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는 국정원의 도감청 문제가 뜨거운 이슈였습니다. 연일 언론에는 CDMA1x, 비화기술 등 평소 들어보지 못한 기술용어가 등장했죠.
시간이 흘러 2009년 말 KT가 아이폰을 도입한 이후 통신시장에는 와이파이(WiFi) 서비스가 중심축으로 올라섰습니다. 이어 ‘0000000000’으로 비밀번호가 셋팅된 AP(Access Point)와 유무선 모뎀의 보안문제가 불거졌죠.
스마트폰이 대중화 된 이후에는 프라이버시와 도감청 이슈로 안드로이드폰을 버리고 아이폰으로 옮겨가거나 텔레그램이란 인터넷 메신저의 열풍이 불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통신업계에서는 보안문제가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습니다. 하지만 최근 화웨이의 5G 보안이슈처럼 특정 장비업체나 단말 제조사의 문제로 부각되거나 지속된 적은 없습니다.
통신에서의 보안문제는 통신장비 뿐만 아니라 전송?네트워크장비, 기지국, 단말 등 여러 곳에서 발생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장비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높은 수준의 글로벌 보안인증을 통과해야만 통신사에 장비를 납품할 수 있기에 지속될 수도 없죠.
그렇다면 화웨이의 백도어 이슈가 계속 제기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 미중 간 패권경쟁의 화두가 된 5G
미중 간의 무역전쟁, 나아가서는 양국 간의 패권경쟁을 그 원인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특히 5G는 단순히 통신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물론, 글로벌 5G 시장 자체가 작은 것은 아닙니다. 시장조사기관인 IHS마킷에 따르면, 2020년까지 5G 통신장비 세계 시장은 약 110억 달러(12조2천억원), 2G?3G?4G를 포함하면 약 250억 달러(27조6천억원)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5G는 이 같은 숫자경쟁보다 과거 인터넷을 통한 정보화 혁명, 스마트폰 대중화에 따른 모바일 혁명보다도 훨씬 파괴력이 큰 기반 인프라가 될 것이란 게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입니다. 혹자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한 사회변화보다 더 많은 혁신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국내에서 5G를 향후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인프라로 꼽고 있는 것처럼, 많은 나라에서도 5G를 똑같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자율주행, 빅데이터 등 초연결 지능정보사회의 근간이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죠.
2006년 3G, 2011년 4G가 상용화되던 시기에는 이 같은 논란이 없었습니다. 3G는 이동통신의 디지털화, 4G는 유선에서의 속도를 이동통신에서도 구현할 수 있게 됐다는 정도의 의미였다면 5G는 사회?경제?생활?문화 혁명의 바탕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실험도시로 만들고 있는 세종시의 스마트시티가 5G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처럼요.
최근 미국과 첩보동맹을 맺고 있는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에 속한 캐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을 중심으로 화웨이에 대한 보안 우려가 계속 제기되는 이유도, 미국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미중 간 패권경쟁이 5G로 발현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여기에는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일본도 간접 영향권에 포함돼 있고, 뒤에 더 얘기하겠지만 우리나라도 자유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때문에 이 같은 언론보도에서 재미있는 사실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각 국가의 현지매체보다 미국 언론이 이 같은 사실을 중요 뉴스로 보도하고 국내에도 이 같은 외신들이 주로 전달된다는 것이죠.
■ 각국 보호무역주의도 한 몫
5G의 패권경쟁에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도 화웨이에 대해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최근 독일 등 유럽에서 화웨이 장비에 대한 ‘제외 검토’란 뉴스들이 나오는 게 대표적입니다.
현재 전 세계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은 화웨이, 에릭슨, 노키아, 삼성전자 순입니다. 삼성전자가 최근 LTE 장비 시장에서 선전하면서 최근 점유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며 4위로 올라섰죠.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화웨이에 집중되자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여 있는 유럽에서도 전통적인 통신장비 시장의 강자인 에릭슨과 노키아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죠. 과거 3G에서 4G로 진화를 하던 시기 한국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와이브로(모바일 와이맥스)를 4G의 대안으로 밀어붙였습니다. 하지만 유럽의 WCDMA 기술과 글로벌 표준경쟁에 밀려 실패했고 국내에서도 이번 달이면 와이브로 서비스를 종료합니다. 정부정책에 호응해 와이브로 전국망을 구축했던 통신사들만 손해를 봤죠.
한국은 세계 최초 5G 상용화 타이틀을 바탕으로 다시 한 번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선 경험을 바탕으로 통신장비에 각 분야별 솔루션을 묶어 플랫폼으로 세계 5G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것이죠.
사실 보안이란 명분이 붙긴 했지만 국내 이동통신 3사 중 LG유플러스 만이 화웨이 장비를 도입한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작용했습니다.
■ 패권경쟁에 뒷전으로 밀린 소비자 편익
미중 간 시작된 5G의 패권경쟁은 이처럼 세계 각국 간 이해관계까지 겹치면서 이것이 기술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일인지, 정치 이슈인지 모를 정도로 확전되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의 이동통신 3, 4위 기업인 T모바일과 스프린트는 합병을 논의 중입니다. T모바일의 모회사는 도이치텔레콤, 스프린트는 소프트뱅크입니다. 대표적인 규제 산업인 통신사업은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죠. 이 같은 사실이 최근 일본과 독일에서 화웨이 배제란 이슈가 불거진 것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화룡점정은 Five eyes에 속한 캐나다가 화웨이 창립자의 딸인 멍완저우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체포한 일이죠. 대이란의 제재 위반 행위가 체포 이유였지만 이 역시 미중 간 5G 패권경쟁이 그 원인으로 꼽힙니다.
반면, 화웨이 장비를 제외할 움직임을 보였다가 중국과 정치적으로 화해 무드에 들어간 인도는 방침을 180도 바꾸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정치이슈로 번진 과도한 5G 패권경쟁은 그 중심에 있어야 할 소비자들을 뒷전으로 밀어냈습니다.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는 5G에 어떤 나라의 어떤 기술이나 장비가 쓰이든 높은 품질의 서비스를 값싸게 이용하면 됩니다.
하지만 각국의 과도한 패권경쟁은 정상적이고 공정한 가격경쟁을 배제시키고 소비자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불편을 초래하거나 서비스 구축을 지연시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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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서비스 종료를 앞둔 와이브로처럼 말이죠. 또 비슷한 투자금액에도 LG유플러스가 5G 1차 기지국을 4천133개나 구축한 것과 달리 SK텔레콤이나 KT가 이보다 적은 각각 817개, 857개에 그친 것도 이러한 사실들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패권경쟁이든 기술경쟁이든 그 결론은 소비자 편익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