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 SKT 사장의 경영 방식은 옳다

[이균성의 溫技] ‘전복적 사고’와 그 조건

방송/통신입력 :2019/04/11 15:22    수정: 2019/04/12 14:56

#전문경영인인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몇 가지 점에서 눈에 띈다. 그에 대해 남다르게 관심을 뒀던 계기는 그가 ‘전복적(顚覆的) 사고’에 능하다는 것을 알면서였다. 지난 2017년 11월의 일이다. 그때 느낌을 ‘SKT 경쟁사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란 칼럼으로 쓴 바 있다. 칼럼의 제목은 박 사장이 SK텔레콤 대표로 취임한 뒤 얼마 안 돼 주요 임원들과의 첫 만남에서 던진 질문이기도 하다.

#이 질문에 십중팔구 KT나 LG유플러스라고 대답할 것이다. 당연히 박 사장이 기대한 대답은 아니다. 그건 빵점짜리 답이다. ‘정지된 생각’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나오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도도한 물줄기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고민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역사가 중요한 건 암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보기 위해서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박 사장이 이 질문을 던진 까닭은 스스로 답을 제시하고 임직원한테 강요하기 위함이 아님을 알 것 같다. 중요한 건 지금까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KT나 LG유플러스는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기술 간의 급격한 융합 현상을 이론이 아니라 피부로 느낀다면 그건 너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당연한 일조차 ‘정지된 생각’으로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경영자로서 박 사장의 최대 성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것은 반도체 업체 SK하이닉스를 인수한 일이다. 당시에는 무심코 넘어갔으나 그가 오너를 설득해 이 큰 작업을 성사시켜낼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새삼스럽게 따져보게 된 계기도 이 ‘전복적 사고’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전복적 사고’는 사실 양날의 칼과 같아서 잘 못 쓰면 자신을 벨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한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

#양날의 칼인 ‘전복적 사고’가 박 사장 사례처럼 ‘폭탄’이 아니라 ‘활인검(活人劍)’으로 사용되게 하려면 그 전제조건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된 것도 이 즈음이다. 당시 내린 결론은 ‘미래에 대한 총체적 고민’이었다. 지금이 아닌 ‘내일’에 대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비전은 있을 수 없고, 그 비전에 확신을 가지려면, 그 고민은 총체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 스토리를 지금 다시 쓰는 이유는 박 사장의 최근 행보를 보면서 그 전제조건에 하나를 더 덧붙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사실 비전은 누구에게나 있다. 또 그 비전은 웬만큼 배운 사람이면 비슷하게 그릴 수 있다. 중요한 건 어떤 사람은 그 비전을 현실로 만들고 그 외에 많은 사람은 그 비전을 머릿속에만 둔다는 사실이다. 그걸 머리에서 꺼내 구현하는 게 비즈니스인 거다.

#박 사장의 최근 두 가지 행보에서 그에 대한 방법론을 깨닫게 됐다. ‘정직과 소통’이란 말로 압축하고 싶다. 비전을 현실로 만드는 건 당연히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이 ‘행위’를 해야만 비전은 현실이 된다. 중요한 건 ‘행위’다. 그 비전을 향해 사람이 ‘행위’하도록 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감’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려면? 그렇다. 비전을 놓고 ‘정직’하게 ‘소통’하는 수밖에 없다.

#정직과 소통은 흔한 말이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건 쉽지 않다. 박 사장이 그걸 하고 있다고 믿게 된 건 최근 주주총회와 11일 5G 대책 마련을 위해 긴급임원회의를 소집한 걸 보고나서다. 주주총회는 혁신이었다. 간단히 보고하고 의사봉을 두들기는 게 아니라 회사의 미래에 대해 주주와 진지하게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했다. 그게 형식이라도 좋다. 그런 자리라도 마련한 사람이 있었던가.

#그건 치열한 공부를 통해 비전에 대한 확신을 세우고 무엇도 숨길 게 없을 만큼 정직할 때라야만 가능한 소통 방식이다. 활인검으로서의 전복적인 사고는 그럴 때 빛을 발한다. 5G 긴급임원회의도 비슷한 사례다. 어떤 기술도 초기에는 오류가 불가피하다. 그래서 패치라는 게 있다. 그건 인정하고 말고도 없이 너무도 자명한 이치다. 이는 인간이 극복할 수도 없고 또한 숨길 수도 없는 일이다.

#박 사장이 긴급회의를 소집한 까닭은 회사가 그 자명한 걸 이해시키려 하지 않고 숨기려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수는 늘 그렇게 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 수준 낮은 ‘기업홍보’ 방식이다. 그러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된다. 박 사장은 그걸 ‘전복(顚覆)’시키고자 한 거다. 오류는 부끄러운 게 아니다. 오류는 불가피하고 빨리 고치면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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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에게 (속이려하지 말고) 잘 설명해 이해를 구하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은 거기서 나온다. 많은 경영자를 봐왔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혹시 박 사장이 이 글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부탁 한 가지를 하고 싶다. 기업인 혹은 경영인의 관점에서 인문학도의 쓰임새를 조금 더 고민해주기를 부탁드린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기술 우위 사회가 되겠지만 그럴수록 인문학도 중요하지 않겠는가.

#최태원 회장과 박정호 사장 모두 ‘사회적 기업’과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남달리 생각하기에 드리는 사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