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5회 1사까지 무실점 호투. 하지만 주자 2, 3루 상태에서 강판. 페드로 바에즈가 올라오지만 JD마르티네즈에게 안타를 맞으면서 2실점.”
B: “5회 2사까지 1실점 호투. 2사 주자 만루에서 강판. 이어 던진 투수가 볼넷으로 1실점. 이어서 JD마르티네즈에게 2타점 적시타를 또 맞다.”
A는 경기전 예상입니다. 그리고 B는 실제 경기 상황입니다. 제법 비슷하지 않나요? 두 시나리오의 주인공은 LA다저스 선발 투수 류현진 선수입니다.
류현진 선수는 24일(현지시간) 펜웨이파크에서 열린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 LA다저스 선발 투수로 출장했습니다. ‘코리안 몬스터’가 메이저리그 최강팀을 상대로 어떤 기록을 남길 지 꽤 궁금했습니다.
경기 전 흥미로운 기사를 봤습니다. 스트랫 오 메틱(Strat O Matic)이 선수들의 기록을 토대로 1만회 가량 시뮬레이션 한 결과 류현진 선수가 5회 1사까지 호투하다가 물러난다는 예상이 나왔다는 기사입니다.
스트랫 오 메틱은 판타지 스포츠로 유명한 업체죠. 각종 기록을 토대로 선수들의 성적을 예측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업체입니다.
■ 생각보다 정확했던 예측, 과연 우연일까
그런데 실제 경기 상황이 너무나 유사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날 류현진 선수는 5회 2사 상황에서 물러났습니다. 뒤이어 등판한 투수가 JD 마르니테즈에게 2타점 역전 적시타를 맞는 것도 똑 같았구요.
그 뿐 아닙니다. 스트랫 오 메틱은 LA다저스가 맷 캠프의 내야 땅볼로 첫 타점을 올리는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LA다저스에 첫 점수를 안겨준 선수는 맷 캠프였습니다. 4회 노아웃 만루 상황에서 외야 희생 플라이를 쳤습니다. 이후 야시엘 푸이그가 중전 안타로 2루 주자를 불러들이면서 2대 1 역전에 성공했구요.
스트랫 오 메틱은 1차전도 비교적 정확하게 맞췄습니다. 보스턴이 6대 0으로 승리할 것으로 예상했지요. LA 다저스 선발 투수 클레이튼 커쇼는 2이닝 4실점으로 물러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실제론 4이닝 5실점이었습니다.
물론 틀린 부분도 있습니다. 스트랫 오 메틱은 1차전 때 보스턴 선발 투수 크리스 세일이 눈부신 호투를 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첫 다섯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기세를 올린 끝에 탈삼진 19개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 세일 역시 4이닝을 겨우 채우고 물러났습니다.
요즘을 빅데이터 시대라고 합니다. 데이터가 경쟁력의 원천인 시대죠.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인 인공지능(AI) 역시 마지막 승부는 ‘데이터’에서 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전망입니다. 중국의 약진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야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클랜드 팀을 소재로 한 영화 ‘머니볼’ 이후 웬만한 야구팬들은 세이브 메트릭스란 말을 익숙하게 받아들입니다. 아이비리그 MBA 출신의 똑똑한 젊은이들이 메이저리그 팀들의 단장에 취임하는 것도 자연스런 풍경이 됐습니다.
빅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선수들도 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한 수비 시프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데이터 및 통계 전문 전문가와 야구 인력들이 공존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보스턴, 시카고 두 팀에서 밤비노의 저주와 염소의 저주를 끊어낸 테오 엡스타인이 21세기 야구판의 새로운 인재상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제가 스트랫 오 메틱의 류현진 선수 경기 결과 예측에 유독 관심을 가진 건 이런 시대 변화 때문입니다. AI와 빅데이터로 대표되는 차세대 기술들이 전통 영역에서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있는 상황말입니다.
물론 전 스트랫 오 메틱이 정확하게 어떤 방식으로 예측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짐작해볼 순 있습니다. 선수들의 각종 기록과 상황 변화 같은 것들을 곰곰히 따졌을 테지요. 볼 구질부터 스트라이크 비율, 구속 같은 여러 변수들을 전부 고려했을 겁니다. 그렇게 1만 번을 돌려봤을 때 가장 확률이 높은 쪽을 택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 모든 건 변수 많은 확률게임…그래서 더 두려운 빅데이터 분석
1961년 설립된 스트랫 오 메틱은 야구 뿐 아니라 인기 스포츠 판타지 게임을 운영하고 있는 업체입니다. 판타지는 현실에 환상을 잘 결합해야만 매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선행돼야 합니다. 스트랫 오 메틱은 그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업체입니다.
스포츠든 바둑이든 결국은 확률 게임입니다. 가장 승률이 높은 선택을 하는 쪽이 이길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이지요. 스트랫 오 메틱의 분석모델이 스포츠 세계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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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번 예측은 재미로 보고 넘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선 컴퓨터의 예측 능력이 수 많은 ‘야구 전문가’들의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수 십 년 해 온 야구 방식만 고집하면 시대 변화에 뒤질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AI(로 대표되는 분석 기술)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야구만 그런 건 아닐 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제가 글을 쓰고 있는 저널리즘 영역에서조차, 이미 그런 시대가 됐는지도 모릅니다. ‘전통 저널리즘’만 고수하다간 ‘뒷방 늙은이’로 전락할 수 있는 상황. IT 기자인 제가 야구 경기에 흥분해서 긴 글을 쓴 건 오히려 이런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릅니다.