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기술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보안성, 신뢰성, 투명성, 확장성 등 블록체인 기술이 품고 있는 특성을 곱씹어 볼 수록 산업은 물론 사회 전체에 미칠 파급력이 상상 이상일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전 세계 IT기업들은 새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하겠다는 생각으로 블록체인에 뛰어들고 있다. 치열한 주도권 싸움이 예상된다. 한국 IT는 과연 블록체인이 가져올 변화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국내 IT기업 주요 경영진(C레벨) 중 블록체인 분야에 가장 전문성을 가진 인물로 꼽히는 SK텔레콤 블록체인사업개발유닛장 오세현 전무는 이런 물음에 "블록체인은 한국이 세계 IT 시장을 선도할 드문 기회"라는 긍정론을 펼치고 있다.
오 전무는 2016년 7월 SK C&C에서 처음 블록체인을 심도있게 들여다 본 후, 파괴적 혁신을 가져올 기술임을 직감하고 깊이 빠져들었다. 오 전무는 한국블록체인오픈포럼을 만들어 초대 의장 역임하고, <블록체인노믹스>라는 책을 공동 저술(오세현·김종승)하기도 했다. 현재는 SK텔레콤에서 블록체인사업개발유닛을 이끌며 관련 신사업을 발굴, 개발하고 있다. 오는 6월 서비스 론칭이 목표다.
최근 오 전무를 만나 '블록체인 기술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지, 한국은 이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Q.블록체인을 한국이 선도할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2009년 클라우드가 처음 등장했을 때, 클라우드만이 살길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클라우드가 (전 세계 데이터 센터를 둔) 아마존 클라우드를 이길 수 있겠는가? 못 이긴다.
AI도 어렵다고 본다. 언어의 장벽 때문이다. AI 머신을 만든다 해도, 딥러닝을 시키려면 데이터가 필요한데 접근할 수 있는 데이터 양에서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 중국어나 영어로 만들어지는 데이터의 양과 행동 패턴을 따라잡기 어렵다.
그럼 빅데이터는 될까? 우리나라는 기록하는 문화가 없다. 기록을 한다는 것은 표준화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가 쌓여 있다고 하는데, 데이터 형식이 다 달라서 쓸 수 없다.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하고 데이터를 모은 게 아니라, 그냥 그때 그때 필요한 데이터만 모아서 그렇다. 사업을 하려면 다시 모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게 현실이다.
블록체인은 언어의 장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존에 쌓여 있어야 할 데이터가 필요한 분야도 아니다. '비즈니스 모델을 누가 어떻게 만드냐'의 문제다. 우리나라는 (추진) 속도가 빠르고 개발 인력도 있다. 일단 기본 조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블록체인은 이제 막 전 세계가 같이 시작했다. 물론 비트코인은 2008년에 나왔지만 그간 발전은 미미했다. 지난해 전 세계가 뜨겁게 같이 움직였다. 출발을 같이 한 것이다.
AI, 빅데이터는 미국 등 선도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요인이 경쟁력에 영향을 줬다. 블록체인은 이런 게 없다는 얘기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 세계 IT 경쟁은 이런 상황이었다. 나는 중1 때 영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하는데, 해외 유학가서 영어를 다 배우고 온 애들과 경쟁하는 셈이었다. 그런데 블록체인은 갑자기 모두가 그리스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Q.기회를 살려서, 한국이 전 세계 블록체인 기술 선도 국가가 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나
"지금 기업들은 블록체인으로 성공한 사례를 가져오면 고민해 보겠다는 식으로 접근한다. 유통업체면 월마트에서 성공한 사례를 가져와 보라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블록체인을 적용해서 대박이 난 사례가 없는데 자꾸 해외 성공사례를 가져오라는 문화가 걸림돌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느냐 보면, 무사안일주의 때문이다. 기업 임원들이 자기 자리 보전하는데 급급하다. 자기 임기 2~3년 안에 결과가 나와야 한다. 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다.
블록체인은 도전적으로 치고 나갈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60년대 정주영 회장의 '하면된다', '해야만 한다' 정신이 지금 블록체인에 필요하다고 본다."
Q.좀 더 구체적인 조언을 해준다면
"각 영역에서 블록체인을 가지고 자기 산업이 어떻게 바뀔지 봐야한다.
외국 블록체인 컨퍼런스에 가보면, 변호사가 정말 많이 온다. 'IT컨퍼런스가 맞나' 생각 들 정도다. 블록체인에 스마트 컨트랙트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 것을 프로그래밍화 하려면 법을 알아야 한다. 법의 해석을 알아야 프로그래밍화 할 수 있다. 이런 역할이 있어 변호사들이 몰린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변호사들이 규제 문제만 들여다 보고있다. '블록체인이라는 특징을 이해해서 서비스에 녹여내는 데 법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는 없다. 호주, 싱가포르 보면 암호화폐 공개(ICO)할 때 법조인들이 상당히 많이 붙는다. 근데 우리나라는 그런 시장 자체가 없다.
변호사, 회계사, 기자, 컨설턴트는 물론 감사, 자문, 품질보증, 은행, 결제에 관련된 모든 사람이 블록체인에 엮여 있고 역할에 변화가 올 것이다."
Q.블록체인으로 가장 먼서 혁신할 산업은 어디라고 보나.
"산업군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하는 사람이 중요하다.
MP3는 우리나라의 '새한미디어'가 제일 처음 만들었다. 그 다음에 아이리버가 나왔다. 아이리버는 세계 시장점유율 70%까지 차지했지만, 애플 아이팟 나오고 모든 것이 달라졌다. 아이리버와 아이팟은 기능상으로 똑같다. 단지 아이팟의 디자인이 좋았고, 아이튠즈라는 플랫폼이 더해졌다.
블록체인도 마찬가지다. 이 기술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누가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달라질 것이다. 블록체인을 이용한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 분야에 도전하는 모수가 많으면 그 중에 성공할 사람이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
Q. 그런 점에서 암호화폐 열풍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그러면에서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은 도움이 된다고 본다. 단, 이런 관심을 선순환 구조로 만들어 주는 정부의 역할이 좀 부족한 것 같다.
스위스는 주크를 '크립토 밸리'로 키웠다. 지금 나와있는 코인이 1500개인데 전 세계 50%이상이 주크에서 ICO를 했다. 700개 회사가 주크에 생긴 것이다. 주크에 한 회사를 차리려면 자국인 3명을 뽑아야 한다. 700개 기업이 3명씩 2100명을 채용했다는 얘기다. 또 기업이 생기면 세금도 걷고, 건물도 임대하고, 변호사와 은행 같은 서비스도 쓰게 된다.
이런 생태계가 형성되면 관심이 암호화폐뿐 아니라 블록체인으로 확장될 것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청년 22.7%가 투자경험이 있다는데, 투자만 하겠는가."
Q. 블록체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16년 7월 SK C&C에 들어와서 당시 박정호 사장에게 블록체인 기술을 검토해 보고하라는 주문을 받았다. 살펴보면서 '헉'하고 놀랐다. 나는 'SK그룹 전체에 적용해야 할 굉장히 큰 기술이고 앞으로 문화, 사회 모두 바꿀 것'이라고 보고했다.
나한테 가장 크게 다가온 부분은 블록체인이 가지고 있는 확장성이다.
옛날엔 4개 조직이 협업을 하려고 하면 각각 조건을 맞춰서 물리적으로 통합해야 했다. 블록체인에선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예컨대 신세계, CJ, SK, KT 이렇게 기존 시스템(레거시)을 두고 필요한 컴포넌트만 꺼내서 (블록체인) 네트워크로 묶으면 된다. 처음에 이렇게 4개만 묶었는데, 갑자기 롯데도 같이 하고 싶다면? 옛날 같으면 다시 헤쳐 모아야 했다. 블록체인에선 그냥 들어오면 된다.
블록체인은 네트워크 효과를 제공한다. 이것이 얼마나 큰 파워인지는 블록체인을 몰라도 알 수 있다.
애플은 앱스토어를 만들어 놓고 그 위에 모든 앱을 꽂게 했다. 그게 세상을 한번 뒤집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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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은 그것보다 더 놀랍다. 애플과 구글을 통합할 수 있게 해준다. '헉'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블록체인이 확장성으로 모든 SW구조를 다 바꿀 것으로 봤다. 확장성에 대한 확신은 여전히 유효하고 텔레콤에서도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6월에 발표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