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샌드박스가 마련됐으니, 올해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이에 대한 활성화가 목표다.”
스타트업 대표 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하 코스포)의 최성진 대표는 지난 11일 지디넷코리아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얼마 전 국무회의 통과 후 본격 기틀을 잡아가는 중인 규제 샌드박스 제도에 대해 강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동시에 그는 코스포 차원에서 규제 샌드박스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어린이들을 위한 모래 놀이터에서 착안한 규제 샌드박스는 스타트업이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사전 인허가나 규제 없이 실험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규제 때문에 첫 발도 못 떼고 고사하는 스타트업을 위해 해외에서 이미 선도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해야 한다는 업계의 요구에서 비롯됐다.
정부와 국회,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 등은 작년 초부터 1년여 간 규제 샌드박스 입법을 위해 진통을 겪었다. 규제 샌드박스 관련 5개 법안(정보통신융합법·산업융합촉진법·지역특구법·금융혁신법·행정규제기본법)은 작년 3월 국회에 발의됐다. 행정규제기본법은 나머지 4대 패키지법에 담길 규제 특례 원칙과 기본방향을 담은 법안이다. 4대 패키지법이 먼저 국회를 통과해 순차 시행을 앞두고 있다.
최성진 대표는 “규제 샌드박스가 잘 정착되면 우리나라는 규제 혁신 속도가 빠르고 시장 친화적인 국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매년 세계경제포럼(WEF)은 매년 국가별로 경쟁력 보고서를 발표하는데, 우리나라는 디지털화 항목에서 15위를 기록했으나 정부 규제 관련 항목은 80위 바깥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차원에서는 규제 샌드박스 활성화를 목표로 정했다”면서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있더라도 운영하다보면 해결되지 않는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을 위해 규제 샌드박스는 하나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Q. 작년 한 해를 돌아봤을 때 스타트업 생태계가 얼마나 변화했다고 생각하나.
"일단 코스포 차원에서 말하자면, 코스포는 작년 사단법인으로 출범하면서 스타트업 대표 단체로서의 위상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작년 초까지 우리 포럼에 가입한 스타트업은 200개가 채 되지 않았는데, 작년말 기준으로 645개 회원사가 모여 3배 이상 늘었다. 양적인 면 외에도 정부부처, 국회 등 스타트업 생태계 내에서 코스포를 많이 인정해주고 있다. 밖에 나가면 국내 최대 스타트업 단체라고 얘기하고 다니는 것이 농담이 아니게 됐다. 아직까지 실제로 스타트업들에 도움이 될 규제 혁신의 성과는 부족했다. 혁신성장 옴부즈맨으로 임명된 김봉진 코스포 의장이 100여개 규제혁신 과제들을 발표하고 정부에 전달했는데 실제 개선된 건 10% 미만이어서 보완해야 할 점도 많다.
스타트업 생태계 측면에서 보면, 꼭 코스포 때문에 변화한 건 아니겠으나, 긍정적으로 가고 있다는 반응이 늘어난 것 같다. 실제 스타트업 벤처투자 금액도 작년 처음으로 3조원을 넘었고, 유니콘(기업가치 1조 이상)도 연말에 2개나 나왔다. 좀 더 진전된 건 사실인 것 같은데 그럼에도 작년 하반기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조사 때 창업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여전히 규제로 인한 어려움이 크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Q. 규제 혁신을 위한 올해 코스포의 계획은 무엇인가?
"코스포 차원에서는 올해 규제 샌드박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운영하다보면 해결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규제 혁신 속도가 굉장히 더뎠다. 소위 포지티브 규제 상황에서는 법이 열거한 것 외에는 못하게 하기 때문에 법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서 입법하는 것은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지난 정부, 지지난 정부에서도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한다는 말은 많았다. 이번 정부에서 규제 샌드박스가 통과됐다. 규제 샌드박스는 네거티브 규제 전환을 향한 하나의 과정으로, 정부가 국회를 통한 법 개정으로 얻어낸 것이다. 국회에서 이제 따로 법을 바꾸지 않아도 정부가 규제를 풀 수 있도록 개정됐다.
규제 샌드박스는 우리나라가 처음 시도한 것은 아니다. 영국, 싱가포르 등 10여개 국가에서 이미 시도하고 있고, 성과도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나라처럼 굉장히 광범위한 산업 분야에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한 것은 처음이다. 영국의 경우 핀테크 등 산업에만 특정해 패스트트랙을 밟을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규제 샌드박스 도입으로 우리나라의 규제 혁신 속도가 빨라지고 신화친화적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WEF에서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에 얼마나 대비돼 있느냐를 보는 디지털포메이션 부분에서 우리나라는 15위로 꽤 높은 성적을 거뒀다. 반면 정부 규제는 80위 바깥이었다. 그나마 2016~2017년에 120위권 정도였던 게 오른 것이다. 미국, 중국은 두 항목 모두 10위권에 올라있다."
Q. 기존 산업과 신산업이 규제를 두고 팽팽히 맞서는 영역이 바로 모빌리티 분야다. 카카오모빌리티의 카풀 서비스에 대해 택시업계가 반대하고 있다. 이 같은 갈등의 핵심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카풀 관련 모빌리티 기업들과 택시업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같은 갈등의 출발점은 2013년으로 돌아간다. 우버가 이때 국내에 들어왔고 서울에서 서비스를 했는데, 서울시는 불법 서비스 딱지를 붙였다. 많은 나라에선 우버 모델이 허용됐지만 우리나라에선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는 서비스였다. 그런 점이 시발점이 됐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는 바람에 택시 산업 자체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던 것이 합쳐져 왜곡됐다고 생각한다. 원래는 각각의 이슈인 성격이 강하다.
새로운 모빌리티 산업 영역에서는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들이 실험 중이다. 카카오가 하겠다는 카풀 중개 모델은 현행법상 허용된 매우 제한된 출퇴근 자가용 카풀에 해당한다. 상당부분 활성화 되더라도 택시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풀러스든, 카카오든 카풀이 잘 된다고 해도 제한된 서비스다. 그런데 택시 노동자들의 생존권 이슈와 맞물리면서 카풀을 허용하면 택시 산업이 죽는 것처럼 전개됐다. 카풀을 금지한다고 해서 택시 산업이 살아나진 않을 것이다. 택시 산업 종사자분들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전체 산업 경쟁력의 문제도 교통수단을 이용하든 국민들의 편의 문제와 맞물려있다. 좀 더 미래지향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데 지금 논의 자체가 잘못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Q. 카풀을 금지해도 택시 산업은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ICT 기술이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란 전문가들의 예견이 있는데.
"여태까지의 1~3 산업혁명을 돌이켜 보면 기술의 발전으로 일자리가 준 적이 없다는 게 역사적 통계다. 증기기관이 발명됐던 18세기 중반에서부터 이미 증명됐다. 노동위원회 연구원 통계에 다르면 기술이 발전하면서 일자리가 증가했다. 90년대 이후 정보화, 기계화, 공장자동화가 이뤄졌는데 이런 ICT 산업 발전에도 일자리는 꾸준히 늘어왔다. 작년 정부에서 매킨지를 통해 조사한 바에 따라서도 4차 산업혁명에 따라 인공지능(AI) 기술이 도입돼도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통계가 있다. 많은 직업이 없어지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일자리는 줄어드는 게 아니라 이동하는 것이다. 경제 중심의 축이 이동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디지털 경제라고 하는 디지털포메이션이 일어나서 기존 모든 산업 영역들이 해체하고 재구성 되며, 새로운 산업 영역이 디지털 경제 영역으로 편입되게 된다. 이런 부분에 대해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고 정부는 대안을 마련해야 국민들이 안심할 것이다."
Q. 자율주행차 시대가 멀지 않았다고 업계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우리나라가 맞닥뜨릴 시나리오는 어떠할까?
"우리나라에선 제도적으로 이미 뒤처지고 있다. 기술 발전 속도로 봤을 때 5~10년 이내에 자율주행차 시대가 올 것이라고 본다. 당장 내년에라도 제도만 마련되면 기술은 금방 따라잡게 된다. 우리나라는 준비할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고 보면 안 된다. 자율주행차 시대로 인해 산업적으로 굉장한 변화가 있을 텐데, 이에 대한 준비가 마련돼 있지 않다. 과거 한미 FTA를 체결하듯이 갑자기 생태계가 바뀌면 결국 준비 안 된 우리나라의 자율주행 업체, 택시 등 기타 모든 플레이어들이 도태될 수밖에 없다."
Q. 자율주행 기술에 대해 연구하는 기업으로 구글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구글로부터 세금도 제대로 걷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많은 서비스들이 글로벌화 됐으나 규제들은 특정 국가에만 적용된다. 과거엔 규제가 시장과 기업을 보호한다는 개념이었으나 이제는 시장이 이미 글로벌화 돼있기 때문에 특정 기업들에게만 규제를 부과하다간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역차별 문제가 특히 인터넷 영역에서 많이 발생했다. 사실 오히려 우리가 가진 규제를 좀더 글로벌 기준에 맞게 바꿔야할 것이다. 규제를 전 세계가 함께 맞추면 좋은데 현실적으로 그럴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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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 문제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기업들이 역차별 문제로 불만을 호소했던 것처럼 조세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지 못하면 자율주행차 시대에도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모든 산업은 소프트웨어 산업이 됐다. 자율주행차는 소프트웨어가 핵심이고, 하드웨어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올 수 있다. 자동차 산업도 인터넷처럼 소프트웨어 플랫폼 중심이 될 것이다. 소프트웨어 영역으로 가면 거대 해외 기업이 우리나라에 지사를 두지 않고 영업을 하면서 매출이 한국에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얘기할 수 있다. 이게 디지털 경제의 특성이다.
그런데 저는 그럴수록 글로벌 기업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국내 경제와 산업 생태계를 튼튼히 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기업에 많이 투자하도록 하고,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규제 불균형 문제나 글로벌 기업을 때려 잡자는 식으로 이뤄져서는 안되고 갈라파고스 규제를 빨리 해소해 어떻게 글로벌 수준에 발맞출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