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블록체인 격물치지(格物致知)

서울시 블록체인 계획 기대반 우려반

전문가 칼럼입력 :2018/11/28 22:30

김숙희 솔리데오시스템즈 대표

블록체인은 세상을 지배해온 빅 브라더에 대한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가 처음 세상에 나온 2009년 1월은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기존 금융질서가 무너질 때다. 지금도 신원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사토시 나카모토는 2008년 11월 9쪽 분량의 비트코인 백서(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에 ‘금융기관을 통하지 않고 개인 간 온라인 직접 거래(P2P)’가 가능한 분산 컴퓨팅을 거론했다.

이 이론의 주된 이슈는 거래사실 증명과 신뢰에 대한 보장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것이 ‘분산원장’ 개념이고, 네트워크에 접속되어 있는 모든 참여자 각자가 거래사실을 증명하고 신뢰함으로 보안 문제를 해결한다.

이 기반을 통한 거래기록은 블록을 이루게 되고 블록들은 불가역적 해시 함수를 통해 암호화되어 연결된다. 결국 블록체인은 공개키와 개인키를 가지고 있으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고 블록에 담긴 기록의 진위는 참여자 과반의 합의를 통해 판가름된다.

진화하는 블록체인 기술...근본은 오래전 있던 기술

블록체인 기술은 계속 진화하고 있지만, 근본은 오래 전부터 있던 것들이다. 가령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합의방식은 1982년 ‘비잔틴 장군 문제’에서 유래했으며, 블록을 연결하는 해시 알고리즘은 1950년대 연결리스트(Linked List)기반 전산자료구조 방식에서 활용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블록체인의 80%는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기술 그 자체보다는 블록체인의 저변 사상과 그 진화과정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변화의 가능성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그려진 세상은 가히 디스토피아(dystopia)적이다. 빅 브라더의 상징인 국가는 기록을 조작하고 개인의 사생활을 감시하며 통제한다. 1980년부터 본격화된 정보화의 물결을 목도하며 새로운 가능성과 기대가 가득했던 만큼 일각에선 빅브라더 탄생을 우려했고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기도 했다.

농경사회를 거쳐 산업화사회까지는 일원화된 물질과 정보로 거래가 가능했다. 하지만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본격화된 물리공간과 가상공간의 이원적 사회구조는 경천동지(驚天動地)의 시너지를 내기 시작했다.

온오프라인 일원화 가능 수단이 블록체인

모든 거래가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 웹은 이를 가능케 했다. 그러나 이제 다시 물질과 정보가 일원화 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O2O)’ 즉 물리공간과 가상공간의 일원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 가능수단이 바로 블록체인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과 함께 블록체인이 제4차 산업혁명의 근간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화폐 개념에 기반 한 대금결제에서 계약증명으로, 나아가 거래증명으로까지 기능이 확장, 진화하면서 블록체인은 이제 모든 조직의 프로세스 혁신과 사회 전체의 도발적 변혁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 정부와 각 자치단체, 기업들은 다양한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이중 단연 눈길을 잡은 것은 지난 10월 3일 발표된 ‘블록체인 도시 서울 추진계획(2018~2022년)’이다.

서울시 블록체인에 대한 조언

서울시는 향후 5년간 1233억여 원을 투입해 집적단지 조성, 기업성장 지원, 전문인재 양성, MICE 산업 육성 등 14개 선도 서비스를 단계적으로 구현, 세계 최고 전자정부 도시를 넘어 서울시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서울시 청사진 자체는 완벽해보이고 서울시의 추진의지 역시 기대해볼 만하다. 그런데 성공을 기원하면서도 한편 무거운 마음이 드는 이유는 왜일까? 수십 년 간 공공 정보화 현장에서 직접 겪고 목격한 경험으로 짚어보고 싶은 몇 가지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총론으로, 블록체인이 빅브라더에 대한 도전적 발상임에도 불구하고, 빅브라더가 사업을 주도한다는 것이 무언가 맞지 않는다. 마중물 역할을 자처하는 것은 극히 바람직하나 블록체인이 추구하는 탈중앙화를 얼마나 수용할 용의가 있는지 의문이다.

둘째, 서울시 계획의 키워드만을 놓고 보면 지나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블록체인의 도발적 발상은 보이지 않는다.

각론으로 들어가 보자. ‘집적단지 조성’은 추측컨대 스위스 도시 주크(Zug)를 벤치마킹 한 것 같다. 그러나 주크가 ‘크립토밸리’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낮은 규제와 각종 세제혜택으로 금융 분야를 비롯한 각종 기업들이 모여든 결과이지, 처음부터 암호화폐 도시로 출발한 것이 아니다. 과거 창조경제센터처럼 시설만 만든다고 경제가 창조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업성장 지원’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정부 계획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과거 전자정부 사업에서 대기업 몇몇이 정부사업을 독과점하면서도 수출할 만한 전자정부 솔루션을 내놓지 못한 이유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진입장벽을 철폐하고 공정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량기업을 육성하는 지름길이다.

‘전문인재 양성’ 역시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아무리 소프트웨어 산업이 중요하다 해도, 정부가 나선다고 양질의 인력이 양성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소프트웨어 업종을 3D도 모자라 ‘Dreamless’가 추가된 4D 업종으로 인식하게 된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정책결정자들은 진지하게 따져봐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한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의 미래는 없다.

14개 선도 서비스 구로호 끝나서는 안돼

세계인들의 주목을 끌고 있는 한류 드라마, K팝, 골프 강국은 정부가 육성한 결과가 아니다. ‘민관협력 강화’는 우리나라가 민주화하면서, 그리고 협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위원회 형태로 조직화 되거나 대중의 의견을 묻는 크라우드 소싱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정부는 과연 쓴 소리, 다른 소리에 귀를 기울일 아량과 준비가 되어 있는가, 혹시라도 자신의 생각에 박수를 쳐주는 사람들로만 주변을 채우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14개 선도 서비스’를 단계적으로 구현해 세계 최고 전자정부 도시를 넘어 서울시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만들겠다는 구호도 심도 있는 분석이 필요하다. 선도 서비스로 제시한 과제들을 보면 모두 기존 레거시 시스템과의 관련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주민이 변화를 쉽게 체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블록체인 시범사업으로 적합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 정도 시범사업으로는 서울시가 표방한 ‘차별화한 경쟁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블록체인에 관심을 가진 국가들이라면 예외 없이 공통적으로 추진하는 것들이다. 투자 대비 효과측면에서 볼 때 모든 서비스를 블록체인화 할 수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의식주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에 집중해야

‘차별화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전자정부 세계 1위였던 국가답게 세계의 이목을 우리에게로 집중시키려면 문자 그대로 차별화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의식주 등 국민 생활에 가장 민감하게 다가오는 분야를 선택해 이에 집중할 것을 건의한다.

의식주를 순수 공공분야로 재해석하면 의(衣)는 생애관리, 식(食)은 농장에서 식탁까지, 주(住)는 건축 및 주택행정에 해당할 것이다. 굳이 이런 직관적 방식이 아니더라도 레거시 시스템에 축적되어 있는 공공행정데이터의 영역별 인접도 분석을 해보면 집중 공략 대상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전통적 이력 데이터와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를 연계하는 것을 차별화 요소로 제시하는 이유는 과거 정보화를 선도해왔던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극복해야 하는 난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블록체인의 잠재력은 고립된 ‘갈라파고스’가 되고 말 것이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는 기존의 레거시 시스템과 블록체인 간 연동을 위한 포킹(Forking)의 문제, 기존 데이터센터의 위상과 역할 재정립 등은 비단 기술적 문제뿐만 아니라 정책적 고려와 결단이 요구되는 과제다.

‘블록체인’이라는 요소기술과 시스템 통합(SI) 기술이 어떻게 협업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도 수반되어야 한다. SI는 정보시스템의 종합예술이기 때문이다. 초연결시대에 접어든 지금 사물인터넷이 쏟아내는 신호데이터(Sensor Data), 위치기반의 공간데이터(Spatial Data), SNS에서 유통되는 감성데이터(Social Data) 등 ‘3S’ 데이터의 편입문제도 블록체인의 잠재성을 확장하는데 결정적으로 요구되는 도전 과제다.

물론 제3세대 블록체인기술이 이를 일정 부분 수용한다고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그 연장선에서, 인터넷으로 들어가는 두 개의 문, 즉 현재의 웹과 미래의 블록체인이 어떻게 공존하며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이때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은 기술적 해결뿐만 아니라 사상과 의식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기술은 빨리 변해도 저변의 사상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우후준순처럼 나왔던 인터넷 기업(닷컴)들이 왜 일시에 몰락했는지, 그 와중에 살아남아 가상공간에서 빅브라더가 된 기업들은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또 한국 전자정부를 향한 세계인의 관심이 적어지고, 그 자리를 에스토니아 같이 이름 없는 나라가 부상한 이유도 살펴봐야 한다. 선진 사상이 우리나라 전자정부에 투영됐다면 여전히 세계인들은 우리로부터 배우려 했을 것이다. 제3국인들이 우리나라 전자정부에 공통적으로 궁금해 하는 점이 있다. 잘 마련된 시설과 성과 홍보는 가득한데 정작 어떤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고 해결했는지, 시스템 이면에 숨어 있는 사상은 무엇이었는지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규제샌드박스 도입할 때

기술과 사회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만약 한 쪽 바퀴가 다른 쪽 바퀴보다 크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수레는 결코 앞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다. 기술과 사회가 공진화하는 과정에서 예외 없이 직면하는 문제는 기술의 잠재적 가시성이 이를 수용하는 사회적 수용성에 비해 훨씬 빠르게 성장한다는 점이다. 블록체인과 같이 사회적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되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기대가 가파르게 상승할수록 그 기대에 대한 실망의 저점은 더욱 깊어진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골이 깊으면 물이 깊은 것처럼, 기대가 높으면 실망의 골이 깊고, 실망의 골이 깊을수록 우리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은 막대하다. 정책결정자들은 이점을 유념해야 한다. 기술과 사회의 공진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붐-버스트(Boom-Bust)’ 파장의 진폭을 낮추려면 사회의 수용성을 촉진하는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대안은 규제 샌드박스(Regulatory Sandbox) 도입이며 지금이 바로 그때다. 어린이들의 모래 놀이터처럼 규제에서 자유로운 환경을 조성, 각양각색 아이디어가 마음껏 펼쳐지게 해야 한다. 올해 1월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를 적극 도입하겠다고 공언했다. 역대 어떤 정부도 규제 개혁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 오히려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머리로만 알고 진정 그 심각성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한 결과다.

‘모든 것을 다 하려는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을 수도 있다.’ 미 연방 상원의원이며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배리 골드워터의 일갈이다. 정부가 모든 걸 다하려 개입하면 규제가 동원될 수밖에 없고, 규제가 많아지면 민간의 동력은 죽는다. 신기술을 접할 때마다 왜 미국은 ‘핸즈오프(Hands Off)’ 정책을 기조로 하는지 그 이유를 곰씹어야 한다.

성과는 선택이 좌우하며, 선택은 사상이 지배한다. 올바른 사상(가치관)은 격물치지(格物致知)로 비롯된다. 어떤 대상의 이치를 알아야 그에 대한 진정한 앎에 이르는 것이다. 그래서 격물과 치지는 평천하(平天下)에 이르는 첫 단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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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럽게도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 바로 잡히지 않고(格物) 피상적 치지(致知)만 반복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것이 바로 기동된 무지(Activated Knowledge)다. 구두 만드는 기술에만 몰입할 것이 아니라 구두는 무엇을 위한 물건인가부터 물어야 한다. 발의 이치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구두의 신 개념이 나올 수 없다.

김숙희 솔리데오시스템즈 대표.

어느 집 벽에 붙어 있는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온다고 해서 그걸 우리 집 벽에 붙인다고 물이 나올까? 이면의 원리를 고민해야 한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