 데이터 흐름을 허용해주고 개인정보 활용의 지평을 넓혀준 것처럼 우리나라도 이 같은 흐름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류준우 대표는 데이터 주권을 글로벌 공룡 기업들에게 뺏기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미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이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사용자 맞춤형 서비스로 경쟁력을 키워가는 상황인데, 우리나라는 활용은 커녕 데이터 수집 단계에서부터 큰 어려움을 겪는다는 설명이었다.
반면 정지연 사무총장은 기술의 발전이 소비자 후생 증진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측면에서 동의하면서도, 현 정부가 과도하게 데이터 활용과 판매에만 신경 쓰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과거의 대규모 개인정보 침해 사태를 돌이켜봤을 때 개인정보 침해가 가져오는 피해와 문제점들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 "개인정보 동의 절차 새 방법론 필요해" vs "법적 한계 있는 만큼 동의 절차 유지돼야"
김민호 교수는 사실상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개인정보 동의 절차에 대해 새로운 방법론적 고민과 대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개인정보 활용에 있어 동의가 필요하다는 어떤 법적 근거가 없음에도, 형식적인 동의가 꼭 필요하냐는 의문을 던진 것이다.
김 교수는 “자기 정보 열람, 정정, 폐기 등의 절차를 만들고 기술적 안전 조치를 철저히 하자는 등의 논의와 완전히 별개로, 개인정보 활용에 있어 형식적 동의가, 단계별 동의가 과연 필요한가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정지연 사무총장은 개인정보 수집 및 활용 동의와 관련해 고민이 많다면서도, 현재 법적인 한계가 있는 만큼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정 사무총장은 “동의 만능주의 한계와 문제점은 다 인식한다. 사전 규제의 한계를 알고 있다”며 “그러나 개인정보 수집 및 활용에 대한 동의를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 한 현재 동의 절차가 유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업들의 신뢰 회복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정 사무총장은 “개인정보 이슈와 관련해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건 신뢰”라며 “개인정보 수집 및 활용에 있어 동의가 필요한 이유는 기업들이 목적을 넘어 개인정보를 활용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최소한의 안전 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업자 스스로 자율규제를 강화하고 여러 노력들을 선행함으로써 사용자들한테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역설했다.
■ "데이터 활용 제약 커...가슴에 돌 덩이 얹은 느낌"
네이버 이진규 이사는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해외 사례를 들어, 국내 동의 기준이 과도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가명 처리한 데이터의 경우 특히 더 활용 범위가 넓고, 상업적 목적을 포함한 과학적 연구에 한해 가명정보 활용을 허용해주는 것과 달리, 국내는 매우 좁게만 허용한다는 지적이었다.
이진규 이사는 “기업과 대학, 기업과 연구기관이 협력해 과학적 연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국내에서는 과학적 연구 목적의 범위를 순수한 학술 연구로 좁혀 생간한다”면서 “이럴 경우 과학적 연구 목적이 굉장히 좁혀지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데이터를 내부에서라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망분리 조건 등 여러 제약이 많고 활용 범위가 좁다 보니 보수적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며 “돌 덩이 하나가 가슴에 얹혀 있는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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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우 대표는 구태언 변호사가 쓴 ‘미래는 규제할 수 없다’는 책 본문을 인용해 “콘텐츠, 개인정보, 돈 등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우리나라가 정보 좀비 국가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면서 “우리나라는 법뮤다 삼각지대에 놓여있다. 정부가 보다 산업 경쟁력을 키운다는 측면에서 지원자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민호 교수는 “종이 데이터 시대, 2G 시대까지만 해도 데이터 산업이 걸음마 단계였고 사전 예방으로 품을 수 있었지만, 이제 데이터 산업은 성인이 돼서 (우리) 품을 떠났다”머 “사후 규제하는 방향으로 시각을 바꾸지 않으면 제조 산업이 기운 대한민국의 희망은 없다”고 단정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