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재송신료(CPS)를 둘러싼 IPTV 사업자와 지상파 방송사 간 갈등의 불씨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옮겨붙었다.
협상에 난항을 겪던 지상파 방송사가 대뜸 IPTV 사업자의 OTT에 콘텐츠 공급 중단을 결정, 엉뚱한 OTT가 양측 협상에 볼모로 잡힌 꼴이 됐다. 그 사이 OTT 이용자들이 겪는 피해에 대해선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KT와 LG유플러스는 KBS·MBC·SBS 등 지상파 3사와 콘텐츠 제휴공급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IPTV 서비스와 각사의 OTT에 지상파 콘텐츠를 송출하기 위한 사전작업이다.
협상 분위기는 밝지 않다. LG유플러스는 연 단위로 체결했던 계약이 종료된 지난해 5월부터 월 단위로 협상을 이어갔지만,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협상 실패는 LG유플러스의 OTT인 ‘U+모바일tv’에 지상파 콘텐츠 공급 중단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당장 다음 달부터 U+모바일tv에선 지상파 콘텐츠를 시청할 수 없다.
협상을 진행 중인 KT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 KT관계자는 “(지상파 방송사와) 협상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인 상황을 밝힐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도 “경쟁사와 같이 당장 계약이 종료될 정도는 아니지만,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경쟁사와 달리 SK텔레콤은 지상파 방송사와의 CPS 갈등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다. SK텔레콤과 지상파 방송사 간 우호적인 관계가 배경으로 지목된다. 앞서 지난 1월 SK텔레콤은 미디어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가 보유한 OTT ‘옥수수’를 분사, 지상파 3사가 공동출자해 만든 OTT ‘푹’과 법인 통합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SK텔레콤과 지상파 방송사가 한배를 탄 셈이다.
일각에선 SK텥레콤과 지상파 방송사 간 특수 관계가 경쟁사에게 한층 가혹한 계약 조건을 내세우는 배경이 됐을 것이라는 추측도 내놓는다.
방송업계 관계자는 “SK텔레콤과의 탄탄한 유대감이 지상파 3사가 경쟁사인 KT와 LG유플러스에 한층 높은 가격으로 CPS를 정하는 등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하는 배경이 됐을 것”이라며 “안정적인 우군을 보유한 지상파 방송사 입장에선 손해 볼 게 없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 지상파가 'OTT'를 겨냥한 이유는?
5G 시대를 앞두고 이동통신 3사는 일제히 ‘미디어 플랫폼’을 핵심으로 내세웠다. 초고화질·대용량 미디어 콘텐츠를 앞세워 5G의 가치를 이용자들에게 알리겠다는 전략이다. 이통 3사의 미디어 플랫폼 전략 일선에는 ▲옥수수(SK브로드밴드) ▲올레tv모바일(KT) ▲U+모바일tv(LG유플러스) 등 OTT가 있다.
스마트폰으로 미디어를 소비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이용자의 데이터 사용량이 늘고 나아가 빠른 속도에 대한 니즈 역시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통사가 OTT에 거는 기대는 더욱 높아진다.
실제로 이통사는 자사 OTT의 몸집을 키우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LG유플러스는 올 초 ‘U+비디오포털’을 U+모바일tv로 개편하고 본격적인 서비스 확장을 꾀했다. KT는 가상현실(VR)과 5G 등 최신 기술을 OTT와 접목한 서비스를 내놨다. 이런 상황에서 맞닥뜨린 지상파 방송사의 OTT 콘텐츠 공급 중단 결정은 이통사 입장에서 적잖은 파장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또 다른 방송업계 관계자는 “U+모바일tv에 지상파 콘텐츠 송출 중단을 택한 판단은 지상파 방송사 입장에서 유효한 전략”이라며 “다만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은 아쉬운 일”이라고 전했다.
■ 볼모로 잡기 쉬운 ‘OTT'…정부의 정책 방향 필요
OTT에 대한 정부의 정책 방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료방송의 경우 방송이 송출되지 않는 ‘블랙아웃’을 피하기 위해 정부가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 하지만 방송법이나 IPTV법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OTT의 경우, 블랙아웃을 피하기 위한 어떤 대책도 마련돼 있지 않다.
미디어 산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 방향이 새롭게 설정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인숙 가천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LG유플러스의 U+모바일tv의 지상파 콘텐츠 송출 중단 역시 일종의 블랙아웃으로 볼 수 있다”며 “OTT에 대한 법적 공백을 틈타 사업자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종의 블랙아웃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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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교수는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비슷한 논란이 재현됐다는 점도 지적했다. 정 교수는 “플랫폼 사업자와 지상파 방송사 간 CPS 논쟁은 IPTV가 도입됐을 때도 등장했던 문제로, 법에 포함되지 않는 신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되풀이되고 있다”며 “기존 방송법이 신매체를 모두 품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OTT에 대한 문제를 개선하고 고민하기 위해선 정부가 미디어 산업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방향성 자체를 새롭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