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통합(SI) 사업을 빼면 국내 블록체인 기업이 합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이 거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블록체인 기술은 진흥한다면서 암호화폐는 죄악시 하는 정부 프레임 때문이다. 이에 블록체인 산업이 SI 사업모델의 고질적인 병폐를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송희경 의원(자유한국당)은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블록체인 관련 입법안에 블록체인 엔지니어들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한 정책 간담회인 '블록체인 테크니션 얼라이언스 오픈토크'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개발자를 포함해 블록체인 업계 종사자 3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암호화폐와 암호화폐공개(ICO)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규정이 없어 블록체인 기업들이 사업 추진에 차질을 겪고 있다고 한 목소리로 호소했다.
다이코(DICO) 플랫폼 개발업체 프레스토의 강경원 대표는 "정부에서 암호화폐를 무조건 나쁜 것으로 취급하니까 사업하기 너무 어렵다"며 "언젠가 규제가 생기면 지금 개발한 것을 아예 못쓰게 되거나 새로 개발하게 될까 봐 걱정이다"고 말했다. 다이코는 ICO를 위한 탈중앙화된 분산 조직을 말한다. 현재 ICO는 모인 자금이 프로젝트 팀에 바로 가지만, 다이코는 투자자가 언제 어떻게 지급할지 시스템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암호화폐와 관련된 사업을 하는 경우 투자전문 기관에서 자금을 유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디에스자산운용 현상균 상무는 "제도적인 규정이 아예 없기 때문에 (투자한 업체가) 규제에 걸리게 되면 투자했던 것이 다 매몰비용이 된다"며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민간에서 투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암호화폐에 대한 정부의 부정적인 프레임을 피해가려면, 결국 SI식 구축사업 밖에 할 게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블록체인 스타트업 오딘의 남현우 대표는 "암호화폐가 있었으니까 전세계에서 반향을 일으킨 것이지 블록체인에서 암호화폐를 떼면 원래 패키지 소프트웨어(SW)와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또 "암호화폐를 빼면 (블록체인 기업들이) 정부에 가서 SI사업을 해야 한다"며 "정부에 가서 SI사업 3년만 해보면 징그러워서 못하겠다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SI 사업 모델이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가 블록체인 업계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엿보인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조재우 카이스트 4차산업혁명 지능정보센터 연구원(스팀잇 증인)도 "정부 블록체인 예산이 5천억이라 해도 사업기간이 7년이나 되고 원천기술 개발에 쓰는 1천억원을 빼면 나머지는 각종 시범사업에 쪼개준다"며 "1년에 5천억을 쏟아부어도 모자른 상황에 SI성 시범사업만 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송 의원은 "우리나라는 파일롯(시범사업) 공화국이다. 수조원씩 쓰고도 문서 밖에 남는 게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블록체인이 (SW산업 전반이 겪고 있는 문제와) 똑같은 모습으로 가고 있어 안타깝다"며 "기초가 되는 핵심 기술 없다면 월화수목금금금이 되고 (개발자들은) 꿈이 없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프라이빗 블록체인 영역에서 국내 기업들이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성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글로스퍼 김보규 사업본부장은 "정부지원에 대해 안좋은 시선도 있지만 알리바바를 보면 중국 공산당 지원 아래 큰 회사가 됐다"며 "글로스퍼뿐 아니라 세계로 뻗어나가려는 블록체인 기업에 대해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모든 분야에 블록체인 적용하려 하면 안 돼"2018.11.28
- 중국 블록체인산업 냉각...'동절기' 도래2018.11.28
- "암호화폐 가격급락, 블록체인에 대한 경고"2018.11.28
- 블록체인 스타트업 테라, 1천억 펀딩 주목2018.11.28
이어 "그동안 SW 분야에서 한국 기업이 오라클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과 대적하기 어려웠지만 블록체인 산업에선 해외 유명 SW와 비교해 우리 것이 기능이 떨어지거나 경쟁력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솔루션을 기업과 공공에 제공할 수 있고 이런 레퍼런스가 쌓이면 해외에서도 잘 필릴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송 의원도 "블록체인이 프라이빗 영역으로 확산될 때 우리 플랫폼은 없으면 한국은 수입국 밖에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