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열린 CES 2019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바로 몇 년 만에 돌아온 인텔과 AMD의 프로세서 경쟁이다. 인텔은 올 연말 10nm 프로세서 출시를 공언했고 AMD는 7nm PC용 프로세서로 맞불을 놨다. 이들 두 기업이 PC의 두뇌인 프로세서를 둘러싸고 벌이는 경쟁은 항상 흥미롭지만 올해는 한층 더 흥미롭다.
관전 포인트는 10nm 프로세서 출시 지연과 CEO 부재, 스펙터·멜트다운 등 여러 문제를 안은 인텔의 향후 행보다. 사실 인텔이 프로세서 경쟁에서 AMD의 위협에 놓였던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클록 향상이 성능 향상’이라는 인텔의 기조에 적신호가 켜졌던 15년 전, 4GHz 펜티엄4 프로세서 테하스(Tejas) 이야기다.
당시 인텔은 테하스의 발열과 수율 문제를 끝내 극복하지 못한채 백지화했다. 반면 AMD는 2003년 64비트 명령어를 탑재한 엔터프라이즈용 프로세서인 옵테론, 또 가격 대비 성능에서 앞서는 애슬론XP 프로세서로 인텔의 허를 찔렀다.
4GHz의 벽을 넘지 못한 인텔은 이후 2년여의 암흑기를 겪는다. 급조한 듀얼코어 프로세서인 펜티엄D는 발열 탓에 '두 번 타는 보일러'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AMD의 짧은 영광은 2006년 막을 내린다. 이스라엘 하이파 연구소가 절치부심하고 만든 인텔 코어·코어2 듀오 프로세서가 등장하면서부터다. 당시 AMD코리아는 성능 비교 벤치마크에 필요한 프로세서 대여마저 거부할 정도로 난색을 표했다.
2011년 2세대 코어 프로세서가 등장할 때 AMD코리아 관계자는 "불도저(당시 AMD FX 프로세서의 코드네임)로 모래다리(샌디브리지, 2세대 코어 프로세서 개발명)를 허물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다.
이후 AMD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소니 플레이스테이션4, 마이크로소프트 X박스원 등 콘솔 게임기에 탑재되는 통합 프로세서와 라데온 그래픽칩셋으로 치열하게 버텼다.
그러나 AMD 역시 만만찮은 회사다. 디지털(이후 컴팩을 거쳐 HP에 합병) 알파 프로세서 기술을 접목한 애슬론 프로세서로 1999년 인텔보다 먼저 첫 1GHz의 고지에 올랐던 전적이 있다.
새 CEO인 리사 수가 취임하고, 그의 지휘 아래 2017년 등장한 라이젠 프로세서는 다시 AMD를 '인텔의 경쟁자'로 일으켜 세웠다. AMD는 마침내 올해 7nm 공정에서 생산된 3세대 라이젠 프로세서로 인텔을 따돌리겠다고 선언했다. 최근 '댓글 민심'만 보면 마치 전세는 AMD로 완전히 기운 것 같다. 그러나 인텔은 위기가 닥칠 때 전환과 혁신으로 이를 극복해 왔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주 생산 제품이던 메모리가 1980년대 말 한국·일본 기업의 도전에 직면하자 인텔은 마이크로프로세서로 방향을 돌렸다. 펜티엄 프로세서의 부동소수점 연산오류를 발견하자 인텔은 전면적인 리콜로 이를 타개했다.
인텔이 최근 1년간 영입한 인물들도 흥미롭다. AMD의 영광을 가져다 준 64비트 명령어 체계, AMD64를 설계한 입지전적 인물인 짐 켈러, 그리고 그래픽 전문가인 라자 쿠드리가 합류했다. 공교롭게도 이들 모두 AMD에 몸 담았다.
인텔이 지난 12월 '아키텍처 데이', 그리고 CES 2019에서 공개한 여러 기술과 로드맵은 예고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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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매년 6월 열리는 PC 업계 최대 규모의 전시회, 컴퓨텍스는 올 한해 인텔과 AMD의 경쟁 구도에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다.
이런 두 기업간의 경쟁은 결국 소비자에게 이득을 가져다 준다. 더 많은 코어를 품은 프로세서를 더 저렴한 가격에 쓸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이 시대만의 특권이다. 다시 PC 프로세서 경쟁의 시대가 오랜만에 다시 찾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