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과학기술혁신체계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면, 올해는 국가 R&D혁신을 본격화하는데 집중할 것이다”
문미옥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 1차관은 지난 2월 ‘2019년 업무계획’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줄곧 추진해온 ‘혁신체계’의 기틀이 확보된 만큼, 이를 기반으로 올해부터는 본격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한 전략을 시행하겠다는 뜻이다,
‘사람 중심의 과학기술정책’을 강조하며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연구개발(R&D) 성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 범부처 조직을 출범하고, 청년과학자와 기초연구 지원을 위한 체계를 정비하는데 주력했다.
그 결과 정부는 지난해 4월 자문 기능과 심의기능을 통합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출범하고, 같은 해 10월에는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를 복원했다. 이와 함께 연구자의 행정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추진하고, 기초연구 투자를 늘리는 등 움직임을 이어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범부처 조직 기능 강화 및 기초연구 투자 확대 등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선순환적인 과학기술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방향성은 옳게 설정됐다는 설명이다.
다만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선 아쉬운 뒷맛도 남는다. 기능이 강화된 범부처 조직이 현장과 원활히 소통하지 못하면서 성급한 정책을 시행한다는 지적과 국가 R&D의 근본적인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한 채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최상위 자문-심의기구 ‘과학기술자문회의’ 닻 올리다
정부는 각 부처로 산발된 과학기술 분야 R&D 기능을 조정하기 위해 최상위 자문심의 기구인 과학기술자문회의를 정비했다. 국가과학기술 전략과 정책 방향에 대해 대통령에게 자문하는 기존의 ‘자문회의’에 주요 과기정책의 중기 계획과 예산을 심의 의결하는 ‘심의회의’를 통합한 형태다.
전문가들은 기능을 강화한 범부처 조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 과학기술 분야 R&D 기능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비롯해 산업부·중기부·교육부 등으로 나눠져 일관된 정책 방향성이 상실됐었다는 자성에 따른 목소리다.
서울대 이승복 뇌인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R&D 규모가 확대되면서 국가 과학기술에 대한 전체적인 방향과 세부 내용을 정하는 상위 거버넌스에 대한 요구가 있어왔다”며 “이런 측면에서 자문기능과 심의기능을 통합한 과학기술자문회의 출범은 반길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과학기술자문회의의 운영 측면에서 아쉬움도 토로한다. 현장 연구자와의 소통이 부족한 탓에,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부실하다는 지적이다.
이승복 교수는 “과학기술계 혁신을 위해 일선 연구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아우를 수 있는 공론화 과정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며 “자문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이 실질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는 측면이나, 전문성을 강화해야한다는 측면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설명했다.
■ 창의적인 연구 환경 조성…미래를 위한 ‘기초연구’ R&D 확대
정부는 연구자가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제도 개선도 추진했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연구비 이월 허용 ▲연구직접비에서 행정인력인건비 사용 허용 ▲종이 영수증 제출 전면 폐지 ▲연구를 주업으로 하는 청년연구자 근로계약 체결 등 제도를 정비했다.
전문가들은 연구자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 개선이 일선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 연구 성과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박상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행정과 관련된 규제는 과기정통부에서 연구자와 직접 일하면서 개선하려고 노력했고, 올 하반기에는 성과가 구체화될 것”이라 “행정적인 번거로움이 줄면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게 되고 성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시적인 규제가 많으면 이를 어기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이를 개선할 경우 부정적인 연구비 집행사례가 줄어들고 연구 건전성이 높아지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참여정부 이후 제자리걸음을 이어왔던 기초연구 투자는 문재인 정부 들어 대폭 늘어난 것 역시 긍정적이다. 연구계 내부에서는 ‘R&D를 경제성 측면에서 보던 시각에서 탈피한 것’이라며 반색하고 있다. 기초연구에 대한 꾸준한 투자가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미래를 위한 투자를 시작한 것이라는 평가다.
이승복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조급성이 있지만,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가 국가경쟁력에 기여한다는 것은 이미 증명됐다”며 “기초연구에서 과학적 성과가 나면 획기적인 기술로 이어지고, 경제적으로 최종적으로 기여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기초연구가 경제적 성과로 이어지는 주기가 긴만큼, 투자 측면에서 기초연구 확대를 바라봐야한다”고 말했다.
■ 예타 조사 제도 개선…R&D 빨라졌다
지난해 과기정통부가 기획재정부로부터 위탁받은 ‘연구개발사업 연구타당성조사(연구개발 예타)’에 따른 제도 개선의 성과는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위탁이후 연구개발 예타 소요 시간이 평균 6개월 내외로 단축됐다고 전했다. 기존에는 심사과정에서 문제를 수정하고 재심사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12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었다. 아울러 연구개발 예타에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초연구에 대한 경제적 타당성 평가 비중을 기존 최대 40%에서 10% 이하로 크게 줄이고, 연구개발 예타에서 탈락한 사업의 재도전을 허용하는 등 제도를 개선했다.
전문가들은 빨라진 연구개발 예타 속도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예타 속도가 빨라지면서 연구개발 사업의 착수가 늦어지고, 이로 인해 글로벌 추세와 여건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던 문제가 개선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예타에 모든 행정력이 집중돼 있는 것에 대한 지적도 내놓는다. 해외 선진국의 프로그램형으로 예타를 진행, 지속되는 사업이 매번 예타를 받지 않고 운영과정에서 관리가 이뤄지는 형태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매번 예타를 거쳐 사업이 진행돼야 하는 탓에 행정력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승복 교수는 “(R&D 예타를) 빠르게 진행하는 것도 좋지만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도 생각해야 한다”며 “R&D 예타를 통해 신속하게 변화를 추진해야 하는 사업과 일반적인 속도로 추진해도 되는 사업을 나눠 진행하면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B학점…준비는 끝났다, 문제는 성과
올해 정부 R&D 예산은 사상 처음으로 20조원을 넘어섰다. 과학기술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앞두고 과학기술 혁신에 정부가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과기정책에 대해 전문가들은 전체적인 방향이 옳게 가고 있다는 점에 동의했다. 혁신 성장할 수 있는 기본적인 틀을 갖춰야, 다음 정부에서도 과학기술이 흔들리지 않는 토대 아래서 무럭무럭 자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상욱 교수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행정과 관련된 규제는 과기정통부와 연구자가 직접 일하며 상당 부분 긍정적으로 개선됐다”며 “전체적인 방향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장 연구자가 제도 개선에 대한 효과를 체감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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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제도 개선 등을 통해 확보한 과학기술 혁신이 본격적인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산발적인 R&D에 대한 부처 간 공감대를 이끌어 내고, 현장에서 보고되는 부작용에 대한 피드백에 귀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승복 교수는 “제도개선이든 R&D 환경이든 시스템이든 변화하는 방향에 대해 공유하고, 합리성을 검증받은 다음 변화하는 것이 맞다”며 “논의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개선 방향이 제시됐을 때 정책에 투영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앞당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