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아시아로 넘어간 전기차 배터리 주도권을 뺏기 위해 연구 인프라 강화에 나섰다. 원재료 확보부터 기술 연구, 제조, 재활용까지 배터리산업 전 분야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로드맵도 구축한다.
국내 업계는 EU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지만 유럽사업 위축 등의 영향은 한동안 없을 것이란 시각이다. 아직 구체적인 강화 방안이 나오지 않은 데다 기술력에서 차이가 큰 만큼 쫓아오기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다.
4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행정부 역할을 하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지난달 유럽의 전기차 배터리 산업 활성화를 위한 연구 플랫폼 '배터리 유럽(Batteries Europe)'과 연구 프로젝트 '배터리(The Battery) 2030+'를 출범했다.
1000만 유로(약 130억원)가 투입되는 배터리 유럽은 유럽 전역의 배터리 기술 연구와 혁신, 정보 공유를 촉진하는 것이 목표다. 유럽에너지연구연합(EERA)과 유럽에너지저장협회(EASE), 이노에너지(InnoEnergy) 등이 배터리 유럽을 주도한다.
배터리 유럽에는 유럽의 전기차 배터리 업계 관계자들이 모여 원재료 확보부터 배터리 셀 제조, 폐배터리 재활용까지 배터리 산업 전 분야에서 EU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를 위해 연구 의제와 로드맵을 개발하고 연구 커뮤니티 간 정보 공유도 지원한다.
대규모 연구 프로젝트인 배터리 2030+에는 유럽 배터리업계는 물론 과학자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5개 대학과 8개 연구센터, EASE, 에너지재료산업연구협회(EMIRI) 등이 컨소시엄 멤버로 들어간다.
EU의 연구기금 지원 프로젝트 '호라이즌(Horizon) 2020'의 지원을 받는 배터리 2030+는 이달부터 연말까지 향후 10년간 진행될 대규모 장기 연구사업의 기초를 마련할 예정이다. 연구사업 방향 중 하나는 새로운 배터리 소재를 개발하기 위한 인공지능(AI) 플랫폼 구축하는 것이다.
EU의 전기차 배터리산업 강화 움직임은 2017년 EC와 유럽투자은행(EIB), 업계 등이 협력해 'EU 배터리연합(EBA)'을 출범하면서 본격화됐다. EBA는 현재 EU 자동차 기업들이 일본과 한국, 중국 전기차 배터리 기업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EU 자체에서 지속가능한 배터리 생태계를 구축해 세계 전기차 산업을 주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는 2025년 이후 연간 최대 2천500억 유로(약 32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유럽 배터리 시장을 더 이상 아시아 기업들에게 빼앗길 수 없다는 것이다. EBA는 2025년 배터리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선 최소 10개에서 20개 수준의 기가팩토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가팩토리(gigafactory)는 기가(10억)급 규모 전기차 배터리 생산이 가능한 공장을 뜻한다. 테슬라가 2014년부터 오는 2020년 완공을 목표로 미국 네바다주에 짓고 있는 공장에 처음 붙여졌다.
EU의 움직임에도 국내 배터리 업계는 유럽 활동에 중단기적으로는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성능은 물론 안전성까지 확보한 전기차 배터리를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선 상당한 기술 개발 기간과 막대한 연구, 시설 투자금이 필요한 까닭이다.
실제로 테슬라 출신 임원 2명이 2015년 설립한 스웨덴의 배터리 제조사 노스볼트(Northvolt)가 ABB, 지멘스 등 기업의 지원을 받아 스웨덴과 폴란드에 배터리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지만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스웨덴 공장은 건설 투자금 40억 유로(약 5조1천199억원) 중 현재 16억 유로(약 2조480억원)만 확보된 상황이다. 폴란드 공장은 내년부터 배터리 생산에 들어가지면 생산 능력은 연간 125메가와트시(MWh)로 낮다.
결국 폭스바겐 그룹과 BMW, 아우디, 다임러, 르노, 볼보, 재규어랜드로버 등 유럽 완성차기업들은 현재 한국기업인 LG화학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으로부터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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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E리서치 관계자는 "유럽에서 자동차산업은 자존심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 자동차시장은 바이어 중심 시장이므로 유럽 전체가 배터리시장 구도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면서도 "전기차 배터리는 에너지저장장치(ESS)와 달리 사양도 높고 단기간 내 기술력을 따라오기 어렵다. 노스볼트도 앞서 한국과 일본에서 엔지니어들을 여럿 데려간 데다 글로벌 기업들로부터 지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파일럿 라인 구축이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 역시 "유럽에서 배터리산업 활성화를 위해 EBA 등 여러 조직을 꾸렸지만 국내사 기술력이나 양산 규모를 따라오려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며 "아직 활성화 방안도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은 만큼 국내사들의 유럽 활동에 중단기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