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과학(SF) 영화에서처럼 3차원 공간 안에 아이디어를 늘어놓고 회의를 할 수 있는 증강현실(AR) 기술을 연구하는 스타트업 ‘스페이셜’. 이 회사의 이진하㉜ 공동창업자 겸 최고제품책임자(CPO)가 젊은 나이에 상상을 현실로 과감히 옮긴 창업 이야기를 털어놔 눈길을 끌었다.
이진하 CPO는 2일 성남시 정자동 네이버 본사에서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주최로 열린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행사에 연사로 나섰다.
스페이셜의 협업 플랫폼은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래스(MWC)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가 선보인 혼합현실(MR) 웨어러블 기기 ‘홀로렌즈2’의 활용 사례로 소개됐다. 당시 사티아 나델라 MS 대표가 스페이셜 솔루션을 구동하자 이진하 CPO와 이 회사 아난드 아가라왈라 대표(CEO)의 아바타가 등장해 참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이 CPO는 “3주 전 바르셀로나 MWC에서 사티아 나델라 CEO로부터 초청받아 스페이셜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데모를 하고 왔다”며 “당시 저는 무대 뒤 깜깜한 방에서 홀로 있었으며, 아바타는 사진 한 장만으로 머신러닝을 통해 구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지디넷코리아는 이 CPO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CPO는 한국에서 경기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도쿄대 전자공학과에 진학, 이후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미디어랩 과정을 밟았다. 미디어랩 프로그램을 마치기 전 스카웃 된 삼성전자에서 4년 반 동안 연구원으로 일하며 최연소 그룹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던 중 MIT 재학 시절 테드 강연에서 아가라왈라 대표를 만나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 아가라왈라 대표는 3차원 소프트웨어 ‘범프탑’을 창업해 구글에 매각했다.
이 CPO는 “머리를 맞대고 같이 생각해야 해결할 수 있는 과제를 컴퓨터 스크린으로 풀어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집단지성이 발휘될 때는 보통 컴퓨터 스크린 밖 면대면 상황이라는 게 흥미로워 이를 현실화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연을 굉장히 좋아하고 표현하고 만드는 것을 좋아해 이공계로 진학을 했고, 나루토 애니메이션을 좋아해 일본 도쿄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하게 됐다”면서 “과학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일적인 부분으로는 디자인, 예술적인 성향이 더 맞는 것을 깨달아 기술적인 백그라운드와 창조적인 생각을 융합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가 회사를 창업한 것은 2016년 11월경이다. 인재 영입 경쟁이 치열한 실리콘밸리보다 뉴욕에서 창업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해 이곳에 회사를 설립했다. 삼성 넥스트, MIT 미디어랩 소장, 아이노비아 등으로부터 투자받으며 그간 머릿속으로 생각해온 것들을 풀어냈다. 현재 12명의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이 CPO가 이날 발표에서 공개한 스페이셜 협업 솔루션의 데모 영상을 보면, 이전엔 평면 스크린 상에서 보이던 사람, 회의 자료들이 모두 공간에 구현됐다. 홀로렌즈는 앞이 막힌 고글로, 안쪽 프로젝터에서 사람 눈에 빛을 쏴 정보를 전달한다. 스페이셜 솔루션을 사용하면 고글을 착용한 사람이 건너편의 회의 참여자들과 논의 하는 게 가능하며, 모션 카메라와 융합해 모니터 뒤로 손을 휘저으며 디지털 정보를 조작할 수도 있다. 화가가 여러 가지 붓을 바꿔가며 사용하는 것처럼 논문과 차트, 그래프를 쉽게 불러들일 수 있다.
바비인형 회사로 유명한 마텔은 디자인에서부터 시제품 제작까지 일련의 과정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스페이셜의 솔루션을 사용 중이다. 장난감 하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컴퓨터 속 장난감 디자인이 3D 프린팅으로 시제품으로 만들어지고 소포로 각 부서 담당자에게 보내진다. 이들 담당자는 한 자리에 모여 시제품에 대한 문제점을 짚어낸다. 완제품을 만들 때까지 끝없이 수정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그런데 스페이셜의 솔루션을 이용해 화상 회의를 하면 한 자리에서 이 모든 일을 처리하는게 가능하다. 마텔사는 스페이셜 솔루션을 시범 사용해본 후 마음에 들어 유료 사용에 최종 계약을 맺었다.
그는 창업을 고려한다면 무엇보다 시장에 사업의 타이밍을 맞추려고 조바심을 내기 보단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깊게 생각해볼 것을 권했다.
이 CPO는 “처음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1을 써봤을 때가 3년 전인데, 다음버전이나 다다음버전에선 소비자가 아이폰을 쓰듯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뭔가가 나오겠다고 생각했다”면서 “AR 기술이 상용화 되려면 굉장히 오래 걸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저는 이용자 경험을 새로 써야겠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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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10대 땐 하고 싶은 일을 찾고, 20대 땐 하고 싶은 일을 잘한다고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면 지금 30대에는 그 잘하는 것으로 세상의 문제를 풀기위해 고민하는 시간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학문적으로 더 공부하지 않고 스타트업을 창업한 이유에 대해 "논문을 열심히 써도 사람들이 많이 안 읽는다는 생각을 했고, 몇십 년 후에 삶을 돌아봤을 때 내가 삶을 잘 살아냈다는 측면에서 논문이 쌓여가는 것은 크게 의미있는 일은 아니라고 봤다"며 "내 분야는 사람과 제품이 어떻게 상호작용 하느냐를 보는 것으로, 기술로 어떤 혜택을 받는지 봐야 직성이 풀렸다. 고생하는 과정이 굉장히 보람 있는 일인 거 같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